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136

(명시 소개) (2) 삶의 향유는 생명체의 특권이다. 최계선의 시 "돌고래"

(앞에서 계속됩니다.) 환각에 빠진 돌고래들 복어로 공놀이하던 돌고래들이 (건드리면 몸을 동그랗게 부풀리는 복어로 공 뺏기 놀이 하다보면 복어 가시 신경독에 찔려 삐리리해진다. 몰라서가 아니고 그 상태를 즐기기 위해서 한다) 헤엄도 제대로 치지 못하고 해롱거린다 물뽕 맞은 돌고래들 그 틈에 옆으로 삐져나온 복어 공을 빠르게 가로채 몰고 가던 돌고래도 해롱거린다 놀이는 끝났다 돌고래들이 돌의자에 기대어 하늘 바라보며 바보처럼 해시시 웃고 있다 알딸딸한 돌고래 무리 공놀이에서 빠져나온 복어도 정신이 하나 없다. (최계선 『열 마리 곰』, 2021 강. 91쪽) 나: 돌고래가 복어를 데리고 공놀이 한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합니다. 너: 복어는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공처럼 부풀립니다. 돌고래..

19 한국 문학 2021.11.02

(명시 소개) (1) 삶의 향유는 생명체의 특권이다. 최계선의 시 "돌고래"

너: 시간을 할애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한 가지 질문부터 먼저 던지도록 하겠습니다. 동물도 사랑의 감정 그리고 오르가슴을 느끼는지요? 나: 글쎄요. 황당한 질문이로군요. (웃음) 동물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요. 동물들 가운데 젖먹이동물들은 분명히 오르가슴을 느끼고 사랑의 감정 또한 품는다고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납니다만... 너: 예컨대 대부분의 고래에게는 분명히 애틋한 동류의식 내지 연정이 자리하는 것 같아요. 사향고래는 자신의 파트너를 작살로 찔러 죽인 인간을 거의 20년 이상 오래 기억하고, 복수하려고 마음먹는다고 합니다. 그밖에 많은 분들이 개를 좋아하지요. 그 이유는 개가 주인을 따르며 충직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물론 편차는 있지만, 젖먹이동물이 연정을 품기도 하고, 성을 즐기기도 한다는 것은 사..

19 한국 문학 2021.11.02

(명시 소개) (2) 풍요와 불모 사이. 장석의 시, 「두루미에게」

(앞에서 이어집니다.) 너: 그렇다면 시인은 어떠한 이유에서 땅과 두루미의 만남을 묘사하고 있나요? 이 질문은 시적 주제와 관련되는 것 같습니다만...... 나: 작품의 주제는 미리 말씀드리건대 첫째로 전기적 측면에서, 둘째로 사회적 측면에서 그리고 셋째로 생태적 측면에서 도출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로 시인은 두루미와 땅의 만남을 통해서 두 가지 사항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상부지향의 성공에 대한 욕망을 떨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작지만 의미 있는 일을 끝내는 일입니다. 너: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지요? 나: 그러지요. 물론 우리는 장석 시인이 작품 「두루미에게」를 언제 완성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아마 지천명의 나이를 넘어선 시인은 더 이상 다른 사람을 노동을 활용하여 부를 ..

19 한국 문학 2021.09.09

(명시 소개) (1) 풍요와 불모 사이. 장석의 시 「두루미에게」

너: 안녕하세요? 오늘은 장석 시인의 시 「두루미에게」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2020년에 강 출판사에서 간행된 시집 『우리 별의 봄』에 실려 있습니다. 나: 장석 시인은 198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다음 거의 작품 발표를 하지 않다가, 최근에 두 권의 시집을 간행하였습니다. 시집 『우리 별의 봄』과 함께 이전의 시작품을 모은 『사랑은 이제 막 태어난 것이니』 역시 같은 해 간행되었습니다. 거의 150편의 시작품 가운데에서 왜 하필이면 「두루미에게」를 선정하였는지요? 너: 에른스트 블로흐는 영특한 사고가 같은 문장을 일곱 번 숙고할 때 떠오른다고 말했습니다. 한 문장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되씹으면, 그만큼 더 깊이 있는, 때로는 이질적인 의미가 도출된다는 뜻이지요...

19 한국 문학 2021.09.09

(명시 소개) “꽃 피는 날에 오지 못해 미안하다.” 정일근의 시 「그믐치」

너: 오늘은 정일근 시인의 「그믐치」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이 작품은 그의 시집 『소금 성자』 (산지니, 2015)에 실려 있습니다. 나: 시인은 진해와 마산에서 살아온 향토 시인으로서 지금까지 꾸준하게 무게 있는 작품들을 발표해 왔습니다. 그믐치는 “음력 그믐에 내리는 눈 혹은 비”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시작품에는 어떤 아픔, 혹은 어떤 행복에 관한 기억 그리고 이를 끝까지 만끽하지 못한 아쉬움이 담겨 있는 것 같아요. 꽃 날리는 저녁이다 통점이 스르르 스르르르 등 위로 와 꽃뱀으로 꽉 문다 꽃 피기 전부터 이 악물고 참았다 내 궁극이 하얀 비단으로 풀린다 꽃 피는 날에 오지 못해 미안하다 이제 내 추억의 실마리는 부축 없이 처음에 닿지 못한다 발바닥의 궁륭이 서서히 그믐으로 가고 있다 내 처지보다..

19 한국 문학 2021.09.03

(명시 소개) 조달곤의 시 「북십자성」(2)

(앞에서 계속됩니다.) 내 이 지상을 뜨는 날 은하철도를 타리 안드로메다행 999호 열차에 오르는 단 한 번 맞이하는 여행 앞에서 마음 몹시 부풀어 오르리 푸른빛의 지구를 등지고 원거리 셀카로 내가 살았던 창백한 푸른 점을 되돌라보고 모래 같이 작은 점 안에서 수십억 인류가 지지고 볶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신기해하면서 오르트 구름을 지나 검은 우주를 가로질러 별과 별 사이로 단품처럼 붉게 물들고 있는 은하를 향해서 가리, 슬프고 아픈 기억을 지우며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는 성경 구절도 되뇌면서 죽음이 꿈도 없는 깊은 잠고 같을 수 없다고 중얼거리면서 백조역에서 지선을 갈아타고 플라타너스 시골 신작로같이 뻗어 있는 길을 따라 은색 하늘색 억새가 하얗게 피어 있는 강기슭을 지나고 많은 등불이 빛..

19 한국 문학 2021.08.01

(명시 소개) 조달곤의 시, 「북십자성」(1)

너: 어린 시절 동화책을 읽다가 충격 받은 적이 있어요. “모든 인간은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접했을 때였지요. 아이들은 죽는다는 게 너무 슬퍼서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나: 그렇지만 어른이 되면, 우리는 간간이 죽음을 인지하곤 하지요. 마치 공자처럼 삶도 잘 모르는데, 죽음까지 알 필요가 있는가? 하고 뇌까리면서, 삶에 몰두하면서 살아갑니다. 너: 환갑이 넘으면, 죽음의 접근을 자주 인지합니다. 건강에 이상이 있기 때문이지요. 독일의 작가 그림 형제 Brüder Grimm, 즉 야콥 그림과 빌헬름 그림은 오래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늙음을 하나의 행복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들은 귀 먹고 시력이 가물가물한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주위의 쓸데없는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고, 새소리..

19 한국 문학 2021.08.01

(명시 소개) 권경업의 시,「소를 잡아먹는 야만인들」

나: 권경업 시인은 2016년에 시집 『동물의 왕국』(빛남출판사)을 간행했습니다. 오늘은 여기에 실린 시편 하나를 선택하여 논해보기로 하겠습니다. 너: 이 시집에 드러난 시적 경향은 어떠한지요? 나: 이전 시집과 비교할 때 사회 비판적인 요소가 많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시어 구사에 있어서 꾸밈이 없고, 진솔한 편입니다. 이러한 특성은 이전의 시적 경향과는 많이 다른 것 같아요. 너: 동감입니다. 시원시원한 직설적 표현을 통해서 시인은 풍자 문학의 특성을 여지없이 보여줍니다. 이러한 특성은 장단점을 지니고 있지요. 독자에게 시인의 입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게 강점이라면, 어떤 암시나 함축 등과 같은 시적 특성이 약화된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일 수 있습니다. 작품들 가운데 「소를 잡아먹는 야만인들」을 골..

19 한국 문학 2021.07.22

(명시 소개) 동요에 의한 살풀이. 이달희의 시 「점치는 아이」(2)

(앞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너: 「점치는 아이」는 “낙동강 시편 19”로서 다음과 같은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모래 그릇에 모래 음식을 담아놓고, 손등에 모래흙을 덮고 다독여서 모래집을 지으며.” 이 작품을 동요라고 규정해도 될까요? 나: 물론 어린이가 즐겨 부르는 노래라는 점에서 동요에 해당합니다. 그렇지만 시적 주제를 감안하면 어른을 위한 동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밀한 분석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수월하게 읽히는 작품입니다. 그렇지만 시적 주제를 고려하면 많은 다양한 측면에서 해석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1. 정치 경제적 측면, 2. 역사적 측면, 3. 철학적 측면. 너: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살펴주시지요? 나: 역사적으로 한반도는 곡창 지대에 속했습니다. 날씨가 온화했으므로 만주 지역에 비해 ..

19 한국 문학 2021.07.01

(명시 소개) 동요에 의한 살풀이. 이달희의 시 「점치는 아이」(1)

나: 오늘은 이달희 시인의 작품, 「점치는 아이」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작품은 그의 시집 『낙동강 시집』(서정 시학, 2012)에 실려 있습니다. 이달희 시인은 1948년 경남 창원 출생으로서 오랜 창작 기간 동안 단 한 권의 시집만을 간행했습니다. 지극히 과작이지요. 그렇지만 시집에는 오랜 시간 농익은 포도주와 같은 수작들이 많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오랜 퇴고의 과정을 거쳤겠습니까? 너: 동의합니다. 이달희 시인은 시적 소재 내지 주제에 있어서 독일의 시인 페터 후헬 Peter Huchel을 연상하게 합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후헬의 문학은 그리스도의 경건함에 바탕을 두고 있다면, 이달희 시인에게는 토속 신앙과 선 (仙) 사상의 흔적이 엿보이고 있습니다. 시인은 1950년대 낙동강 주변에서 유년..

19 한국 문학 2021.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