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흐 104

(단상. 567)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 20세기 최고의 시집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라면, 필자는 20세기 최고의 소설집으로 조세희의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꼽고 싶다. 2.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작품은 시로 쓴 산문이고 (작가는 글을 잘못 썼을 때 원고지 한 칸 씩 가위로 오려서 정성스럽게 붙였다), 피로 쓴 산문이다. 3. 작품은 필자에게 기쁜 슬픔 그리고 슬픈 기쁨을 동시적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그 하나가 예술적 탁마의 차원에서 감지되는 무한한 희열이었다면,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체험해야 하는 가난 그리고 자본(가)의 횡포에 대한 비애와 분노의 감정이었다. 4. 작가는 의도적으로 "난쟁이"가 아니라, 난장이로 표현했다. 장애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겠다는 세심한 배려 때문이었다. 누가 그들을 세상..

3 내 단상 2023.04.20

서로박: (5) 토마스 뮌처의 천년왕국설

(앞에서 계속됩니다.) 25. 재세례파와 토마스 뮌처의 농민 혁명에 대한 평가: 15세기 말부터 유럽의 가난한 사람들은 오랫동안 국가의 폭력 그리고 이에 간접적으로 지지하는 교회 체제에 굴복하면서 살았습니다. 이들은 뮌처를 중심으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터전으로서의 상호부조의 사회를 건설하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계획은 종교 혁명의 운동으로 시작되었으며, 결국은 재세례파와 뮌처의 농민 운동으로 발전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존엄성을 고수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토대는 종교 개혁 및 사회 개혁의 움직임으로 발전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더 나은 삶을 구현하여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지상의 천국을 구현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발전되었습니다. 나중에 카를 카우츠키는 자신의 책에서 농민 혁명을..

26 유토피아 2023.04.02

서로박: (4) 바이틀링의 기독교 공산주의

(앞에서 계속됩니다.) 16. 엘리트의 가치 중심적 지배구조: 바이틀링은 비록 푸리에의 영향을 받았지만, 근본적으로 유토피아 사상가들로부터 많은 자양을 공급받은 게 틀림없습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플라톤의 『국가』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바이틀링은 플라톤의 독일어 번역본을 정독하였는데, 플라톤의 영향은 바이틀링의 문헌 속에 은밀히 용해되어 있습니다. 비근한 예로 우리는 엘리트 관료주의의 특성을 들 수 있습니다. 이상적 국가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탁월한 재능을 지닌 엘리트가 가장 중요한 임무를 맡아야 하며, 이들이야 말로 사회의 질서를 가장 훌륭하게 관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바이틀링은 언급한 바 있습니다. (Weitling I: 225). 그렇다면 공동체 내에서 나타날 수 있는 엘리트 관료들의 잠재적인 횡..

26 유토피아 2023.03.31

서로박: 호프만슈탈의 소베이데의 결혼

(1) 결혼과 후회: 친애하는 K, 오늘 말씀드릴 주제는 결혼에 관한 것입니다. 속담에 의하면 “인간은 결혼해도 후회하고, 결혼하지 않아도 후회한다.”고 합니다. 자고로 결혼은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입니다. 오랜 기다림의 성취, 바로 그것이지요. 물론 결혼의 의미 자체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지니고 있습니다. (경제 문제, 가족 구성원의 사회적 삶, 성도덕 등을 고려하면, 당신은 나의 말을 이해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결혼”의 보편적 기능을 추상적으로 정의 내린다는 자체가 무리일 것입니다. 나는 결혼의 사회적 심리적 의미에 관해서 여기서 일장 연설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이 자리에서 “결혼의 이상이란 사랑의 완성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어째서 결혼은 항상 “..

43 20전독문헌 2023.03.25

블로흐: 트리스탄과 이졸데, 신비로운 결합

누군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부끄러운 부위를 오랫동안 응시한다면, 어떨까? 그 부위는 모든 생명체를 황홀하게 만드는 약간 어두침침한 공간을 가리킨다. 이와는 반대로 여자가 오랫동안 그런 식으로 남자를 바라본다면, 남자는 어떻게 행동할까? 아마도 그는 자신이 어떻게 인지되는가를 새삼 느끼게 될 것이며, 어떤 놀랍고도 당혹스러운 감정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즉 두 눈길이 서로 마주치는 순간 남자로서 어둠침침한 공간을 아무런 느낌 없이 그냥 벗어난다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진지한 감정을 품는다고 하더라도, 다만 미소로써 가장 경쾌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 남성적 오르가슴을 만끽하지 못하는 경우라든가, 마치 어떤 기이한 상황 속에서 여자 그리고 밀월의 방이 엉뚱하게 교체된 경우를 생..

29 Bloch 번역 2023.03.24

서로박: (4) 조아키노의 제 3제국에 대한 갈망

(앞에서 계속됩니다.) 18. 조아키노가 파악한 성령의 본질 (2): “위로하는 자”라는 표현은 성령이 수행하는 고유한 임무를 포괄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령은 나중에 다시 언급되겠지만 “피의 보복자γοηλ”를 지칭합니다. 그분은 위로하는 자가 아니라, 복수하는 소송인입니다. 다시 말해 부정한 세상에서 정의로움을 위하여 부정과 죄악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바로 “원고”로서의 성령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성령은 판관으로 이해될 수도 있습니다. 성령은 오로지 최후의 심판, 다시 말해 마지막의 재판을 통하여 모든 사항에 대해서 정의롭게 판결을 내리는 임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분은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사람들의 무죄를 입증하고 그들의 넋을 기릴 뿐 아니라, 죄악에 대한 진범을 가려내어, 그에게 정당한 죗값..

38 중세 문헌 2023.03.17

서로박: 프리스의 문학세계 (2)

(앞에서 계속됩니다.) 3. 『오블라두로 향하는 길』(2) 어느 날 아를레크는 에스파냐 출신의 이사벨이라는 처녀를 사귀게 됩니다. “낯선 땅의 낯선 여자는 마치 집시처럼 우울한 표정을 짓지만, 가볍고도 강한 사랑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20쪽) 이사벨은 순간적으로 주인공의 마음에 사랑의 불을 지핍니다. 그미의 용모, 말씨 그리고 행동 등 모든 것이 자신의 잃어버린 유년의 흔적을 자극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에스파냐어로 서로 대화를 나누며 친밀하게 지냅니다. 두 사람은 만날 때마다 상대방의 몸을 탐하면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합니다. 아를레크의 눈에는 이사벨이 처음부터 이상적인 처녀로 비칩니다. 에스파냐 그리고 에스파냐의 언어는 주인공에게 고향, 그 이상의 의미를 가져다줍니다. 주인공은 이사벨에게 ”..

45 동독문학 2023.03.14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 4 서문

“더 나은 무엇을 갈망하지 않는 인간은 가련하다” (Freud) “희망을 포기하거나 무가치하다고 판단하는 자들은 언제나 회의적 세계관을 지닌 실증주의자들이었다.” (Bloch) “더 나은 미래를 떠올리는 자는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부자유의 질곡에 갇혀 있는 자이다.” (필자) ......................... 희망은 그냥 막연히 누워서 감 떨어지기를 바라는 수동적 자세가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그리고 여기”의 끔찍하고 참혹한 개인적 사회적 정황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그것아 바로 “터득한 희망docta spes”입니다. 에른스트 블로흐는 “새로운 무엇”을 찾으려는 갈망은 절망과 반대되는 정서가 아니라, “개인과 사회가 차제에 누려야 하는 자유와 평등의 구체적 가능성의 ..

1 알림 (명저) 2023.03.05

박설호: (1)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

헝가리 출신의 대표적 문예 이론가, 게오르크 루카치 (1885 - 1971)의 "역사와 계급의식. 마르크스 변증법에 관한 연구 (Geschichte und Klassenbewußtsein)"은 논문 모음집으로서 1919년 3월에서 1922년 9월 사이에 집필되었다. 1918년 말에 루카치는 헝가리 공산당에 가입하였고, 헝가리 혁명 공화국에서 교육 담당 인민 대표위원 직책을 맡게 되었다. 1919년 혁명 공화국이 순식간에 몰락하자, 루카치는 빈으로 도주하였다. 이곳에서 루카치는 이 책에 해당하는 많은 부분을 집필하였으며, 부분적으로 1920년에서 1921년 사이에 잡지 "공산주의"에 싣게 하였다. 루카치는 1922년에 간행된 책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거론한다. 그는 “저자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그의 ..

23 철학 이론 2023.02.13

(단상. 556) "신유물론" "사변적 실재론"

새로운 물질 이론에 관한 관심이 높다. 신유물론에 관한 논의는 과거에 포스트모더니즘이 그러했듯이 유행을 타고 번지는 것 같다. 신유물론은 인류세에 즈음한 생태계 위기의 관점을 반영한 사고의 관점에 근거한 것인데, 1. 물질의 행위성을 강조하는 페미니즘의 관점, 2. 인간과 자연의 동등한 관계를 추구하는 사변적 실재론 등으로 구분된다. 1. 물질의 행위성을 강조하는 페미니즘의 관점: 우리는 몸, 타자, 환경, 지구 등이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고 사고한다. "물질Mater"은 세계의 발효하는 모태,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자궁으로서 "어머니Mutter"에서 비롯한 단어이다. 이 점에 있어서 신유물론은 남녀 평등, 자연과의 공생, 평화의 추구 그리고 절약을 추구하는 공동체의 관습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삶이야 말로..

3 내 단상 2023.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