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현대불문헌

서로박: (2) 미셸 푸코의 '성의 역사'

필자 (匹子) 2024. 12. 15. 10:38

(앞에서 계속됩니다.)

 

5. 권력의 차원에서 이해되는 성: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의 성을 활용할 수 있는 권력의 전략을 세워나가는데, 이에 대한 전제조건이 서서히 실제 현실에서 관철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전략의 접점으로서 가족이라는 체제를 고찰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은 가족이라는 체제를 통해서 가족 구성원들의 성을 억압하거나, 그들의 성을 향유하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가부장주의의 기본적 토대가 은밀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가족이라는 체제는 18세기 중엽부터 새로운 권력 유형을 도입하는 계기로 작용합니다. 생물학은 그 자체 성을 조절할 수 있는 권력의 영역으로 자리매김합니다. 이를테면 생물학적 권력은 현대에 이르러 인구 조절이라든가 육체와 관련되는 제반 정책을 조절하는 기능을 담당하게 되는데, 푸코에 의하면 이를테면 더 나은 인종을 찾아내려는 현대의 생물학적 광기와도 얼마든지 접목될 수 있습니다.

 

6. 제 1권을 집필한 다음에 푸코, 관점을 변화시키다.: 푸코는 제 1권 『앎을 위한 의지』를 발표한 다음에 약 8년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1984년 죽기 직전에 제 2권과 제 3권을 간행하였습니다. 8년이라는 세월은 푸코로 하여금 자신의 이론의 수정을 가하도록 작용하였습니다. 푸코는 처음에 다음과 같은 이론적 관점을 고수했습니다. 즉 기독교와 결부된 어떤 도덕의 이념은 처음부터 어떤 규범적 규칙에 대한 복종을 내세우고 있는데, 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라지거나,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1960년대의 저항 운동이라든가 성의 해방 운동은 더 이상 출구를 찾지 못하고, 어떠한 도덕적 기준을 마련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푸코는 어떤 난관에 부딪치게 됩니다. 즉 “열망” 그리고 “열망하는 주체”의 근원을 추적하지 않고서는 결코 육체에 대한 기독교의 영향을 분석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푸코는 어쩔 수 없이 고대 사람들의 성 행위와 쾌락의 문제를 천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고대인들의 성행위와 쾌락이 어떤 특정한 조건 하에서 어떤 도덕적 근심이라든가 불안의 대상으로 작용했음을 분명히 밝히려고 했습니다.

 

7. 고대 사람들의 성의 실천: 이 연구에서 푸코는 오랫동안 망각되어 온 수많은 사랑과 성의 실천의 범례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고대 사람들은 이러한 범례를 통해서 그들의 육체, 그들의 실질적 존재 그리고 삶의 이행을 표현하고, 다양한 기준에 의해서 자기 자신의 사랑과 성을 달리 표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 2권 『쾌락의 활용』에서 푸코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원전 4세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과 의사들은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성의 행위들의 문제점을 지적하는가? 하는 물음을 생각해 보세요. 

 

이는 예컨대 특히 플라톤의 『향연』에서 밀도 넘치게 서술되고 있습니다. 고대 사람들은 푸코에 의하면 자신의 사랑과 성을 실천하기 위하여 어떤 인간 존재의 미학을 하나의 유희적 기준으로 내세운다고 합니다. 푸코는 제 3권 『자신을 위한 배려』에서 주제와 일치되는 그리스 라틴어 텍스트들을 살펴보면서, 그러한 유희적 기준을 추적해나가고 있습니다. 제 4권 『육신의 고백』은 기독교의 독단론이 형성된 과정을 언급하면서, 인간 육체가 어떻게 하나의 전원생활과 결착되어 성적 기능으로부터 일탈되었는지 하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8. 포괄적 배려에서 자기에 대한 배려로: 푸코는 고대의 연설문, 대화록, 논문들, 규정집 그리고 편지 모음집을 살펴보면서, 고대인들의 행동의 규칙들을 밝히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행동 규칙들은 고대인들이 도덕적으로 자기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실험적 토대로 활용된 것입니다. 이로써 나타난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육체 그리고 건강, 여성과의 관계와 결혼에 관한 문제, 소년들과의 동성애 관계 등을 고찰하고 가꾸어나가던 고대인들의 태도는 -플라톤, 이소크라테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 궁극적으로 하나의 엄격한 도덕을 형성하기 위한 모티프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포괄적인 배려와 돌봄은 푸코에 의하면 기독교가 도래함에 따라서 부분적으로 수정되었으며, “자기 자신에 대한 배려”로 축소화되었습니다. 이로써 기독교를 신봉하게 된 사람들은 오로지 자신의 순수한 향락을 하나의 목표로 설정하게 됩니다. 말하자면 기독교의 윤리는 고대의 윤리와 접목되어 있지만, 성적 행동과 관련되는 윤리적 본질을 변화시킨 셈입니다. 본질적으로 모든 성행위와 결부된 사항은 기독교의 영향으로 인하여 본질적으로 원죄에서 유래하는 필연적인 죄악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나타나는 것은 신에 대한 복종이고, 열망을 스스로 참아냄으로써 영혼을 순화시킬 수 있다는 사고였습니다. 기독교 사람들은 성과 에로스를 중시하는 대신에 이웃사랑을 강조하게 되었으며, 자기 자신을 배려하는 대신에 금욕적으로 공동체를 위하게 되었습니다.

 

9. 푸코의 이론에 대한 비판적 논거들: 사람들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른바 “윤리”를 자기 자신에게 귀결시키는 푸코의 사고를 마구 비난하였습니다. 첫째로 푸코의 사고가 사회의 도덕적 측면을 무시하고, 개인의 도덕적 측면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로 푸코는 너무 철학적 의학적 텍스트만을 중시하고, 고대 사회의 상류층의 현실만을 고려한 나머지, 고대인의 어떤 편협한 잘못된 관점을 옹호하고 있다고 합니다. 

 

푸코의 이론에 대한 이러한 두 가지 이의 제기는 근본적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역사적 자기 실천에 관한 푸코의 분석은 성과 관련되는 행동양상의 사회사 내지 이념의 역사 속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열망의 역사를 인간의 “주체화 subjectivation”의 역사로 추동하는 데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밖에 푸코의 사상에는 결코 개인주의가 자리하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 2권, 『쾌락의 활용』그리고 제 3권 『자신을 위한 배려』는 이미 『광기의 역사Histoire de la folie』의 저변에 깔린 내용을 계속 기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푸코는 자기 자신에 대한 어떤 관계 내지 타자에 대한 자신의 관계가 어떤 한계의 체험을 넘어설 수 있는가? 하고 묻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인간의 자신과 타인에 대한 배려를 도모하기 위한 어떤 정치적 에너지의 노선이 분명히 출현하고 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