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 46

서로박: (2) 보브롭스키의 '레빈의 방앗간'에 등장하는 다섯 개의 유령 상(像)에 관하여

(앞에서 계속됩니다.) 3. ‘나’의 할아버지 요한과 유태인 레오 레빈 소설은 한마디로 방앗간의 소유를 둘러싼 법적 소송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야기는 일관성 있게 이어지는 게 아니라, 주변 인물들의 다양한 시각에 의존해서 이어진다. 또한 보브롭스키가 간결한 문장을 동원한 것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즉 보브롭스키는 법정 투쟁의 문제를 논리적으로 구성하려는 게 아니라, 여러 민족들이 공존하고 있는 동구의 구체적 현실을 생생하게 재현하려는 데에 비중을 두었다. 주인공 ‘나’의 할아버지, 요한은 마을에서 비교적 부유한 계층에 속하는 침례교 신자이자 독일인 소 기업가인데, 프로이센 황제에게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다. 그는 경쟁자인 레빈의 방앗간을 하루 밤 사이에 가로채 버린다. 그러니까 요한은 댐 상류의 물을..

45 동독문학 2024.12.19

서로박: (1) 보브롭스키의 '레빈의 방앗간'에 등장하는 다섯 개의 유령 상 (像)에 관하여.

“나의 아버지는 보라매였다. 할아버지는 늑대였다. 그리고 증조부는 바닷속의 강도와 같은 생선이었다.”   1. 들어가는 말 요하네스 보브롭스키 (1917 - 1965)의 "레빈의 방앗간. 나의 할아버지에 관한 34개의 문장 Levins Mühle. 34 Sätze über meinen Großvater" (1964)은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 사이에 빚어지는 생존 문제와 갈등을 예리하게 묘파하고 있다. "레빈의 방앗간"은 독일인, 폴란드인, 리투아니아인 그리고 그들 속에 섞인 유대인들이 겪게 되는 정치적 그리고 경제적 갈등의 양상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보브롭스키는 시를, 특히 산문을 쓰는 의도가 “동부 지역의 민족에 대한 독일 민족의 불행한 죄의식을 표현하는 데 있다”고 명확히 밝힌 바 있다. 이로써 그는 ..

45 동독문학 2024.12.18

서로박: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 5

필자의 저서,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 5. 보위에로부터 피어시까지, (울력 2023)가 2024년 세종도서 학술부문 추천도서로 선정되었습니다.심사위원들을 살펴보니, 필자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그렇다면 그들은 인맥, 지연, 학연 (필자가 누구인지, 어느 지역 출신인지, 어느 학교 출신인지 등)을 무시하고, 오로지 책의 내용만 고려하여 추천 도서로 선정한 셈입니다.이 점에 대해 심사위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나이에 상관 없이 겸허한 마음으로 노력하겠습니다.

1 알림 (명저) 2024.12.17

서로박: (2) 체자레 파베세의 두 편의 소설

(앞에서 계속됩니다.) 7. 언덕 위의 집: 고독을 추구하는 스테파노의 낯선 존재는 두 번째 작품 『언덕 위의 집La casa in collina』에서도 다시금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1947년에 완성되어 이듬해에 발표되었습니다. 소설의 시점은 1943년 초여름으로서 북부 이탈리아에서도 독일군이 세력을 키워나가고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나이 마흔의 중년 남자, 코라도입니다. 그는 이탈리아 투린에 있는 중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거주하는 곳은 도시 외곽에 있는 어느 언덕의 집입니다. 이 집에는 두 명의 여인이 살고 있습니다. 코라도가 도시를 떠나 생활하는 까닭은 전투기 폭격을 당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전쟁의 와중에서 코라도는 오후에 틈만 나면 산책을 합니다. 산책길에서 코라..

34 이탈스파냐 2024.12.16

서로박: (1) 체자레 파베세의 두 편의 소설

1. “사랑은 미친 짓이다”: 이탈리아의 작가, 체자레 파베세 (Cesare Pavese, 1908 – 1950)는 “사랑은 혐오를 남기는 위기다.L'amore è una crisi che lascia antipatie”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현대인 가운데 이 말에 동의하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왜냐면 대부분 사람은 무엇보다도 사랑을 통해 자신의 고유한 행복을 갈구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파베세에 의하면 당사자에게 어떤 위기를 안겨준다고 합니다. 왜냐면 사랑하는 순간 인간은 크고 작은 괴로움에 휩싸이고, 자신의 임에 의해 종속되거나 지배당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러한 견해를 무조건 옳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성 (여성, 혹은 남성)에 대한 부담감을 어느..

34 이탈스파냐 2024.12.16

서로박: (3) 미셸 푸코의 '성의 역사'

(앞에서 이어집니다.) 10. 고대 그리스인들의 성: 마지막으로 『성의 역사』 제 4권에 관해서 언급하려고 합니다. 철학자는 초기 기독교의 성의 윤리를 중점적으로 탐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적 갈망에 대한 해석과 관련되는 물음이기도 합니다. 17세기 이래로 성은 수많은 발언을 낳게 하였으며, 지식의 물신 숭배적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1984년에 푸코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의 관심을 끄는 것은 성 문제를 논의할 때 개개인에게 유효한 어떤 방법론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인간이 과연 쾌락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 하고 묻습니다. 뒤이어 푸코는 고대 사회로 자신의 시각을 돌리고 있습니다. 기원전 4세기에 그리스 사람들은 자신의 성적 향유를 즐겼습니다. 그들의 육체와 사랑에 관한 자극을..

33 현대불문헌 2024.12.15

서로박: (2) 미셸 푸코의 '성의 역사'

(앞에서 계속됩니다.) 5. 권력의 차원에서 이해되는 성: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의 성을 활용할 수 있는 권력의 전략을 세워나가는데, 이에 대한 전제조건이 서서히 실제 현실에서 관철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전략의 접점으로서 가족이라는 체제를 고찰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은 가족이라는 체제를 통해서 가족 구성원들의 성을 억압하거나, 그들의 성을 향유하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가부장주의의 기본적 토대가 은밀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가족이라는 체제는 18세기 중엽부터 새로운 권력 유형을 도입하는 계기로 작용합니다. 생물학은 그 자체 성을 조절할 수 있는 권력의 영역으로 자리매김합니다. 이를테면 생물학적 권력은 현대에 이르러 인구 조절이라든가 육체와 관련되는 제반 정책을 ..

33 현대불문헌 2024.12.15

서로박: (1) 미셸 푸코의 '성의 역사'

“윤리는 하나의 검투장이다,” (푸코) 1. 『성의 역사 』 제 4권이 간행되다.: 1918년 초에 드디어 놀라운 책이 간행되었습니다. 그것은 미셀 푸코의 『성의 역사Histoire de la sexualité』 제 4권, 『육체의 고백Les aveux de la chair』을 가리킵니다. 이 책은 푸코가 1984년 58세로 사망한 지 34년 만에 처음으로 파리에서 간행된 책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성의 역사Histoire de la Sexualité』를 살펴보는 것은 뜻 깊은 일일 것 같습니다. 『성의 역사』는 세 권의 분량으로 거의 6년의 간격으로 간행되었습니다. 제 1권 『앎을 위한 의지La volonté de savoir』는 1976년에, 제 2권 『쾌락의 활용L'usage des plaisirs..

33 현대불문헌 2024.12.15

페터 후헬의 시 '재판'

재판 페터 후헬 폭력의 비호 하에 살려고태어난 건 아니지만,나는 죄인의 무죄를 받아들였다. 강자의 권리로써정당성을 지닌 채판사는 무뚝뚝하게 내 서류를 뒤적이며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관대한 처분을전혀 원치 않은 채나는 몰락하는 달의 가면 속 한계 앞에서재판정에 서 있었다. 벽을 노려보다가나는 기사 (騎士)를 바라보았다. 어두운 바람은그의 눈을 꽁꽁 묶어두었고,엉겅퀴의 포자 (胞子)들이 덜거덕거렸다.바람은 오리나무 아래에서 강을 부추기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시대의 여울 속에서의연히 걸어가지는 않는다.물은 대다수의 발아래에 놓인돌들을 이리저리 옮겨놓는다. 벽을 노려보는 동안에피 묻은 그 연기를그래, 여명이라고명명할 수는 없구나,나는 판사의 판결을 듣고 있었다,누렇게 바랜 서류 속에서나온, 찢겨진 문장..

21 독일시 2024.12.14

서로박: (2) 버지니아 울프의 '3 기니'

Jacques-Émile Blanche가 그린 버지니아 울프  (앞에서 이어집니다.) 5. 문제는 무의식적 히틀러주의에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파시즘이라는 끔찍한 테러에 완강하게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성들이 가장 먼저 행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가부장 중심의 세계관에 대항하는 투쟁이어야 합니다. 가령 잔인한 가부장 중심의 의식은 “무의식적 히틀러주의unconscious Hitlerism“라고 합니다. 무의식적 히틀러주의는 여성에 대한 차별, 권력 의지 그리고 남성적 의향을 방해에는 모든 것에 대한 선전포고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개개인의 의식 속에 이미 사도마조히즘적 특징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바꾸어 말해 지배 그리고 굴종은 버지니아 울..

36 현대영문헌 2024.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