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근대불문헌 86

서로박: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의 "달나라 제국" (2)

8. 달나라 사람들의 오만과 엘리트 의식: 기독교에 의하면 인간은 우주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한 존재이며, 인간의 역사는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훌륭한 목표라고 합니다. 그런데 작가는 이러한 기독교의 세계관 자체를 절대적인 게 아니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우주에는 지상에 사는 인간의 삶보다도 더 발전된 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달나라 사람들은 작품에서 자기 자신을 우주에서 가장 탁월한 이성적 존재라고 간주하며, 시라노와 곤찰레스를 우스꽝스러운 동물 두 마리라고 치부하고 있습니다. 달나라 궁궐 사람들은 이들 두 사람이 인상을 찌푸리는 모습 그리고 점프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박장대소를 터뜨립니다. 달나라 사람들의 이러한 반응은 17세기 유럽인의 그것을 방불케 합니다. 17세기 유럽 사람들은 인디언 인종..

32 근대불문헌 2021.01.05

서로박: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의 "달나라 제국" (1)

1. 사이언스 픽션의 전신인 공상 소설: 흔히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라는 인물은 에드몽 로스탕 (Edmond Rostand, 1868 - 1918)의 극작품의 주인공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극작품 속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과도하게 커다란 코로 인해 괴로워하는 남자의 사랑의 삶을 재미있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실존 인물 헥토어 시라노 드 베루주라크(1619 - 1655)는 커다란 매부리코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생계를 위해 가스코뉴 근위대에 들어간 그는 1639년 프랑스와 에스파냐 사이의 전쟁에 참가했습니다. 그는 두 번의 부상을 당하게 되자 탈영하여, 프랑스 파리로 되돌아옵니다. 1641년에 철학자 피에르 가상디Pierre Gassendi를 만나서 자연 철학에 심취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시..

32 근대불문헌 2021.01.05

서로박: 푸아니의 '미지의 지역 오스트레일리아' (2)

9. 완전한 삶, 완전한 인간: 따라서 유럽인들은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의 눈에는 아직 완전한 사람이 되지 못한 “반인 半人”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불완전하게 발전된 이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여러 가지 실수를 저지르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서 오스트레일리아의 무정부주의의 공동체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아무런 마찰 없이 영위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이성의 힘에 의해서 이행되기 때문입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사람들은 위에서 아래로 향해 외치는 명령조의 말을 싫어합니다. 그들은 이성이 명하는 대로 자연스럽고도 당당하게 행동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성이 법이요, 규칙이며 인간 삶의 유일한 척도입니다. 완전한 인간과 반인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자신의 시고와 갈망을 가급적이..

32 근대불문헌 2020.10.11

서로박: 푸아니의 '미지의 지역 오스트레일리아' (1)

1. 절대 왕정 체제의 시대에 출현한 유토피아: 17세기 프랑스에서는 절대 권력의 군주가 조세를 갈취하고 가난한 백성들로 하여금 강제 노동을 강요 하고 있었습니다. 1676년 제네바에서는 『자크 사뒤르의 모험 Les Avantures de Jacques Sadeur』이라는 제목의 소설 한 편이 작자 미상으로 발표되었습니다. 나중에 알려졌지만, 소설을 집필한 사람은 가브리엘 드 푸아니 Gabriel de Foigny로 밝혀지게 됩니다. 소설의 제목 역시 나중에 『미지의 오스트레일리아 Terra Australe』로 수정됩니다. 이 작품은 남쪽 나라의 찬란한 나라를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데니스 베라스 Denis Veiras의 『세바랑브의 역사 Histoire des Sevarambes』(1677)와 같은 유..

32 근대불문헌 2020.10.11

서로박: 몰리에르의 동 쥐앙

프랑스의 극작가, 장 밥티스트 몰리에르 (Jean-Baptiste P. Molière, 1622 - 1673)의 「동 쥐앙 혹은 돌 같은 손님 (Don Juan ou le festin de pierre)」은 5막으로 이루어진 산문 코메디로서 1665년 2월 15일 로얄 성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다. 원래 이 작품은 스페인 극작가 티르소 데 몰리나 (Tirso de Molina)가 1630년에 발표한 극작품 「세비야의 조소자 (El burlador de Sevilla)」을 변형시킨 것이다. 티르소 몰리나는 바로크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극작품으로 형상화했는데, 이에 의하면 주인공 “돈환”은 끈덕진 바람둥이로서 신에 의해서 마지막에는 끔찍한 벌을 받게 된다. 그후 이탈리아의 몇몇 극작가들 (치초니니, 길리..

32 근대불문헌 2020.06.28

서로박: 디드로의 "달랑베르와 디드로의 대화" (2)

6. 정신과학과 자연과학의 차이점 그리고 아직 밝혀내지 못한 정신과학의 방향: 이른바 “명징한” 과학에 해당하는 물리학, 수학 그리고 추론에 근거하는 학문 영역, 이를테면 역사학, 도덕 그리고 정치학 사이의 차이점은 디드로의 견해에 의하면 다음의 사항에 있다고 합니다. 전자의 경우 우리의 인식을 동원하여 확실한 예견을 가능하게 해주지만, 후자, 다시 말해서 역사학, 도덕 그리고 정치학은 우리로 하여금 충분하지 못한 결론에 도달하게 해줄 뿐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계의 모든 상태 그리고 세계의 에너지 등에 관한 모든 지식을 지닐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신의 권능을 지니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디드로의 이러한 견해에 대해 달랑베르는 의구심을 표합니다. 그러자 디드로는 달랑베르를 설득시키기 위해서..

32 근대불문헌 2020.03.04

서로박: 디드로의 "달랑베르와 디드로의 대화" (1)

1. 백과사전 학파 디드로의 대표작: 프랑스 계몽주의 문학은 논할 때 우리는 드니 디드로를 생략할 수 없습니다. 18세기에 프랑스에는 의고전주의의 경향으로 도식적이고 경직된 문헌이 많았습니다. 여기에는 볼테르의 강력한 종교 비판의 어조 역시 한몫을 했습니다. 그러나 디드로의 작품을 통해서 프랑스 계몽주의의 문학은 어느 정도 유연하고 깊이 넘치는 수준에 도달하게 됩니다. 오늘은 드니 디드로의 철학적 대화 문집에 해당하는 『달랑베르와 디드로 사이의 대화L'Entretien entre d'Alembert et Diderot』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문헌은 1769년에 발표되었는데, 당시에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자신의 명제를 과감하게 개진하고 있습니다. 작품 속에 실려 있는 논문인 「달랑베르의 꿈Le ..

32 근대불문헌 2020.03.04

볼테르의 캉디드

1. 볼테르의 익명의 작품: 가장 찬란한 이상 사회에 관한 상상은 역으로 주어진 현실을 간접적으로 비판하도록 추동합니다. 가령 찬란한 이상으로서의 엘도라도의 상은 절대 왕정의 반대급부로 태동하였습니다. 엘도라도는 찬란한 이상 사회로서 볼테르의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에 처음으로 언급되었습니다. (Voltaire: 15). 볼테르는 1759년에 익명으로 이 작품을 발표했는데, 내심 라이프니츠의 견해를 비판하고 싶었습니다. 라이프니츠는 주어진 세계가 모든 가능한 세상 가운데 최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렇지만 유럽 사회에 온존해 있는 독재와 폭정 그리고 도덕적 파괴 현상을 외면하고 어떻게 지식인으로서 편안하게 자족할 수 있는가? 하는 게 볼테르의 항변이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그는 리스..

32 근대불문헌 2020.02.24

서로박: 레티프의 "니콜라씨" (2)

6. 건강한 성, 여성에 대한 연애 봉사: 레티프가 1798년에 발표한 작품 『반(反)-쥐스틴, 혹은 사랑의 향유Anti-justine ou les délices de l'amour』 속에는 사드의 문학 작품이 얼마나 인간의 건강한 성과 괴리되는 끔찍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가가 기술되어 있습니다. 『니콜라씨』의 마지막 대목에서 작가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나는 내가 열렬히 탐하는 여성들을 한 번도 짓밟은 적이 없다.” 다시 말해 주인공은 자신의 모든 여성들을 애틋하게 생각하고, 열과 성의를 다해서 자신의 파트너에게 봉사했다는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작품을 읽으면 많은 여성들이 주인공의 품에 안겨서 유명을 달리하는 장면이 속출합니다. 사회적으로 힘든 삶을 살아가다가 불행한 최후를 맞이하는 여성들..

32 근대불문헌 2020.02.20

서로박: 레티프의 "니콜라씨" (1)

1. 사랑은 어째서 아름답게 느껴지고, 성은 더럽게 비치는가?: 아름다운 사랑 그리고 더러운 성 사이의 위화감은 어느 정도 강하게 드러나고 있는가? 이 물음은 주어진 사회의 강제적 성윤리를 진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질문입니다. 어째서 사랑이 마치 찬란한 연꽃처럼 아름답게 수용되지만, 섹스는 마치 진창 속에서 영그는 연의 뿌리처럼 더럽게 각인되는 것일까요? 사실 사랑과 성은 동물에게는 동일한 방식으로 행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두 단어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온존하고 있습니다. 이는 순결 이데올로기와 직결되는 것입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미성년자들, 특히 여성들의 혼전 순결을 강요하였습니다. 혼전 순결을 지키기 위해서는 미성년자들이 성을 아예 처음부터 접하지 못하게 하거나, 성이 더럽고 끔찍한 무엇이라..

32 근대불문헌 2020.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