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현대불문헌

서로박: (1) 미셸 푸코의 '성의 역사'

필자 (匹子) 2024. 12. 15. 10:36

“윤리는 하나의 검투장이다,” (푸코)

 

1. 『성의 역사 제 4권이 간행되다.: 1918년 초에 드디어 놀라운 책이 간행되었습니다. 그것은 미셀 푸코의 『성의 역사Histoire de la sexualité』 제 4권, 『육체의 고백Les aveux de la chair』을 가리킵니다. 이 책은 푸코가 1984년 58세로 사망한 지 34년 만에 처음으로 파리에서 간행된 책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성의 역사Histoire de la Sexualité』를 살펴보는 것은 뜻 깊은 일일 것 같습니다. 『성의 역사』는 세 권의 분량으로 거의 6년의 간격으로 간행되었습니다. 제 1권 『앎을 위한 의지La volonté de savoir』는 1976년에, 제 2권 『쾌락의 활용L'usage des plaisirs』그리고 제 3권 『자신을 위한 배려Le souci de sai』는 1984년에 발표되었습니다. 일단 3 권의 책을 살펴본 다음에 신간을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원래 푸코는 도합 여섯 권의 분량으로 책을 기획하였는데, 에이즈라는 병이 위대한 철학자의 목숨을 앗아가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사상가, 작가 그리고 페미니스트들은 『성의 역사"를 사랑의 삶에 관한 고전으로 손꼽는 데 주저하지 않고 있습니다.

 

2. 정신분석학의 고고학: 미셀 푸코는 1963년 조르주 바타유에 관한 에세이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 그는 놀랍게도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습니다. 19세기 그리고 20세기 서구의 문화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점차적으로 성을 해방시킨 게 아니라, 성을 어떤 발설될 수 있는 객체로 창안해내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현대인들은 성의 영역을 자신의 존재에 관한 진실을 찾기 위한 경험적 장소로서 파악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성이란 -푸코의 또 다른 작품 『광기와 처벌Surveiller et punir』(1975)에서 잘 드러나고 있지만- 권력의 메커니즘 속에서 서서히 발전되어온 것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푸코는 이러한 입장에서 성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기능했는가? 하는 문제를 서술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연구의 특성은 말하자면 “정신분석학의 고고학”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정신분석학은 19세기 말에야 프로이트에 의해서 비로소 태동한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성 생활 그리고 이전 체제 속에서의 성의 기능을 추적하려고 하는 것은 마치 고고학에서 과거의 흔적을 발견하려는 시도와 같습니다.

 

3. 다른 육체, 쾌락의 경제학: 푸코는 들뢰즈와 가타리가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I Capitalisme et schizophrénie I』에서 언급한 내용을 적극적으로 수용합니다. 이들은 자본주의의 체제 속에서 개별적 사람들이 얼마나 끔찍한 심리적 질병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돈거래를 통한 인간관계는 필연적으로 인간을 물화시키고, 인간 심리를 다치게 한다는 게 들뢰즈와 가타리의 지론이었습니다. 푸코는 한걸음 더 나아가 정신분석학의 분석 작업을 구제하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이것을 뒤흔들려고 계획하였습니다. 사실 정신분석학은 르네상스 이후의 역사 속에서 진리와 성에 관한 상호 관련성을 가장 명징하게 천착한 학문이지만, 푸코는 이러한 연구에 대해 사회학적인 의미로써 수정을 가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푸코에 의하면 인간은 아마도 언젠가는 어떤 다른 육체와 쾌락의 경제학을 찾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자신이 지금까지 얼마나 구차하게 성에 종속된 채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극복하게 되리라고 합니다.

 

4. 성도덕 내지 신앙고백으로 발설된, 그러나 금욕으로 나타난 성: 17세기 이후의 성의 역사를 서술하면서 푸코는 빌헬름 라이히와 마르쿠제의 억압 가설을 거부합니다. 라이히와 마르쿠제에 의하면 지금까지 종교 기관이라든가, 일반적인 교육을 통해서 그리고 의학적 치료 과정에 있어서 그리고 학문과 법 등의 영역에서 나타난 주도적인 담론은 성을 억압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에 대한 억압은 근대에 생겨난 인위적인 술책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존재하는 것이며, 지식, 권력 그리고 쾌락 등에 대한 의지 등에 의해서 압도당해 왔다고 푸코는 주장합니다. 

 

이를테면 기독교의 계명은 영혼을 달랜다는 미명으로 개개인의 성에 개입하고 관여해 왔습니다. 이는 때로는 성도덕을 통해서, 때로는 고해성사를 통해서 가능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자신의 성행위를 자세하게 서술하는 것은 거의 기독교인들의 의무로 규정되어 왔습니다. 뒤이어 18세기에는 어떤 정치, 경제 그리고 교육적 관심사가 생겨나게 되어, 일반인들은 자신의 성에 관해서 고위층에게 발설할 수밖에 없습니다. 의학, 정신병리학 그리고 교육학의 영역은 19세기에 이르러 이른바 “고백의 학문”으로 활성화되었는데, “성 과학scientia sexualis”으로 정착되는 효과를 드러냅니다. 이로써 섹스라는 전문용어가 생겨났으며, 열망의 진리를 본격적으로 추구하려는 움직임이 출현하게 되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