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 37

서로박: (2) 문창길의 시, 꽃의 상징성

(앞에서 계속됩니다.) 3. 凹: 이어지는 시는 「메꽃 2」입니다. 가슴이 시큰거려 온다 굼실굼실 더듬어 올수록 무슨 살맛을 알았는지 뻔질나게 드나드는 들개미는 헐어빠진 가랭이 사이로 성긴 발길이 분주하다 하혈이 흐르는 세상 좀 더 아름답게 살기 위하여 낮게 엎드려 꿈꾸는 동구밖 암캐 같은 꽃님이 분홍옷 벗고 거친 숨을 몰아 쉴 때마다 움켜진 흙 한 줌... 실뿌리 같은 주먹 손으로 부끄러운 속살을 감추지 못하는 슬픈 꽃잎 하나 묻고 있다 凹: 두 번째 작품은 첫 번째 작품과는 달리 둔탁하고 작위적인 사랑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凸: 그건 유연한 만남을 통한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메꽃은 작품에서 몸을 파는 여성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凹: 그렇습니다. 곤충 한 마리가 메꽃의 알몸으로 향해 “..

19 한국 문학 2024.01.09

서로박: (1) 문창길의 시, 꽃의 상징성

1. 凸: 안녕하십니까? 선생님께서는 문창길 시인의 작품, 「메꽃 1」. 「메꽃 2」를 논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훌륭한 시편도 많은데 왜 하필 이 두 편을 선정했는지요? 凹: 그것은 세 가지 사항, 즉 사랑과 평화 그리고 통일 가운데 하나의 중요한 테마와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문창길 시인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지향점을 집요하게 추적해 왔습니다. 첫 번째는 저주스러운 성폭력의 역사를 끊어낼 수 있는, 하해와 같은 사랑이고, 두 번째는 폭력과 참혹한 전쟁을 극복하게 하는 평화이며, 세 번째는 시기와 암투 그리고 증오를 근본적으로 끊어낼 수 있는 연대의식을 가리킵니다. 이 가운데 문 시인의 작품은 특히 사랑의 본질적 의미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凸: 네, 사랑, 평화 그리고 통일은 민초들의 구체적이고 절실한 ..

19 한국 문학 2024.01.09

(단상. 499) 다시 일일삼성

일반 사람들은 몸이 아프면 망설임 없이 병원에 간다. 종합 병원에는 나이 든 환자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이 아프거나 판단이 서지 않을 때 심리학자나 인문학자를 찾지 않는다. AI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믿고 있다. 바로 이 점이 인간 동물의 발전을 저해하는 근본적인 사항이다. 문제는 나를 포함한 사람들의 아집이다. 나이가 들면 일상에 주눅이 들어서 스스로의 판단을 변화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200년 살아온 느티나무는 우람한 풍채를 자랑하는데, 팔십 나이의 사람들은 꼬장꼬장 말라비틀어진다. 물론 외모가 중요한 게 아니다. 독서와 사색, 끝없는 자기반성과 수련이 없으면, 인간은 불필요한 무지렁이로 전락한다. 소크라테스는 “당신의 무지를 알라.”고 일갈하며 다녔다. 그리스 철학자는 무지가 ..

3 내 단상 2024.01.09

서로박: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불의와 금기에 완강하게 저항하는 영화감독, 그는 다혈질에다, 공격적이며, 자기 파괴적인 인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극단을 추구하는 그는 타협을 멀리하고, 놀라운 예술작품을 탄생하게 하였으며, 그의 삶에 있어서도 열광과 분노를 추적하게 하였습니다. 그의 영화가 억압 그리고 절망을 주제로 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Rainer Werner Fassbinder, 1945 - 1982). 마흔도 되지 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독일의 영화감독은 한국의 가수 GOD의 김태우를 많이 닮았습니다. ㅎㅎㅎ 그는 의사인 아버지와 번역가로 활동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나이 6세가 되었을 때 부모는 이혼하였으므로, 1951년부터 어머니에 의해 양육 받았습니다. 이혼..

16 독일 영화 2024.01.08

박설호의 시, '윤이상'

윤이상박설호 내 다시 겪을 수 있으랴통영여고 음악실에서서툴게 바이올린 껴안던보조개 그미의 하얀 블라우스검은 치마 가까이서 숨죽이던동백꽃의 향기를 내 어찌 잊을 수 있으랴비진도 숲속의 현호색평생 함께 살자 하던고백의 순간 봄의 두근거리던욕망을 그림자로 가려주던팔손이 나뭇잎을 내 온통 삭일 수 있으랴통영 갓집 돌담 아래조개구이 냄새 풍기던 저녁처녀 귀신 그림자 학도병의눈물처럼 물결 튕기던 파도해외 유학의 꿈을 실린 곳: 박설호 시집 "반도여 안녕 유로파", 울력 2024.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 尹伊桑 , 1917 - 1995) 의 교향곡 모음집  다음을 클릭하면 윤이상에 관한 이야기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https://www.youtube.com/watch?v=r9EEnHGaTIs

20 나의 시 2024.01.07

(단상. 498) 정치 테러 대신에 투표 참여를 !!!!!!!

1968년 4월 11일 독일의 젊은 네오나치는 베를린에서 학생 운동가, 루디 두치케에게 세 발의 총을 쏘았습니다. 이때 두치케는 쓰러졌습니다. 뇌에 커다란 손상을 입은 그는 그 여파로 몇 년 후에 사망했습니다. 사람들은 끔찍한 테러의 주범을 누구보다도 독일 정부와 악셀 슈프링어 재단으로 돌렸습니다. 악셀 슈프링거 재단이 발간하는 빌트BILD 신문은 학생 운동을 공산주의자들의 소행이라고 말하면서 그들을 악마화하는 데 열을 올렸던 것입니다. 독일의 시인 볼프 비어만은 시작품, "두치케에게 향한 세 개의 총알Drei Kugeln auf Dutschke"에서 보수 정부, 국회의원 그리고 언론이 안타까운 젊은이를 죽음으로 몰아갔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로부터 57년 후에 비슷한 사건이 한국에서 발생했습니다. 2024..

3 내 단상 2024.01.06

박설호: (4) 흙의 권리. 오르플리트 서한집. 서문

(앞에서 계속됩니다.) 13. 마지막으로 흙의 권리를 재론하려고 합니다. 여기에는 네 가지 함의가 숨어 있습니다. 첫 번째 사항은 유한한 생명의 처절함입니다. 부식질은 토양 유기체의 작용으로 식물을 탄생시키고, 자라게 하며 사멸하게 합니다. 생명의 기운은 봄이면 지상으로 솟구치고, 가을이면 지하로 내려갑니다. 가령 그리스 신화는 하데스의 페르제포네 납치라는 비유로 탄생과 사멸의 순환 과정을 설명한 바 있습니다. 식물의 기운은 겨울에는 지하에, 여름에는 지상에 머뭅니다. 생명체의 삶이 슬프고 애틋한 의미를 부여하는 까닭은 그 자체 유한하기 때문입니다. 무기물 그리고 생명의 종(種)은 무한으로 이어지지만, 생명체는 사멸을 전제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흙의 권리에 관한 두 번째 사항은 자식을 탄생시키는 여성성..

2 나의 글 2024.01.05

박설호: (3) 흙의 권리. 오르플리트 서한집. 서문

(앞에서 계속됩니다.) 9. 상기한 사항이 바로 오르플리트 서한집의 집필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필자의 편지에는 크고 작은 오류가 자리할지 모릅니다. 왜냐면 거기에는 필자의 주관적 판단 내지는 삶에 대한 구체적인 체험이 첨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판과 저항은 –역설적이지만- 어쩌면 부끄러운 체험에 대한 솔직한 고백을 통해서 더욱더 커다란 동력을 확보하지 않을까요? 중요한 것은 일방적 비판 대신에 자기비판의 성찰을 견지하는 일일지 모르겠습니다. 친애하는 M, 인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자에 대한 비판적 관심일 것입니다. 여기서 타자란 다른 사람일 수 있으며, 다른 세계일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독심술은 주어진 사항을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방식으로 고찰하려는 유연한 탐색의 ..

2 나의 글 2024.01.05

박설호: (2) 흙의 권리. 오프플리트 서한집. 서문

(앞에서 계속됩니다.) 5. 첫 번째는 분단과 불신이라는 폭력의 비합리성입니다. 불과 70년 전에 한반도에서 끔찍한 전쟁이 발생했습니다. 그 후로 우리 전의식의 배후에는 어떤 폭력의 명료한 현재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 남북한의 긴장 관계 그리고 분단이라는 힘든 고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잊을 수 없는 트라우마입니다. 고통과 상처의 아픔은 정치적 영역뿐 아니라, 인간관계의 심리 구조 속에서 두려움과 갈등을 조장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남북한은 물론이고, 사람들끼리 서로 신뢰하지 못하게 작용합니다. 이로 인하여 남한의 반공주의는 우리의 정치적 견해를 공정하게 수용하지 못하게 했으며, 북한의 전체주의 시스템은 개개인의 자유를 옥죄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갈등과 불신의 고리를 끊어내는 일이야말로 ..

2 나의 글 2024.01.05

박설호: (1) 흙의 권리. 오르플리트 서한집. 서문

“흙의 권리는 유한한 생명의 처절함으로, 여성성의 우선권으로, 물질의 중요성으로, 죽음의 소중한 가치로 설명된다.” (필자)(필자) 1. 친애하는 M, 언제부터인지 모르나, 미지의 독자, 당신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대의 상처를 내밀하게 전하는 데에는 서간체가 가장 좋을 것 같았습니다. 내가 청년이었을 때, 도스토옙스키의 『가난한 사람들 Бедные люди』 (1844/45)을 읽고, 깊은 감동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습니다. 비록 찢어지게 가난하지만, 상대방을 깊이 애호하는 마카르 제브시킨 그리고 경제적 이유로 돈 많은 다른 사내를 선택해야 하는 바바라 도브로요브스카 사이의 이별은 참으로 애절한 것이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 가난한 사람들, 석영중 역, 열린책들 2010.) 그래, 편지는 ..

2 나의 글 2024.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