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명시 소개) 권경업의 시,「소를 잡아먹는 야만인들」

필자 (匹子) 2021. 7. 22. 10:29

나: 권경업 시인은 2016년에 시집 『동물의 왕국』(빛남출판사)을 간행했습니다. 오늘은 여기에 실린 시편 하나를 선택하여 논해보기로 하겠습니다.

너: 이 시집에 드러난 시적 경향은 어떠한지요?

나: 이전 시집과 비교할 때 사회 비판적인 요소가 많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시어 구사에 있어서 꾸밈이 없고, 진솔한 편입니다. 이러한 특성은 이전의 시적 경향과는 많이 다른 것 같아요.

 

너: 동감입니다. 시원시원한 직설적 표현을 통해서 시인은 풍자 문학의 특성을 여지없이 보여줍니다. 이러한 특성은 장단점을 지니고 있지요. 독자에게 시인의 입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게 강점이라면, 어떤 암시나 함축 등과 같은 시적 특성이 약화된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일 수 있습니다. 작품들 가운데 「소를 잡아먹는 야만인들」을 골라보았습니다.

 

소를 잡아먹다니, 야만인들

 

이 세상 인간에게 제일 많은 도움을 준,

제일 많이 헌신한

소를 잡아먹다니 야만에 야만인들

동창이 밝기도 전에

대꼬챙이에 생살 뚫린 코뚜레

코가 꿰여 밭두렁 논두렁

오른쪽 왼쪽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서

새참에 잠깐, 새끼에게 젖 물리라면 젖 물리는

그 선하고 큰 눈망울의 소를 잡아먹다니

야만에 야만의 종족, 쇠고기를 먹는 인간과는

상종할 수 없다

써레질, 쟁기질, 멍에에 멍이 들어 목뼈가 내려앉고

인간들의 바리바리 짐바리, 길마에 허리가 휘어도

무슨 업보인지 그저 낮은 음정의 음매 소리 뿐

새끼에게 줄 젖까지 다 빼앗기며

그 젖으로 피와 살을 이루어온 인간의 손에 끌려

끝내 도살장에서

살 한 점, 피 한 방울, 뼈 한 조각,

소머리 곰탕에, 심지어 등골까지 빼내어

가죽, 뿔까지 인간을 위해 바친 소를

이제는 그만 잡아먹어야지, 야만에 야만스러운 인간들

너희들이 같은 동물이냐?

독거노인 한 분의 생계비를

애완견 한 마리의 사육비에 써버리는

너희들이, 같은 동물이냐?

 

“대한민국 국회는 소의 도살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켜야 할 것이다.”

 

나: 시인은 실제 현실의 이야기를 그대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소는 죽은 뒤에도 인간들에게 모든 것을 바칩니다. 소가 사망한 뒤에 쓸모없는 부위는 하나도 없다고 하지요. 야만의 두발짐승은 “소머리 곰탕에, 심지어 등골까지 빼내어” 먹으니까요.”

너: 그렇습니다. 살아 있을 때는 “멍에에 멍이 들어 목뼈가 내려”앉을 정도로 일하고, “코뚜레”에 꿰여 “바리바리 짐바리”로 평생 노동하지요. 죽은 뒤에는 인간에게 도륙당하여 모든 것을 빼앗깁니다. 죽은 소에게서 인간이 거두어가지 않는 것은 오로지 하나 -  어금니 이빨이라고 하더군요.

 

나: 소는 지금 이 순간에도 도축장에서 죽어나갑니다. 사람들은 당연한 듯이 소의 목숨을 끊습니다.

너: 젊은 시절에 박종화의 다섯 권짜리 대하소설 『임거정 (林巨正)』을 탐독한 적이 있었습니다. 서림의 바람피우는 이야기는 참으로 흥미진진했던 기억이 납니다. 주인공은 사회에서 가장 천하게 취급당하는 백정으로 살아가는데, 소를 도축을 끝낼 때마다 죽은 소의 영혼을 위해서 손에 묻은 소피를 닦으며 제사를 지내더군요. 다음 생애에서는 핍박당하며 살지 말라고...

 

나: 홍명희의 『임꺽정』에도 백정의 일과는 언급되고 있지요. 사실 인도에서는 소가 도축되지 않아요. 처음에는 이 사실을 기이하게 여겨졌는데, 나중에 그 의미를 알게 되었어요. 소는 인도에서는 영물이라고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더 이상 쇠고기를 먹지 않아요.

 

너: 그렇다면 옛날에는 잘 드셨다는 말씀인데...

나: 너무 순박한 놈의 커다란 눈동자를 바라본 다음부터 쇠고기 섭취를 끊었답니다. 당시는 광우병 사태가 발발했던 무렵이었지요. 야만인들은 소를 빨리 성장시키기 위해서 초식동물에게 육고기 사료를 먹였습니다. 이로 인해서 소들은 광우병을 앓게 되었지요. 그래서 쇠고기 섭취를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너: 저와는 식성이 완전히 다르군요. 저는 쇠고기라면 거의 환장하는 편입니다. 육회를 가장 좋아하니까요.

나: 어찌 내가 당신더러 쇠고기를 절대로 먹지 말라고 강권할 수 있을까요? 다만 한 가지 알려드릴 게 있어요. 채식 위주의 섭생이 건강에 가장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가령 쇠고기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 치고 80 세를 넘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요. 쇠고기는 영양학적으로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를 빨리 끌어올리지요. 오죽하면 자기 돈을 주고 쇠고기를 사먹지 말라는 말이 나왔을까요? 각설 인간의 건강에 가장 도움이 되는 식생활 방법은 “(해산물)채식주의 Pescetarismus라고 합니다.

 

너: 나에겐 섬뜩하게 다가오는군요. 시작품 분석으로 돌아가지요. 마지막 몇 행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독거노인 한 분의 생계비를/ 애완견 한 마리의 사육비에 써버리는/ 너희들이, 같은 동물이냐?”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 여기서 오히려 쭈글쭈글 노인을 싫어하고 외면하는 사회적 풍토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돈이 많다 하더라도 21세기 현대 사회에서 고독하게 삶을 마감하는 독거노인은 다반사지요. 젊은이들은 노인 한 사람을 친구로 사귀면 좋을 텐데 말이지요.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배우려면 책을 읽는 것 외에도 노인들의 삶의 경험을 추체험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너: 그렇다고 시인이 반려견과 함께 하는 삶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나: 그렇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너: 코메디언 이경규도 말한 바 있는데, 반려견 혹은 반려묘과 함께 하는 삶은 어린이들의 정신질환을 떨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하더군요. 문제는 사람들이 작은 개를 키우다가, 성장하게 된 큰 개를 유기하는 데 있는 것 같아요. 나아가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데, 부자들은 비싼 사육비를 아깝게 생각하지 않지요.

나: 언제 우리는 -인도에서 그러하듯이- 소가 마음대로 활보하는 세상을 접할 수 있을까요? 시인도 말했듯이 최소한 “소의 도살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려면, 우리의 의식 자체가 서서히 변해져야 할 것 같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