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명시 소개) (1) 풍요와 불모 사이. 장석의 시 「두루미에게」

필자 (匹子) 2021. 9. 9. 11:05

: 안녕하세요? 오늘은 장석 시인의 시 「두루미에게」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2020년에 강 출판사에서 간행된 시집 『우리 별의 봄』에 실려 있습니다.

: 장석 시인은 198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다음 거의 작품 발표를 하지 않다가, 최근에 두 권의 시집을 간행하였습니다. 시집 『우리 별의 봄』과 함께 이전의 시작품을 모은 『사랑은 이제 막 태어난 것이니』 역시 같은 해 간행되었습니다. 거의 150편의 시작품 가운데에서 왜 하필이면 「두루미에게」를 선정하였는지요?

 

: 에른스트 블로흐는 영특한 사고가 같은 문장을 일곱 번 숙고할 때 떠오른다고 말했습니다. 한 문장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되씹으면, 그만큼 더 깊이 있는, 때로는 이질적인 의미가 도출된다는 뜻이지요. 장석 시인의 시집 두 권에 실린 150편의 시 작품 가운데 하나만을 떼내어 분석하는 것은 어쩌면 작위적이고 단선적일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하나를 집중적으로 구명하면, 시적 주제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리라고 여겨집니다.

: 재미있는 말씀이로군요. 하기야 여러 편을 분석하는 것보다는 한 편이라도 심도 있게 천착하는 게 더 나을지 모르지요. 우리도 일곱 번 정독해 보기로 합시다.

 

 

 

가을이 걸어온 길이 아스라하다

 

드러누워 있는 내 가슴팍을

이리저리 헤집고 걷던 그가 말한다

 

자네 가을걷이가 가멸치 못했는가

논자리도 줄고 습지도 퍽 말랐네

낙곡도 시원찮고 풀씨도 드물어

미꾸리도 찾기 어렵고

 

정수리 붉은 선비여

멀리 다시 찾아준 손님이여

 

나는 한때 가슴 한쪽만 해도

열 섬이 넘는 황금 벼이삭을 내었지

늘 물이 이마까지 찰랑거리고

이어 펼쳐진 갯벌에는

망둥어랑 게랑 끊임없는 소로를 짓고

 

그러나 그건 기름지지만 유한한 젊음에

그리고 남의 일에 기댄 일이었어

 

우리는 풍요를 거두면서

불모를 소리쳐 부르네

 

오는 봄 신이 나를 갈아엎어버리기 전에

땅이 풀리고 볕이 발그레할 때

가장 양지바른 쪽에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올라오는

마지막 싹 한 개를 틔우고 싶네

 

내 궁리와 내 땅심과 내 영혼으로

 

검은 깃을 단 흰 옷 처림의 그대여

 

뚜루루루

한바탕 춤을 추고 떠나가주오

(장석: 「두루미에게」, 시집 『우리 별의 봄』 강, 122 - 123쪽.)

 

 

: 작품의 화자는 다양한 것 같습니다. 때로는 시인 자신의 발언으로 이해되고, 때로는 시적 화자를 가리키며. 때로는 두루미가 화자인 것 같아요. 작품에서 시적 자아인 “”는 의인화된 땅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마치 추수를 끝낸 농사꾼의 들판일 수 있습니다. 시는 여러 개의 독립된 연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이는 의도적인 것 같습니다.

: 네, “나”가 하나의 장소, 장년의 나이에 이른 바닥나기라면, 두루미는 “멀리 다시 찾아준 손님” 내지 방랑자지요. 두루미는 “검은 깃을 단 힌 옷차림의” 마치 “선비”와 같은 존재입니다.

 

너: 정수리가 붉은 것으로 미루어 학, 그것도 단정학을 지칭하는 것 같습니다. 단정학의 머릿 부분의 붉은 표시는 깃이 아니라, 도톰한 돌기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두루미는 제 1급 멸종 위기동물로서 시베리아에서 새끼를 키우며 여름을 보낸 다음에 가을이 되면 한반도의 철원 등지로 찾아와서 그곳에서 겨울을 보내는 날짐승입니다. 두루미는 정기적으로 600킬로미터에서 1000 킬로미터를 비행합니다. 특히 두루미의 날갯짓을 바라보면, 우리는 저세상에서 살아가는 생명체의 춤사위를 감상할 수 있지요.

: 재미있는 것은 수확을 끝낸 땅 그리고 날짐승의 조우입니다. 땅은 “황금 벼이삭”을 가꾸고, “이마까지 찰랑거리”는 강물을 끼고 있으며, 그 가장자리는 “갯벌”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땅이 변함없이 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존재라면, 두루미는 이리저리 방랑하는 생명체에 해당합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