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근대영문헌

서로박: (2) 모리스의 "유토피아 뉴스"

필자 (匹子) 2023. 4. 23. 09:59

 

(앞에서 계속됩니다.)

 

22세기의 영국에서 환영 받는 일감은 단순 노동 외에도 학문입니다. 사람들은 학문의 연구를 통하여 환경 친화적인 에너지를 창조해낼 수 있었습니다. 이에 비하면 사람들은 고도로 발전된 기계의 사용을 결코 애호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계에는 인간의 예술적 감각이 조금도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리스는 작품 속에 기계 설계 및 이에 관한 세부적인 기술적 사항을 사변적으로 그리고 정밀하게 해명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사실 모리스는 기계와 자연과학에 관해서 잘 모른다는 것을 은연중에 시인합니다. 그렇지만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과학 기술의 구체적 사항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인간과 자연에 친화적인 과학과 기술이 환영 받는 사회적 전제조건을 마련하는 일이었습니다.

 

우연히 아름다운 미래 사회에 발을 들여놓은 윌리엄 게스트는 설레는 마음으로 모든 새로운 사항을 인지합니다. 그래서 그는 거리의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는데, 이들은 귀찮다는 표정을 짓지 않은 채 성심껏 질문에 대답해줍니다. 한 가지 특징적인 사항은 대부분 사람들이 열심히 생업에 몰두하며, 역사에 관한 의식을 전혀 지니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어쩌면 22세기 런던 사회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위험의 요인으로 작용할지 모를 정도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윌리엄은 역사학자, 해먼드를 만나려고 영국 박물관으로 향합니다. 나이 많은 역사학자는 분명히 자신에게 역사적 과정에 관해서 보다 분명한 진실을 전해줄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모리스의 그림

 

역사학자 해먼드와의 대화는 비교적 오랜 시간 동안 진행됩니다. 그것은 작가가 의도하는 어떤 사회 이론 그리고 역사에 대한 분석 작업을 독자에게 전해준다는 점에서 소설의 핵심대목과 같습니다. 두 사람 사이의 대화는 합리적으로 진행되지만, 윌리엄은 전대미문의 주위 환경에 대해 무척 놀라워하며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해먼드는 언젠가 장 작 루소가 표방한 바 있는 공동체 내의 원칙에 관해서 언급합니다. 가령 죄악을 처벌하고 금지시키는 엄격한 정책 대신에 선을 권장하는 사랑의 정책이 바로 그 원칙입니다. 뒤이어 해먼드는어떻게 변화가 도래했는가?라는 핵심적인 장에서 지나간 역사적 진행 과정을 쉽게 설명해줍니다. 이는 착취자와 착취당하는 자 사이의 계급투쟁의 수많은 투쟁이 어떻게 피비린내 나는 혁명으로 이전되었는가? 하는 물음과 관계됩니다. 물론 과도기의 혁명에 관한 이야기는 비교적 불분명하게 전해지지만, 한 가지 사건만은 명징하게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혁명의 와중에서 사람들이 인간의 노동을 소외시키는 많은 생산 기계 내지 소비 기계들을 파괴했다는 사실입니다. 헤먼드의 서술 방법은 사려 깊은 숙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즉 소크라테스의 산파법이 대화에 도입되는 것도 무척 놀라운 것입니다. 가령 두 사람의 대화에서 문제점이라든가 의혹이 발생하면, 해먼드는 방문객인 윌리엄 게스트로 하여금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여 스스로 해답을 찾도록 조처하고 있습니다.

 

윌리엄은 박물관을 나와서 템스 강으로 나오게 되었는데, 몇몇 이웃 사람들이 그를 템스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보트에 동승시켜줍니다. 이 장면은 모리스의 유년 시대로 향하는 자전적 여행기를 방불케 합니다. 윌리엄은 새로 사귄 친구들과의 보트 여행으로 행복감에 젖어듭니다. 그렇지만 자신은 과거에 속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결코 이들과 영원히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서서히 침울해집니다. 윌리엄은 어느 교회에서 개최되는, 수확을 찬양하는 세속적 만찬에 참가할 수 없습니다. 시름에 잠긴 채 그는 혼자 템스 강변을 걷습니다. 자신은 19세기에 속하는 사람이므로, 어떻게 해서든 주어진 현실을 유토피아의 찬란한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일에 앞장서야 하겠다고 결심합니다. 이때 검은 구름이 출현하여 그를 감쌉니다. 구름은 마치 유년시절에 접했던 끔찍한 악몽과도 유사하게 느껴집니다. 다시 의식을 되찾았을 때 윌리엄은 자신이 더러운 산업의 시대인 지금, 여기에 서성거리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모리스의 공예 도안

 

친애하는 M, 모리스는 수공업의 모델을 강조하면서, 과거로 돌아가는 전원적인 삶을 사회주의 이론과 접목시키고 있습니다. 이로써 그는 중세를 동경하는 영국 낭만주의의 전통을 계승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입장은 존 러스킨의 예술 비평서,베네치아의 돌 The Stones of Venice(1851 1853)에 실려 있는 예술 비판적인 사항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합니다. 러스킨의 작품 가운데 고딕의 자연이라는 장에서는 중세의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삶이 하나의 이상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모리스는 아마도 친구의 저서에서 커다란 감명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밖에 모리스는 정치적으로 마르크스, 샤를 푸리에, 로버트 오언 그리고 러시아의 무정부주의자 표도로 크로포트킨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모리스는 19세기 영국 자본주의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였습니다. 적어도 그에게 자본주의 시스템은 참으로 저열하고 사악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유토피아적인 모델은 삶의 포괄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였으며, 인간의 본성에 관한 모리스의 낙관론적인 견해는 장 작 루소의 그것과 매우 근친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모리스의 사고는 사회주의적 요소를 지니고 있지만, 정치경제학적 차원에서 완전한 체계를 갖추지 못했습니다. 또한 1. 수공업 예찬, 2. 과거 지향적으로 중세의 이상의 동경, 3. 현대와는 거리가 먼 느슨한 문체 등은 동시대인들에게 격렬한 비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에른스트 블로흐는 자신의 책, 희망의 원리에서 윌리엄 모리스의 유토피아를 설명하면서, 이를 순진하고 감상주의적인 지식인이 신 고딕과 혁명을 서로 혼합시킨 무엇으로 규정하였습니다. (블로흐: 1251). 그렇지만 모리스의 관심사는 엄밀히 말하자면 완전히 포괄적이고 학문적인 시스템으로서의 유토피아를 설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는 않았습니다. 이 책의 부제는 바로 이 점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는 다만 19세기 말 영국의 비참한 현실과는 반대되는 어떤 긍정적인 거울의 상을 제시하였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의 시각이 개개인의 자유 그리고 행복한 삶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미국의 에드워드 벨러미가 1888년에 형상화한 『뒤를 돌아보면서 Looking Backward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벨러미는 자신의 유토피아에서 중앙집권적으로 조직화된 산업의 천국을 묘사하지 않았습니까? 벨러미의 유토피아 속에서는 개별적 인간이 시스템의 거대한 원동기 속에서 마치 부속품으로 기능하는 바퀴처럼 그렇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윌리엄 모리스의 사회의 설계는 주관적 색채를 강하게 드러냅니다. 그것은 자세하고 명징하게 서술되지는 않았지만, 바람직한 공동체에 대한 인간의 창의적 참여를 하나의 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쉬운 문체는 독자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실제 현실과 가상적 현실 사이에서 드러나는 대립적 특징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유토피아 뉴스는 진보에 대한 낙관론 그리고 미래의 비관론 사이의 전환점에 위치하는 작품입니다. 어쩌면 모리스는 세계가 진화론적으로 건강을 되찾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그는 주어진 사회의 혁명적 전복이 필연적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모리스의 뒤를 이어서 20세기 초에 나타난 유토피아 사회상은 암담하고 우울한 것이었는데, 이는 디스토피아 문학으로 규정됩니다. 최근에 이르러 모리스의 유토피아는 생태학적 유토피아의 원조로 새롭게 인정받게 됩니다. 이를테면 캐나다의 작가인 마가렛 애트우드 Margaret Atwood의 소설, 『시녀이야기 The Handmaid’s Tale(1985)은 새로운 끔찍한 현실을 드러내는 생태학적 디스토피아의 요소를 강하게 드러내는 반면에, 어니스트 칼렌바크는 에코토피아에서 비교적 긍정적인 대안 미국 사회를 문학적으로 형상화시켰습니다.

 

 

윌리엄 모리스에 관한 국내문헌

 

-모리스, 윌리엄: 에코토피아 뉴스, 박홍규 역, 필맥 2004/ 2008.

- 박홍규: 윌리엄 모리스 평전, 개마고원 2007.

-박홍규: 윌리엄 모리스의 생애와 사상, 개마고원 1998.

-블로흐, 에른스트: 희망의 원리, 5, 열린책들 2004.

-이광주: 윌리엄 모리스, 세상의 모든 것을 디자인하다, 한길 아트 2004.

-톰슨, 에드워드 파이: 윌리엄 모리스 2권 한길사 2012.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