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명시 소개) 동요에 의한 살풀이. 이달희의 시 「점치는 아이」(2)

필자 (匹子) 2021. 7. 1. 11:05

(앞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 「점치는 아이」는 “낙동강 시편 19”로서 다음과 같은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모래 그릇에 모래 음식을 담아놓고, 손등에 모래흙을 덮고 다독여서 모래집을 지으며.” 이 작품을 동요라고 규정해도 될까요?

: 물론 어린이가 즐겨 부르는 노래라는 점에서 동요에 해당합니다. 그렇지만 시적 주제를 감안하면 어른을 위한 동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밀한 분석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수월하게 읽히는 작품입니다. 그렇지만 시적 주제를 고려하면 많은 다양한 측면에서 해석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1. 정치 경제적 측면, 2. 역사적 측면, 3. 철학적 측면.

 

: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살펴주시지요?

: 역사적으로 한반도는 곡창 지대에 속했습니다. 날씨가 온화했으므로 만주 지역에 비해 수확이 많았지요. 그러나 민초들은 오래 전부터 당국에 의해 곡식을 차압당하곤 했지요. 다시 말해서 한인들에게서 “밥, 떡, 술 그리고 묵”을 빼앗아간 자는 국내외의 권력자들이었습니다. 이를 지적하기 위해서 시적 자아는 “보릿고개 굶어 가신 증조할매”를 소환하고 있습니다.

: 시를 읽으면, 독자들은 구체적 역사적 사건을 유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2연은 삼일운동, 제 3연은 6.25 전쟁, 제 4연은 4.19 데모 등을 암시하는 게 분명해요.

 

: 그렇다고 시작품을 특정한 일회적 사건에 대입시켜, 하나의 의미만을 도출해낼 수는 없습니다. 가령 “돌 던지다 총을 맞은 오빠”의 비극은 나중에 1980년 광주에서도 발생했으니까요. 사실 「점아점아 콩점아」는 김명곤에 의해서 시나리오로 만들어진 바 있습니다. 여기서 김명곤은 동학 혁명과 광주사태 당시에 죽어야 했던 원혼들을 모조리 불러내고 있지요. 김명곤의 시나리오는 낙동강의 현실을 뛰어넘어, 3000년의 한반도의 핍박당하는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남북통일을 이루어 고조선의 문화적 영화를 되찾자는 포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를 고려한다면 역사적 사건을 다만 세 가지로 국한시킬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 잘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두 번째 역사적 측면을 고려할 때 작품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요?

나: 이 역시 정치경제적 측면과 완전히 구분되지는 않습니다. 작품은 고조선 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에서 한인들이 얼마나 피해자로 살아왔는지를 보여줍니다. 사실 한민족은 평화를 사랑하는 유순한 동이족의 후손들입니다. 사실 한국 역사를 고려할 때 흰옷들은 다른 나라를 침공하거나, 노략질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너: 예를 들자면?

 

: 두 가지만 예를 들겠습니다. 첫째로 단군 2세 부루는 기원전 2240년에 임금이 되었는데, 가장 현명한 성군으로 알려져 있고, 중국의 우왕이 부루에게 찾아와서 물 다스리는 법을 배워갔는데, 이로써 황하를 장악하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둘째로 세종은 1419년 이종무로 하여금 대마도를 정벌하게 했는데, 주민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땅을 그곳 주민들에게 아무런 대가없이 돌려주었습니다. 대마도 정벌 역시 땅을 차지하려는 의도에서가 아니라, 왜구를 소탕하기 위한 일환으로 이루어진 사건이었습니다.

 

너: 한민족이 다른 나라를 침공하여 땅을 차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인들을 무조건 선하게 보는 시각에도 하자가 있을 것 같습니다. 보이스 피싱 등으로 사기 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던데요?

나: 아, 제 말씀을 오해하지 말기 바랍니다. 다만 인성의 토대에 있어서 그렇다는 말이지, 모든 것을 일반화시켜서 그렇게 주장할 수는 없지요.

 

너: 알겠습니다. 세 번째 철학적 측면에서 시작품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요?

: 작품 「점치는 아이」는 피해당하고 살아온 한인들의 아픔과 불안을 문학적으로 형상화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쓰라린 고통과 피해를 망각 속에서 끌어내야 합니다. 그래야 구천에 떠도는 중음신에 대한 살풀이가 가능하지요. 한민족은 1500년 동안 중국의 압제의 희생양으로 살아왔으며, 500년 동안 일본의 크고 작은 폭력에 시달려왔습니다. 이러한 피해는 낙동강의 고무다리에서 그대로 드러났다는 게 이달희 시인의 입장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중국인과 일본인들은 이러한 한인들의 한 많은 역사 그리고 분단 상태에 머리를 숙이면서 사죄하기는커녕, 자신들의 이득에만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 점은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앞으로 3000년 이상 지속된 피맺힌 한반도의 질곡의 역사를 끊어내는 시작품이 발표되기를 기대합니다.

: 말씀 감사합니다.

 

점아 점아

콩점아

밥 해주께 나온나.

보릿고개 굶어 가신

증조할매야 증조할매야

나온나.

 

점아 점아

콩점아

떡 해주께 나온나.

만세부르다 돌아가신

할베야 할베야

나온나

 

점아 점아

콩점아

술 해주께 나온나

따발총에 맞아 가신

아부지야 아부지야

나온나

 

점아 점아

콩점아

묵 해주께 나온나

돌 던지다 총울 맞은

오빠야 오빠야

나온나

 

점아 점아

콩점아

마히 묵고 가거라.

소꿉 양식 적지마는

소꿉 반찬 적지마는

마히 묵고 가거라. (이달희: 낙동강 시집, 서정시학 2012, 49 -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