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동독문학

서로박: (2) 보브롭스키의 '레빈의 방앗간'에 등장하는 다섯 개의 유령 상(像)에 관하여

필자 (匹子) 2024. 12. 19. 09:32

(앞에서 계속됩니다.)

 

3. ‘나’의 할아버지 요한과 유태인 레오 레빈

 

소설은 한마디로 방앗간의 소유를 둘러싼 법적 소송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야기는 일관성 있게 이어지는 게 아니라, 주변 인물들의 다양한 시각에 의존해서 이어진다. 또한 보브롭스키가 간결한 문장을 동원한 것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즉 보브롭스키는 법정 투쟁의 문제를 논리적으로 구성하려는 게 아니라, 여러 민족들이 공존하고 있는 동구의 구체적 현실을 생생하게 재현하려는 데에 비중을 두었다.

 

주인공 ‘나’의 할아버지, 요한은 마을에서 비교적 부유한 계층에 속하는 침례교 신자이자 독일인 소 기업가인데, 프로이센 황제에게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다. 그는 경쟁자인 레빈의 방앗간을 하루 밤 사이에 가로채 버린다. 그러니까 요한은 댐 상류의 물을 방류함으로써, 레빈의 방앗간이 범람하게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누구나 이 사실을 다 알고 있다. 레빈은 억울함을 하소연하기 위하여 기독교를 신봉하는 프로이센 당국에 진정서를 제출한다. 이로써 방앗간 소유의 문제로 두 사람 사이에 도시 브리젠에서 재판이 열리게 된다.

 

한편 요한은 말켄 지역으로 가서, 주위 프로테스탄트인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한다. 동생이 주최한 세례 축제의 모임에서 요한은 목사 글린스키, 헌병 크로비콥스키 그리고 여러 명의 지방 재판관을 설득시킨다. 글린스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폴란드 세력 증대에 대항해 우리는 방어 전쟁을 펴야 하지요. 자랑스러운 제국의 가장자리 축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여기서는 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3. 52). 여기서 부 사제인 로갈라만이 유일하게 국수주의적인 입장에 동조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 레빈은 비교적 낮은 계층의 사람들과 교우한다. 그는 오갈 데 없는 단순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노이뮐 마을에 정주해서 살기 위하여 열심히 일하는 전형적인 유대인이다. 집시 하베당크와 그의 딸 마리 그리고 나중에 ‘나’의 외할머니 격인 양심적인 아줌마, 후제 등은 레빈을 돕는다. 세례 축제의 악사로 참석한 하베당크는 우연히 요한과 글린스키의 대화를 엿듣게 된다 (3. 52). 하베당크는 때로는 말장수로 때로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생계를 꾸려나가는 집시인데, 레빈과는 각별한 사이였다. 그의 딸 마리는 레빈과 애정 관계를 맺고 있는 터였다. 귀가 길에 하베당크는 가수 바이츠만텔을 만나 자초지종을 들려준다. 이로써 두 사람은 나중에 레빈을 지지하는 세력을 규합하게 된다.

 

하베당크는 노이뮐에 사는 마리와 레빈을 찾아가, 이태리 집시 서커스를 개최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지지를 호소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레빈은 이러한 제안에 전적으로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는 방앗간 문제로 극도의 절망 상태에 빠지게 된다. 레빈은 동구의 전형적인 유대인으로서 이미 그전에 폴란드 소련 지역에서 추방당한 경험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재판의 결과에 대해서 그다지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베당크는 가수 바이츠만텔, 하모니카 연주자인 독일인 빌룬, 플루트 연주자인 독일인 요한 블라디미르 게테 등과 함께 이태리 서커스인 스칼레토를 개최하기로 계획을 세운다.

 

3. 레빈의 망명과 재판의 패배

 

드디어 어느 일요일 노이뮐 마을에서 이태리 서커스가 개최된다. 그러나 레빈 그룹은 마을에서 월권행위를 저지른 사람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는다. 다만 가수 바이츠만텔이 다음과 같이 노래를 부를 뿐이다.

 

물이 어디서 거대하게 흘러오는가

아무도 몰라, 모세도 몰라 (...)

허나 밤에 물이 어디서 흘러 나왔는지

아무도 본 사람이 없을까? (...)

모두가 곤히 잠든 밤에

경건한 자들과 쾌활한 자들이야.” (3. 90f).

 

여기서 경건한 자들은 요한처럼 프로테스탄트를 신봉하는 독일인들을, 쾌활한 자들은 소수의 부유한 폴란드인 내지 독일인들을 지칭한다. 여기서 가수 바이츠만텔은 반드시 기독교인 전체를 비아냥거리고 있다기 보다는, 사회의 상류층을 형성하는 그룹들, “경작지, 가축 그리고 모든 재물들”만을 중시하는 자들을 야유하고 있다 (3. 92). 이곳에 참석한 요한은 이에 대항하기라도 한 듯이 독일인들을 규합하여 댄스파티를 벌린다. 이 대목에서 보브롭스키는 보헤미안의 민중극의 요소를 도입하고 있을 뿐 아니라, 대립하는 마을의 두 그룹을 유머러스하게 묘사하고 있다.

 

다른 한편 요한은 말켄의 주 목사 글린스키를 매수하여, 재판을 연기하도록 조처한다. 만약 노이뮐 마을의 주민들이 증인석에 오르게 되면, 이는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실제로 재판이 연기되었고, 다시금 요한은 비밀리에 증인들을 매수하려는 술책을 쓴다. 그러는 사이에 그는 레빈 그룹의 주축 인물이 하베당크임을 알아차리고, “이 음흉한 뚱뚱한 바이올린 쟁이”, “사기꾼 집시”를 추방시킬 계획을 세운다. 실제로 요한은 농부 필히의 작은 집에 불을 지른 방화자가 바로 하베당크라고 주장하며, 그를 당국에 고발한다. 그러나 하베당크는 로갈라 부목사의 도움으로 알리바이를 얻고 난 뒤에 풀려난다. (3. 141 - 146). 특히 그 해 여름에 침례교 신자들끼리 축제를 벌이는데, 여기서 마을에 사는 여러 민족들 사이에 갈등이 첨예화된다. 특히 요한의 “폴라케” 발언으로 인해 주먹질이 오가게 된다. 이때 요한은 자신을 지지하는 젊은이들로 하여금 마을 사람들에게 몽둥이세례를 가하게 한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고 난 뒤에 노이뮐에서 요한의 입지는 현저히 약화된다. 결국 요한은 부인 크리스티나와 함께 도시 브리젠으로 이사해 버린다.

 

그러나 재판이 아직 끝나지도 않은데도 레빈은 패배를 스스로 자초하고 만다. 도저히 승산이 없다는 것을 느낀 그는 노이뮐 마을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고, 마리와 함께 유태인들이 사는 콩그레스 폴란드 지역으로 떠나버린 것이다. 허탈감에 휩싸인 하베당크, 게테, 빌룬은 이태리 서커스단에 가담하여 노이뮐 마을을 떠나게 되고, 바이츠만텔은 방랑 가수로 자취를 감추게 된다. 결국 원고가 사라진 재판에서 승리하게 된 피고, 요한은 레빈의 방아간 및 모든 재산을 팔아치운다. 방앗간 사건으로 이득을 본 사람은 독일의 부유한 농부이자 식당 주인인 로징케였다. 그후 노이뮐은 이곳에 주둔한 프로이센의 군인들에 의해서 평온을 되찾는다. 나이든 요한은 1874년에 브리젠에 있는 정원에서 신문 기사를 접하게 된다. 그것은 “유태 민족의 기형적 발전, 난동 그리고 오만 불손”에 관한 것이었다. 이때 요한은 베를린의 필자에게 편지를 보내어, 자신의 문제를 기사화함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한다. 이렇듯 요한은 자신의 행위가 애국적이었다고 끝까지 맹신한다.

 

소설은 다음과 같이 ‘나’의 독백으로 끝나고 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한다. 차라리 이 모든 이야기가 북쪽에서, 특히 북동쪽의 지역에서 전개되는 것으로 다루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 왜? 이 이야기는 수많은 지역과 장소에서 발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일어난 하나의 예로 다루어야 한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무엇이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는가? 폴란드인과 독일인 혹은 기독교인들과 비 기독교인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여기서 다른 것을 보았으며, 이에 관해 서술하지 않았는가? 아마 바이츠만텔은 이를 노래하리라.” (3. 222).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