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현대불문헌

서로박: (3) 미셸 푸코의 '성의 역사'

필자 (匹子) 2024. 12. 15. 10:40

(앞에서 이어집니다.)

 

10. 고대 그리스인들의 성: 마지막으로 『성의 역사』 제 4권에 관해서 언급하려고 합니다. 철학자는 초기 기독교의 성의 윤리를 중점적으로 탐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적 갈망에 대한 해석과 관련되는 물음이기도 합니다. 17세기 이래로 성은 수많은 발언을 낳게 하였으며, 지식의 물신 숭배적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1984년에 푸코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의 관심을 끄는 것은 성 문제를 논의할 때 개개인에게 유효한 어떤 방법론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인간이 과연 쾌락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 하고 묻습니다.

 

뒤이어 푸코는 고대 사회로 자신의 시각을 돌리고 있습니다. 기원전 4세기에 그리스 사람들은 자신의 성적 향유를 즐겼습니다. 그들의 육체와 사랑에 관한 자극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조절하려고 했습니다. 자기 스스로 성을 조절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초기 로마 시대의 사회가 중요하게 부각될 수 있습니다. 가령 초기 로마 시대의 스토아 사상가들은 성 내지 자기 자신의 문화 등에 관해 불신의 감정을 품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유형에 골몰하는 대신에 기도와 명상 등으로 내적 사고를 훈련해 나갔습니다. 어떤 특정한 양식을 억누르기 위하여 고대 사람들은 존재의 미학을 발전시키려고 했습니다. 지혜의 은사들은 자신의 삶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창조하려고 했습니다.

 

11. 기독교 신앙에 나타난 성 (1): 1980년대 초에 푸코는 어떤 다른 영역에 골몰했습니다. 그것은 초기 기독교가 전파될 무렵의 현실이었지요. 푸코는 기독교 교부의 책을 읽으면서 육체의 고백을 발전시켜나갔습니다. 죽기 2개월 전까지 그는 자신의 원고를 수정하고 또 수정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책에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기원후 2세기에서 4세기 사이에 기독교 사상은 푸코에 의하면 새로운 계명이 아니라, 주관주의의 어떤 형태를 고안해내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육체와 관련되는 어떤 유형의 체험에 의해서 심층적으로 변화된, 자신에 대한 관계를 가리킵니다.

 

육체와 정신의 삶은 새로운 실천에 의해 규정됩니다. 기독교는 자신의 신자들에게 자기 자신을 죄 지은 자로서, 죄인으로 참회하도록 강권하기 시작했습니다. 신자는 의무적으로 자신의 성적 욕망과 관련되는 모든 속내를 의무적으로 고해해야 합니다. 육체의 갈망에 따라 살아가는 것은 심장의 신비주의 속으로 파고드는 일과 동일합니다. 자신의 육체와 심장에 귀를 기울이면서, 궁극적으로 찾아내는 것은 성욕인데, 이로써 신앙인은 자신이 어째서 참회해야 하는가? 에 대한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12. 기독교 신앙에 나타난 성 (2): 기독교를 믿는다는 것은 모든 유혹에 대항하는 처절한 투쟁을 뜻합니다. 성은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서 하나의 본질적 열망 내지 죄악와 결착된 무엇으로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써 어떤 일이 발생했는가요? 푸코는 하나의 분계선을 명확히 지적합니다. 고대 사람들은 이성을 통원하여 성을 향유하였습니다. 이에 반해 기독교인들은 열망을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는 열망의 해석학을 낳게 했습니다. 고대 그리스 그리고 초기 로마의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절제하려고 했습니다. 이에 비하면 기독교 신자들은 자기 자신의 존재 내지 자신의 생명적 존재를 부인하면서, 구원 내지 신적인 무엇을 중시하였습니다. 이로써 은폐된 것은 푸코에 의하면 자신의 열망,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13. 푸코는 고대든 기독교 사회든 성에 관한 관점이 모두 완벽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놀라운 것은 다음의 사항입니다. 푸코는 그리스인들의 스스로 향유하는 삶의 방식을 좋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고대 사회의 남자들을 껄끄러운 마초들이라고 여길 정도였습니다. 이에 비해 푸코는 자신이 기독교 사상에서 도출해낸 내용을 적대적으로 간주하지는 않았습니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 사회나 이후에 이어진 기독교 사회 모두 완전무결하지 않습니다. 이는 니체Nietzsche 사상을 신봉하는 무신론적 허무주의자에게는 끔찍한 결론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령 푸코가 성의 역사를 통하여 열망의 남자에 관한 하나의 엄청난 계보를 서술하고 있다면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서구 사회는 푸코의 성의 역사를 통해서 성을 하나의 영역으로 설정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대체 누군지에 관해서 분명한 사실을 전해주는 성의 영역일 것입니다. 기독교는 우리가 물려받은 어떤 핵심적 순간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가령 다음과 같은 속담은 기독교 사상의 특징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습니다. “네가 무엇을 원하는지 말해 봐, 그렇지만 나는 네가 어떠한 존재인지 알려줄게.” 그래, 푸코의 책 『육체의 고백』은 푸코 사상의 마지막 수수께끼를 정묘하게 완성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지금 여기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론을 일깨워주는 놀라운 문헌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