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고대 문헌

서로박: (2) 아킬레우스 타티우스의 '레우키페와 클레이토폰'

필자 (匹子) 2024. 1. 2. 06:46

(앞에서 계속됩니다.)

 

5. 결혼식 전의 야반도주: 클레이토폰은 결혼식이 거행되기 전날 밤 사랑하는 처녀를 몰래 방에서 빠져나오게 하여, 야반도주를 감행합니다. 튀로스는 시돈으로부터 남쪽으로 떨어진 (현재 레바논의) 항구도시였습니다. 두 사람은 퀴로스에 정박 중인 어느 자그마한 범선을 훔쳐서 어디론가 멀리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만약 레우키페와 함께 낙타를 타고 북쪽의 육로로 도주하게 되면, 반드시 체포되어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쪽으로 뱃머리를 돌려 항해하기로 작심합니다. 그리스 지역으로 항해하면 분명히 두 사람이 정주하여 살아갈 섬 하나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여겼습니다. 작은 범선은 처음에는 연인들의 고통을 아는 듯 모르는 듯 대양으로 미끄러져 나갑니다.

 

동이 틀 무렵 갑자기 날씨가 나빠지고 거친 폭풍이 불기 시작합니다. 두 사람은 심한 풍랑을 만나 의식을 잃습니다. 난파선은 이집트의 어느 해안에 당도하게 됩니다. 클레이토폰이 인적이 드문 해안가에서 깨어났을 때, 그의 곁에는 레우키페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습니다. 배는 거의 파손되었지만, 두 사람의 생명이 온존한 것 자체가 다행이었습니다. 날씨가 따뜻한 것으로 미루어, 이곳이 남쪽 지역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뿐입니다. 클레이토폰은 정성스레 그미의 사지를 주물러 레우키페가 의식을 되찾도록 도와줍니다. 잠시 그미를 나무 아래 휴식을 취하게 한 다음 물과 과일을 찾으러 그곳을 떠납니다.

 

6. 주인공, 사랑하는 임과 헤어지고 노예로 팔려나가게 되다.: 밀림 사이로 헤집고 열대 과일을 찾고 있는 주인공의 발을 덜컥 감싸는 무엇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마포로 만든 덫이었습니다. 이집트 해적들이 아마 천으로 짜놓은 덫을 설치해 두었는데, 주인공은 덫에 걸려서 마치 산짐승처럼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리게 된 것이었습니다. 해적들은 지중해 연안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낯선 자들을 생포하여 노예로 팔아먹는, 이른바 노예사냥꾼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클레이토폰을 노예로 체포하여 어디론가 데리고 갑니다. 일순 사랑하는 레우키페의 안위가 걱정되었으나, 그미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자신이 맞이한 고통보다도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무엇보다도 깊이 사랑하는 레우키페의 안위를 보살펴줄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집트 해안에서 홀로 남은 처녀가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클레이토폰은 하루하루를 버티면서 목숨을 연명해 나갑니다. 어느 날 밤 해적들은 지중해 한 복판에서 범선의 감옥에 수감된 수십 명의 노예들 가운데 한 사람을 선택하여 포세이돈의 제물로 바치려고 합니다. 이때 클레이토폰은 자신의 단도로 목을 찔러, 마치 자신이 자살한 것으로 위장합니다. (문헌학적으로 고찰할 때 단도로 위장하여 자살하는 이야기는 서양 문학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교묘한 술수를 바탕으로 주인공은 죽음을 모면하게 됩니다. 해적들의 배는 다시 북쪽으로 향합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터키의 에베소라는 도시였습니다.

 

7. 주인공 사랑에 굶주린 과부에게 팔려나가다.: 에베소는 두 가지로 유명한 도시였습니다. 지중해 전역에서 가장 거대한 노예시장이 개최될 뿐 아니라, 헬레니즘 시대에는 가장 방종하고 향락적인 지역으로 널리 알려진 바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포승에 묶인 채 노예 상인에 의해 끌려갑니다. 판매대 위에는 수많은 노예들이 반라의 차림으로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노예들 가운데에서 가장 젊고 늠름한 모습을 드러낸 자가 바로 클레이토폰이었습니다. 그의 몸은 경매에 붙여지고, 몸값이 올라갔습니다. 결국 그를 차지하게 된 사람은 멜리테라는 이름의 과부였습니다.

 

멜리테는 30대 초반의 여성이었는데, 몇 년 전에 남편으로 여의고 사랑에 굶주려 있었습니다. 그미는 조금 전에 사들인 노예를 깨끗하게 목욕하게 한 다음에 자신의 침실로 들어오게 조처합니다. 클레이토폰으로서는 이를 거절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마치 오디세우스가 수년간 칼립소의 기둥서방으로 봉사하며 살아야 했듯이, 주인공은 비록 7년의 세월은 아니었지만, 오랜 기간 동안 과부 멜리테의 욕정을 해소시키는 성 노예의 삶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어느 과부와의 사랑 없는 성생활 – 그것은 클레이토폰의 마음속에 이따금 레우키페에 대한 죄의식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미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더 커져갔습니다.

 

8. 감옥의 탈출과 방황: 그런데 어느 날 문제가 발생합니다. 오래 전에 이미 전사했다고 하던 멜리테의 남편이 자신의 아내가 살고 있는 고향 에베소로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몇 번이고 도주하려고 했으나, 멜리테의 수하들은 철저히 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멜리테의 남편은 자초지종을 전해 듣고, 클레이토폰을 감옥에 처넣어버립니다. 아내의 배신에 눈이 뒤집힌 그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더러운 노예의 사지를 찢어죽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처형이 거행되기 하루 전에 주인공은 멜리테의 집에서 알게 된 친구의 도움으로 몰래 감옥을 빠져나오게 됩니다. 멜리테의 남편은 자신의 수하들 그리고 에베소의 경찰들을 동원하여 반드시 도망자를 체포하라고 명령합니다.

 

에베소는 클레이토폰에게는 무척 낯선 지역이었습니다. 아는 사람 거의 없고 잎에 풀칠하기도 어려운데 도망자 신세라니, 살아가는 것 자체가 하나의 고역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자신에게 끊임없이 고통을 안겨주는 신을 저주하기 시작합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어떻게 해서든 생존해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어느 날 주인공이 얼굴을 가린 채 에베소의 시장 통에서 구걸하고 있었는데, 어느 처녀가 자신의 앞을 스쳐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미는 바로 레우키페였습니다. 두 사람은 뜨겁게 포옹하며 재회의 기쁨을 나눕니다.

 

9. 사랑하는 남녀의 재회: 그렇다면 레우키페는 그동안 어떻게 살았을까요? 이집트 해안에서 그미는 다행히 선한 사람을 만나서 도움을 받습니다. 그미 부모는 절망적인 마음으로 딸을 찾으려고 지중해 전역을 헤매고 있었는데, 주위 사람들의 중재로 부모와 만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레우키페의 부모는 레우키페를 다른 남자와 결혼시키는 것을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재산이 중요한 게 아니라, 딸의 목숨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던 것입니다.

 

게다가 딸이 타향에서 죽음의 위기를 맞이한 것은 자신들이 잘 모르는 낯선 남자와 결혼시키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들의 행위를 깊이 반성하게 됩니다. 그래서 부모는 그미가 애타게 그리워하는 클레이토폰과의 관계를 인정하는 한편, 그를 찾는 데 도움을 아끼지 않기로 했던 것이었습니다. 클레이토폰과 레우키페는 튀로스로 돌아가서 부모와 화해합니다. 소설은 찬란하고 행복한 두 사람의 미래를 암시하면서, 끝을 맺습니다.

 

10. 재미있는 통속 소설, 그러나 무가치하지는 않다.: 친애하는 J, 작품이 가슴에 와닿았는지요? 작품에는 수많은 에피소드가 삽입되어 있는데, 이것들은 주제상의 관련성을 지니지 않고 있습니다. 아킬레우스는 가급적이면 그리스 본토의 문체를 사용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어체의 문장이 지속적으로 출현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수많은 에피소드를 아무런 관련성 없이 서술하는데, 이는 일반 사람들의 독서를 방해할 정도입니다.

 

가령 작품에는 당시에 횡행했던 철학적 조류에 관한 논의가 삽입되어 있습니다. 소설의 전반부에는 주위의 풍경이 너무 장황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불필요한 이야기들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이를테면 약간 과장된 감이 있는 편지 내용들, 신화적 패러다임, 여러 가지 지정학 내지 생물학적 논의, 이솝 우화, 대학에서의 학문적 토론 등이 그것들입니다. 확실한 것은 다음의 사실입니다. 즉 당시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마구잡이로 짜 맞춘 작품들 mixtum compositum”을 즐겨 읽곤 했다는 사실 말입니다. 사람들은 싼값으로 이러한 작품을 구매하여 즐겼는데, 여기서 우리는 헬레니즘 문화적 분위기를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