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근대불문헌

서로박: 라옹탕의 고결한 야생 (5)

필자 (匹子) 2022. 12. 17. 10:12

(앞에서 계속됩니다.)

 

23. 새로운 인간으로서 새롭게 견지해야 할 덕목, 선한 마음, 우정 사랑 그리고 고유한 자기 결정권: 라옹탕은 국가의 우생학적인 요청 내지 부모의 외부적 강요에 의한 혼인을 거부하고, 오로지 상호 애정 내지 신뢰감에 근거한 혼인을 용납하고 있습니다. 선한 마음, 우정, 사랑 그리고 인간의 고유한 자기 결정권이야 말로 새롭게 태어난 인간이 견지해야 할 훌륭한 덕목들이라고 합니다. 이에 비하면 질투심, 만용, 오만함 그리고 시기심 등의 감정은 인간을 슬프게 살아가게 하고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가령 프랑스 사람들은 자신의 열정의 노예 내지는 왕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왕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하고 왕을 위해서 부역과 전쟁을 치르는 노예가 바로 프랑스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휴런 공동체 내에는 대부분의 경우 언쟁이나 중상모략 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마을에는 수천의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서로 형제자매처럼 사랑하고 생활하지. 한 사람에 속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소유물일 수 있어. 전쟁을 치르는 추장, 인민의 대표 그리고 평의회의 대변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권력을 소유하지는 않아. 휴런 부족 사람들은 갈등과 비방을 모르면서 살아가지. 모두가 자신의 일의 주인이며,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 강요하지도 않으며, 어떤 규정으로 억압하지도 않아.” (Lahonan 81: 62). 휴런 부족은 전쟁 포로를 노예로 삼지만, 그들을 고결하게 대합니다. 전쟁 포로 역시 휴런 부족의 여자와 혼인할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부족 내에서 동등한 권한을 지닌 자유인으로 생활할 수 있습니다.

 

24. 휴런 부족의 세계관: 휴런 부족은 성서에 나타나는 기적의 이야기 예언 그리고 원죄설 등을 믿지 않습니다. 대신에 그들은 이성적인 자연 종교를 숭상합니다. 종교에 관하여 아다리오는 여섯 가지 사항을 언급합니다. 첫째로 사람들은 자연과 우주를 창조한 신을 믿습니다. 신은 위대한 정신이며 생명을 관장하는 주인이라고 합니다. 부족 사람들은 신이 어디에서나 존재한다고 확신합니다. 둘째로 휴런 부족의 야생 공동체 사람들은 영혼의 불멸을 굳게 믿습니다. 셋째로 자연의 위대한 정신은 인간에게 이성의 능력을 전해주고 선과 악을 구분케 하여, 정의와 지혜에 따라 양심적으로 행동하게 한다고 합니다.

 

넷째로 위대한 주는 영혼의 안식을 좋아하고, 영혼의 흐트러짐을 혐오합니다. 왜냐하면 불안한 마음은 인간을 사악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섯째로 인디언들에게 삶이란 하나의 꿈이고, 죽음이란 하나의 깨어남이라고 합니다. 이에 따르면 영혼은 자연 그리고 가시적인 사물과 비가시적인 사물의 가치를 바라보고 인식할 수 있다고 합니다. 여섯째로 인간의 정신은 지상의 자그마한 물건 하나 들어 올릴 수 없을 정도로 그 힘이 미약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보이지 않는 내면의 사물을 투시함으로써, 정신의 힘을 썩지 않게 하고 유혹에 빠지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25. 인간의 역사는 야만에서 문명으로 향하는 일직선적인 과정이 아니다: 상기한 사항은 서구인이 생각하는 역사의 발전 과정을 전적으로 뒤엎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서구인들은 인간의 문명이 통상적으로 태초의 시대, 혹은 비-유럽 권에서 파생된 이질적인 문화와 관련되는 야만에서 파생되었다고 믿습니다. 가령 프레이저는 『문명과 야만』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야만에서 문명이 이어지는 것은 주술에서 종교가, 종교에서 과학이 도출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프레이저 1권: 16).이러한 주장의 배후에는 유럽의 기독교 문명이 모든 원시적 야만적 습성을 극복한 최상의 문명이라는 믿음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라옹탕은 인간의 문명이 야만으로부터 파생되었다는 가설을 처음부터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야생의 삶은 문명과 무관하게 존재하며, 문명이 지니고 있는 결함을 보완하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렇기에 서양의 기독교 문명과 북아메리카의 휴런 부족의 인디언 문화는 라옹탕에 의하면 상호 시간적 공간적 종속 관계로 해명될 수 없다고 합니다. 두 개의 문화는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 다시 말해서 서로 양립하는, 상호 우월성을 논할 수 없는 두 개의 이질적인 문화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26. 라옹탕의 “고결한 야생”에 대한 후세인들의 비판: 18세기 대부분의 유럽 사람들은 라옹탕이 투시한 고결한 야생에 관한 상을 한마디로 도피주의의 사고라고 매도하였습니다. 라옹탕의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이야기는 지금 여기의 현실적 문제점을 수정하거나 해결하지 않고, 그저 낯선 문화만을 막연히 수동적으로 찬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프리드리히 실러는 유럽 중심주의의 시각으로 라옹탕의 여행기를 혹독하게 비난하였습니다. 라옹탕은 실러에 의하면 서구 문명을 발전시키려는 모든 노력 자체를 처음부터 무가치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Schiller: 688).

 

그밖에 임마누엘 칸트는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삶에 관한 라옹탕의 묘사를 “인류 문명을 적대시하는 시각”으로 간주하였습니다. 실러와 칸트가 살았던 시대는 자연과학과 기술이 서서히 발전하기 시작할 근대의 시기였습니다. 그들은 주어진 시대정신에 상응하게 서구 문명이 세계의 모든 가치를 포괄할 수 있다고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독자라면 북아메리카 인디언 문화에 관한 라옹탕의 시각을 무작정 그런 식으로 매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생태계의 파괴와 자연과학과 기술이 안겨주는 여러 가지 난제 등을 고려해 보십시오. 70년대 유토피아 연구가들이 라옹탕의 인디언 문화를 하나의 현실적 대안으로 받아들이고 , 그 유효성을 인정한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러한 관점을 고려한다면 라옹탕의 유토피아는 얼마든지 1970년대에 수용된 공간 유토피아의 실질적 유산으로 규정될 수 있습니다.

 

27. 라옹탕 유토피아의 현대적 의미: 요약하건대 라옹탕의 휴런 부족의 공동체는 국가주의의 모델이 아니라, 아나키즘의 요소를 지니고 있는 더 나은 삶에 관한 사회 유토피아의 상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절대주의 왕정의 시대의 반대급부의 상으로 출현한 것으로서 권력자의 폭정, 수사들의 횡포 그리고 사회의 상류층 사람들의 패륜 등을 비난하기 위해서 역으로 끌어들인 상입니다. 물론 휴런 부족의 공동체가 전쟁과 같은 집단주의의 폭력이라는 취약점을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21세기 생태계 파괴 현상과 자본주의의 폭력을 고려할 때 새로운 삶을 위한 사고로서 새롭게 인정받을 수 있는 대안의 삶의 모습으로 수용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우리의 주어진 현실 내지 미래 사회에 직접 도입될 수 있는 하나의 장치 내지 대안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기술 집약적이며, 복잡하게 얽힌 오늘날 사회에서 라옹탕의 유토피아는 도피적인 휴식의 관점에서 이해될 게 아니라, 최소한 우리에게 작지만 가장 중요한 삶의 방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즉 가급적이면 자본주의의 제도적 관점에서 벗어난, 자연친화적인 필라델피아 공동체의 삶의 방식을 생각해 보세요.

 

 

참고문헌

 

- 프레이저, 제임스 조지 (1996): 문명과 야만, 3권, 이양구 역, 강천.

- Cooper, James (2013): The Last of the Mohicaner, (독어판) Der letzte Mohicaner, München.

- Funke, Hans Günter (1999): Die literarische Utopie in der französischen Aufklärung zwischen archistischen (Vairasse, Fontenelle, Morelly) und anarchistischem Ansatz (Foigny, Fénelon, Lahontan), in: Richard Saage u. a., Von der Geometrie zur Naturalisierung. Utopisches Denken im 18. Jahrhundert zwischen literarischer Fiktion und frühneuzeitlicher Gartenkunst, Tübingen, S. 8 – 27.

- Lahontan, Louis Louis Armand de Lom d’Arc (1703): Noveaux Voyage de MR le Baron de Lahotan dans l’Amerique Septontrionale Tome Premier, A la Haye.

- Lahontan, Louis Louis Armand de Lom d’Arc (1981): Gespräche mit einem Wilden, Frankfurt a. M..

- Montaigne, Michel de (1998): Über die Menschenfresser, in: ders., Essais. Frankfurt a. M., S. 109 – 115.

- Rousseau, Jean Jacques (1977): Gesellschaftsvertrag. übersetzt von H. Brockard, Stuttgart.

- Schiller, Friedrich (o. J.): Was heißt und zu welchem Ende studiert man Universalgeschichte?, in: Schillers Werke in zwei Bänden, Salzbu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