1. 방대한 철학적 모험 소설: 친애하는 S, 오늘은 섬뜩한 느낌을 풍기지만, 강렬한 성적 욕구를 전해주는, 소설 한 편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소설의 원제목은 『새로운 저스틴 혹은 미덕의 불행, 그미의 여동생 줄리엣의 이야기 La Nouvelle Justin ou les Malheurs de la l’historie de Julientte, sa sœur』 (1797)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작품은 노골적인 성 묘사, 거침없는 사회 비판 등으로 당시에 작자 미상으로 간행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자는 다름 아니라 프랑스의 관료주의자, 철학자, 혁명적 정치가 마르키 드 사드 (1740 – 1814)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그를 사드 백작이라고 칭하는데, 원래의 이름은 도나텡 알폰스 프랑스와 마르키 드 사드입니다. 당신도 짐작하겠지만 , 사디즘이라는 단어는 마르키 드 사드에서 비롯하는 것입니다. 마르키 드 사드의 『저스틴』은 지금까지 세 가지 판본이 있는데, 우리가 언급하려는 세 번째 판본은 1909년 기욤 아폴리네르에 의해서 발견된 것입니다. 세 반째 판본은 이전의 판본에 비해 방대하고 사도마조히즘의 외설적 장면이 상당 부분 첨가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유럽 문학사에서 마르키 드 사드만큼 변태적인 성의 판타지 속에다 폭력, 범죄 그리고 신성모독의 요소를 담은 작가는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그는 극단적 자유를 추구하였으며, 인간이 도덕, 종교 그리고 법에 의해 구속당하는 것을 누구보다도 혐오하였습니다.
2. 마르키 드 사드는 누구인가? (1): 사람들은 다음의 사실을 잘 알지 못합니다. 즉 마르키 드 사드가 평생 32년 동안 정신 병동 그리고 감옥에서 살아야 했다는 사실 말입니다. 물론 감옥에 가기 전에 그의 성도락 내지 엽색행각이 도를 넘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마르키 드 사드가 기상천외한 상상력을 도입하여 섹스 이야기에 매달린 것은 비록 일시적이지만 감옥에서의 부자유의 삶을 떨치고 행복감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마르키 드 사드는 1740년 파리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처음에는 예수회 학교를 다니다가, 군에 입대하여 군인이 되었습니다. 드라곤 연대의 장교로 복무하다가 7년 전쟁에 참가하여 무공을 세우고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이때 그는 파리의 부유한 판사의 둘째 딸에 청혼하였는데, 판사는 이러한 요청을 거부하고, 자신의 (못생긴?) 첫째 딸과 결혼하라고 제안합니다. 마르키 드 사드는 정략결혼에 동의함으로써 상당한 돈을 벌어들였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결혼에서 행복감을 느꼈을 리 만무합니다. 어쨌든 결혼을 통해서 그는 2남1녀의 자녀를 거느리게 됩니다. 1767년 아버지가 사망했을 때 마르키 드 사드는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게 됩니다. 그가 수많은 여성들과 성적 유희를 즐긴 것은 바로 이 시기부터였습니다. 그가 만나는 여성들은 여배우, 기생, 처녀 그리고 여염집 규수 등 가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엄청난 재력이 이를 가능하게 했던 것입니다.
3. 마르키 드 사드는 누구인가? (2): 그런데 그에게 어떤 불운이 찾아옵니다. 언젠가 마르키 드 사드는 어느 처녀를 겁탈했는데, 자신의 변태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그미에게 온갖 체위를 강요하고, 신성모독의 끔찍한 짓거리를 가했다고 합니다. 그 처녀를 사랑하는 젊은 남자는 복수의 칼날을 갈면서, 시당국에 사드 백작을 고발하게 됩니다. 이로 인하여 마르키 드 사드에게 체포령이 내려집니다. 그러나 그는 파리를 오가면서 5년간 도피 생활을 영위합니다.
피고 없는 재판정에는 그동안 마르키 드 사드에 의해 피해당한 많은 여성들이 증인으로 출석합니다. 이를테면 로자 컬러라는 여성은 어깨의 상처를 내밀면서 그와 정을 통하다가 얻어맞은 채찍 자국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었으며, 마르세유 출신의 두 명의 창녀는 최음제에 해당하는 칸타리딘 사탕을 먹고, 아날 섹스 그리고 그룹 섹스를 강요당한 것을 증언하였습니다. 참고로 칸타리딘은 에스파냐에서 서식하는 “초록색 파리 Lytta vesicatoria”에서 추출한 것으로서 이것을 복용하면, 자신의 흥분을 견딜 수 없다고 합니다.
4. 마르키 드 사드는 누구인가? (4): 재판정은 피고 없는 가운데 사형을 언도합니다. 1777년 마르키 드 사드는 파리로 향하는 길목에서 어느 경관에 의해서 체포되어 감옥에 수감됩니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그는 단두대에서의 처형을 면하고 감옥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1790년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잠시 출옥했지만, 1794년에 다시 체포되었으며, 다시 풀려나는 일이 반복됩니다. 마르키 드 사드는 감옥에서 많은 작품들을 집필하였으며, 이를 어느 출판업자에게 넘겨 익명으로 발표하게 합니다. 1794년 그의 소설 『줄리엣』을 책으로 간행한 지루아 Gorouard는 금서를 간행했다는 혐의로 단두대에서 처형당합니다.
그러나 다른 출판업자가 나타나서 그의 책을 간행하려고 합니다. 1801년 3월 6일에 프랑스 경찰은 그의 집을 들이닥쳐서 가택수색을 벌입니다. 그 후에 마르키 드 사드와 그의 출판업자는 불온서적을 출판했다는 혐의로 당국에 체포됩니다. 이때 약 1000권에 해당하는 『저스틴』이 압수되어 분서갱유의 조처를 당합니다. 출판업자는 화를 모면하고 풀려났지만, 마르키 드 사드는 다시금 감옥 생활을 영위해야 합니다. 1803년 그의 가족들은 법원서에 하나의 청원서를 제출합니다. 그것은 마르키 드 사드가 사랑통 생 모리스 정신 병원에 머물 수 있도록 조처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요구는 수용되어 이때부터 그는 정신 병원에서 세월을 보냅니다. 마르키 드 사드는 1814년에 유명을 달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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