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근대불문헌

서로박: 라옹탕의 고결한 야생 (2)

필자 (匹子) 2022. 12. 17. 09:53

(앞에서 계속됩니다.)

 

6. 라옹탕의 삶 (4):1690년 그리고 1692년에 라옹탕은 루이 드 부아드Louis de Buade의 특별 사절단으로 프랑스로 여행합니다. 이때 그는 가문의 유산을 돌려받기 위하여 당국에 청원서를 제출합니다. 그밖에 라옹탕은 왕궁을 직접 방문하여, 식민지의 경제적 발전을 위해 군사를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의 두 가지 시도는 모조리 실패로 돌아가고 맙니다. 물론 라옹탕은 1692년 중위로 승진하여, 영국군으로부터 뉴펀들랜드에 거주하는 프랑스인들의 안전을 돌보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배속된 상관과 여러 번 마찰을 겪습니다. 도저히 자신의 임무를 원활하게 수행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 그는 1693년 12월에 당국으로부터 허가도 받지 않은 채 프랑스로 되돌아옵니다. 이때 군대의 무단이탈이라는 혐의로 인하여 그에게 체포령이 떨어집니다.

 

라옹탕은 포르투갈로 도주합니다. 뒤이어 그의 오랜 방황이 시작됩니다. 네덜란드, 독일, 덴마크 그리고 에스파냐 등의 왕궁을 찾아가서 자신에 대한 지지를 부탁하지만, 별로 커다란 소득을 얻어내지 못합니다. 당국으로부터 쫓기는 일개 프랑스 장교 한 명을 도와줘봤자 실질적 이득을 기대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리저리 방랑하던 라옹탕은 초췌한 몸으로 하노버 왕궁을 찾아갔는데, 거기서 라이프니츠를 만나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고 합니다. 라옹탕의 말년의 삶에 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습니다. 성 클레멘스 성당에 등록된 시신의 기록에 의하면 라옹탕은 1716년 4월 21일에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다고 합니다.

 

7. 여행기의 놀라운 특성:라옹탕의 문헌은 그 구성에 있어서 여행 (제 1권), 회고 (제 2권) 그리고 대화 (제 3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제 1권의 두 개의 장은 북아메리카의 낯선 문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시종일관 인디언 문화에 우호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그렇지만 책은 가급적이면 사실에 입각하여 서술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선입견, 즉 유럽 중심적인 시각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있습니다. 특히 라옹탕은 첫 번째 책인 『새로운 여행』에서 북아메리카의 (지금은 미주리 지역에 해당하는) “기나긴 강”가에 거주하던 인디언 부족을 세밀하게 묘사하는데, 이는 저자의 고유한 경험 그리고 냉정한 관찰에 근거한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라옹탕이 북아메리카의 인디언 문화에 매우 친숙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라옹탕은 인디언 문화를 생생하게 이해하는 전제 조건으로서의 인디언의 언어를 훌륭하게 구사할 줄 알았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인디언의 신앙이 종래의 해석과는 다르다는 점을 명징하게 밝혀내었습니다. 예컨대 인디언들의 토템 신앙의 체제가 개별 부족과 그들의 영역과 관련되는 시스템이라는 점, 인디언 부족들 가운데 특히 이로케 부족 그리고 휴런 부족의 경우 유산을 승계할 때 무엇보다도 모계 구조의 전통을 중시한다는 점 등이 바로 그 사항들입니다. 나아가 라옹탕의 문헌은 지리학, 식물학, 천문학, 인디언의 정령신앙, 토속적인 의학 그리고 인디언들의 수렵 생활에 있어서 놀라운 새로운 진리를 전해줍니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인디언의 문화를 무조건 찬양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라옹탕은 인디언의 원시적인 삶 속에 은폐되어 있는 나쁜 야만성을 그대로 전해줍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종족 간에 자행되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 고문 제도 그리고 노예제도 등을 가리킵니다.

 

8. 문헌의 제 3권의 놀라운 특성: 책의 제 3권 『대화』 편에서 저자는 자신이 발견해낸 민속학적 자료들에 관해 비판적으로 논평합니다. 저자는 이른바 관여하는 관찰자로서 인디언의 도덕과 관습을 묘사하는데, 이것들은 유럽인들이 지금까지 도달하지 못한 우주적 이성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범의 상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인디언들은 라옹탕의 견해에 의하면 자연과 이성에 합당한 삶을 영위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가 이렇게 서술하는 배후에는 두 가지 의도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계급적으로 계층화되어 있는 유럽 사람들의 단점을 강하게 드러내기 위함이며, 다른 하나는 긍정적인 사회 유토피아의 상으로써 빈부 차이로 인한 비참한 유럽 현실의 출구를 마련하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의향을 실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니라 “고결한 야생”이라는 이국적인 아우라,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제 3부 대화의 주인공은 아다리오라는 이름을 지닌 장년의 사람으로서 저자의 “또 다른 자아”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9. 주인공, 아다리오 그리고 신앙에 관한 논의: 작품에는 아다리오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는 휴런 부족의 부족장, 콘디아로크 (Kondiarok, 1649 – 1701)를 존경하는 원주민 귀족 계급에 속합니다. 콘디아로크는 1649년에 태어나 1701년에 사망한 존경 받는 인디언이었는데, 놀라운 지혜를 지닌 부족장이었습니다. 아다리오는 서양 사람들을 통해서 서구의 문화와 언어를 습득한 자로서 세계에 대한 다원적인 시각을 지닌 젊은이입니다. 아다리오의 대화 상대자는 이름 없는 유럽 사람입니다. 그는 기독교 문명을 고수하고 이를 옹호하지만, 그의 논조에는 어떤 면에서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있는 논거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제 3부의 첫 번째 장에서 아다리오는 유럽인과 오랫동안 진지한 토론을 벌입니다. 여기서 그는 기독교의 계시의 믿음에 관해서 비판적 입장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모든 것을 주님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신앙의 명제를 강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비하면 인디언들의 이성에 토대를 둔 신관 (神観)은 아다리오의 견해에 의하면 인간과 자연을 평등 관계로 설정한다는 점에서 기독교의 세계관과 근본적 차이점을 드러냅니다. 두 번째 장에서 작가는 어째서 휴런 부족이 유럽에 있는 재판소 내지 법정을 거부하는가? 하는 이유를 해명하고 있습니다. 자연의 법은 (비록 글로 집필되는 등의 방식으로) 성문화되지는 않았지만, 고유의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대화에서 아다리오는 인디언들의 소유에 관한 견해, 경제 행위 그리고 정치적 의사 결정의 메커니즘 등을 해명합니다. 이로써 인디언 문화의 여러 가지의 장점들이 실천되고 있습니다. 네 번째 대화는 유럽인들의 의학적 조처와 인디언들의 의료 시술을 서로 비교하고 있습니다. 뒤이어 두 개의 문화권에서 행해지는 사랑과 성의 문제가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