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흐 117

서로박: (2)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앞에서 계속됩니다.) 8. 유토피아 국가의 체제와 국정 운영 방식: 유토피아는 영국과 웨일스를 합한 크기의 거대한 섬입니다. 여기에는 도합 54 개의 도시가 위치하는 데, 모두 정방형의 구조로 분할되어 있습니다. 섬의 국가는 거대한 사회 조직으로서 대가족 체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약 40 명의 남자와 여자들과 아이들이 한 가족을 이루며, 이들을 다스리는 자는 특정한 한 남자 혹은 여자입니다. 대가족은 다시 약 서른 개의 소가족으로 나누어지는데, 사람들은 소가족을 대표하는 자를 “필라르켄 Phylarchen”이라고 일컫습니다. 소가족의 대표들은 일 년에 한 번씩 모여서 200명의 장교를 선출합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장교들을 “트라니보어 Tranibor”라고 명명합니다. 장교들은 제반 도시에서 천거된 유..

35 근대영문헌 2023.05.20

블로흐: (3) "굴종의 회개인가, 성령의 수용인가". 루터 비판

(앞에서 계속됩니다.) 인간 존재는 루터에 의하면 자신의 고유한 힘으로써 믿음이라는 찬란하고 순수한 빛을 확인할 수 없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루터는 신앙인을 도우려고 하는 수사들의 노력마저 용납하지 않았다. 수사계급은 신앙인들에게 어떠한 가치 있는 믿음을 전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신의 과업이 진행되면, 피조물은 이에 대해 어떠한 대응도 할 수 없으며, 교회의 행위 역시 부질없을 뿐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든 간에 신의 과업 앞에서 수동적으로 행동하고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따라서 인간은 그냥 휴식을 취하는 일 외에는 행할 게 없다. 실제로 루터는 어떤 형태를 갖춘 인간적 자유를 헐뜯고 철저히 부정한다.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면서 그는 자신의 신앙을 성당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말하자면 루터는 보헤..

24 신학이론 2023.05.03

서로박: (2) 모리스의 "유토피아 뉴스"

(앞에서 계속됩니다.) 22세기의 영국에서 환영 받는 일감은 단순 노동 외에도 학문입니다. 사람들은 학문의 연구를 통하여 환경 친화적인 에너지를 창조해낼 수 있었습니다. 이에 비하면 사람들은 고도로 발전된 기계의 사용을 결코 애호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계에는 인간의 예술적 감각이 조금도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리스는 작품 속에 기계 설계 및 이에 관한 세부적인 기술적 사항을 사변적으로 그리고 정밀하게 해명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사실 모리스는 기계와 자연과학에 관해서 잘 모른다는 것을 은연중에 시인합니다. 그렇지만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과학 기술의 구체적 사항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인간과 자연에 친화적인 과학과 기술이 환영 받는 사회적 전제조건을 마련하는 일이었습니다. 우연히 아름다운 ..

35 근대영문헌 2023.04.23

박설호: (2) 에른스트 블로흐 읽기 (III) 서문

(앞에서 계속됩니다.) 제 3부에 실린 글은 얼핏 보기에는 블로흐 연구와 무관하게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연구 대상은 다를지 몰라도, 독자들은 논의의 전개 및 방법론에 있어서 에른스트 블로흐를 유추할 수 있으리라고 여겨집니다. 첫 번째 글 「이반 일리히의 젠더 이론 비판」은 미발표의 논문으로서 일리히의 저작물 『젠더』를 비판적으로 구명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서 필자는 두 가지 사항을 지적하려 하였습니다. 그 하나는 일리히의 과거 지향적 관점이 퇴행의 반동적 세계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젠더에 대한 일리치의 시각이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고찰할 때 추상적이고 전근대적이라는 점입니다. 「원시 사회는 암반위에 있고, 문명사회는 절벽을 기어오르는가?」는 김유동 교수의 『충적세 문..

27 Bloch 저술 2023.04.22

(단상. 567)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 20세기 최고의 시집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라면, 필자는 20세기 최고의 소설집으로 조세희의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꼽고 싶다. 2.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작품은 시로 쓴 산문이고 (작가는 글을 잘못 썼을 때 원고지 한 칸 씩 가위로 오려서 정성스럽게 붙였다), 피로 쓴 산문이다. 3. 작품은 필자에게 기쁜 슬픔 그리고 슬픈 기쁨을 동시적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그 하나가 예술적 탁마의 차원에서 감지되는 무한한 희열이었다면,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체험해야 하는 가난 그리고 자본(가)의 횡포에 대한 비애와 분노의 감정이었다. 4. 작가는 의도적으로 "난쟁이"가 아니라, 난장이로 표현했다. 장애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겠다는 세심한 배려 때문이었다. 누가 그들을 세상..

3 내 단상 2023.04.20

서로박: (5) 토마스 뮌처의 천년왕국설

(앞에서 계속됩니다.) 25. 재세례파와 토마스 뮌처의 농민 혁명에 대한 평가: 15세기 말부터 유럽의 가난한 사람들은 오랫동안 국가의 폭력 그리고 이에 간접적으로 지지하는 교회 체제에 굴복하면서 살았습니다. 이들은 뮌처를 중심으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터전으로서의 상호부조의 사회를 건설하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계획은 종교 혁명의 운동으로 시작되었으며, 결국은 재세례파와 뮌처의 농민 운동으로 발전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존엄성을 고수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토대는 종교 개혁 및 사회 개혁의 움직임으로 발전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더 나은 삶을 구현하여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지상의 천국을 구현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발전되었습니다.  나중에 카를 카우츠키는 자신의 책에서 농민 혁명..

서로박: (4) 바이틀링의 기독교 공산주의

(앞에서 계속됩니다.) 16. 엘리트의 가치 중심적 지배구조: 바이틀링은 비록 푸리에의 영향을 받았지만, 근본적으로 유토피아 사상가들로부터 많은 자양을 공급받은 게 틀림없습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플라톤의 『국가』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바이틀링은 플라톤의 독일어 번역본을 정독하였는데, 플라톤의 영향은 바이틀링의 문헌 속에 은밀히 용해되어 있습니다. 비근한 예로 우리는 엘리트 관료주의의 특성을 들 수 있습니다. 이상적 국가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탁월한 재능을 지닌 엘리트가 가장 중요한 임무를 맡아야 하며, 이들이야 말로 사회의 질서를 가장 훌륭하게 관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바이틀링은 언급한 바 있습니다. (Weitling I: 225).  그렇다면 공동체 내에서 나타날 수 있는 엘리트 관료들의 잠재적인 ..

블로흐: 트리스탄과 이졸데, 신비로운 결합

누군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부끄러운 부위를 오랫동안 응시한다면, 어떨까? 그 부위는 모든 생명체를 황홀하게 만드는 약간 어두침침한 공간을 가리킨다. 이와는 반대로 여자가 오랫동안 그런 식으로 남자를 바라본다면, 남자는 어떻게 행동할까? 아마도 그는 자신이 어떻게 인지되는가를 새삼 느끼게 될 것이며, 어떤 놀랍고도 당혹스러운 감정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즉 두 눈길이 서로 마주치는 순간 남자로서 어둠침침한 공간을 아무런 느낌 없이 그냥 벗어난다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진지한 감정을 품는다고 하더라도, 다만 미소로써 가장 경쾌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 남성적 오르가슴을 만끽하지 못하는 경우라든가, 마치 어떤 기이한 상황 속에서 여자 그리고 밀월의 방이 엉뚱하게 교체된 경우를 생..

29 Bloch 번역 2023.03.24

서로박: (4) 조아키노의 제 3제국에 대한 갈망

(앞에서 계속됩니다.) 18. 조아키노가 파악한 성령의 본질 (2): “위로하는 자”라는 표현은 성령이 수행하는 고유한 임무를 포괄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령은 나중에 다시 언급되겠지만 “피의 보복자γοηλ”를 지칭합니다. 그분은 위로하는 자가 아니라, 복수하는 소송인입니다. 다시 말해 부정한 세상에서 정의로움을 위하여 부정과 죄악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바로 “원고”로서의 성령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성령은 판관으로 이해될 수도 있습니다. 성령은 오로지 최후의 심판, 다시 말해 마지막의 재판을 통하여 모든 사항에 대해서 정의롭게 판결을 내리는 임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분은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사람들의 무죄를 입증하고 그들의 넋을 기릴 뿐 아니라, 죄악에 대한 진범을 가려내어, 그에게 정당한 죗값..

38 중세 문헌 2023.03.17

서로박: 프리스의 문학세계 (2)

(앞에서 계속됩니다.) 3. 『오블라두로 향하는 길』(2) 어느 날 아를레크는 에스파냐 출신의 이사벨이라는 처녀를 사귀게 됩니다. “낯선 땅의 낯선 여자는 마치 집시처럼 우울한 표정을 짓지만, 가볍고도 강한 사랑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20쪽) 이사벨은 순간적으로 주인공의 마음에 사랑의 불을 지핍니다. 그미의 용모, 말씨 그리고 행동 등 모든 것이 자신의 잃어버린 유년의 흔적을 자극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에스파냐어로 서로 대화를 나누며 친밀하게 지냅니다. 두 사람은 만날 때마다 상대방의 몸을 탐하면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합니다. 아를레크의 눈에는 이사벨이 처음부터 이상적인 처녀로 비칩니다. 에스파냐 그리고 에스파냐의 언어는 주인공에게 고향, 그 이상의 의미를 가져다줍니다. 주인공은 이사벨에게 ”..

45 동독문학 2023.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