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Bloch 번역

블로흐: 트리스탄과 이졸데, 신비로운 결합

필자 (匹子) 2023. 3. 24. 21:22

누군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부끄러운 부위를 오랫동안 응시한다면, 어떨까? 그 부위는 모든 생명체를 황홀하게 만드는 약간 어두침침한 공간을 가리킨다. 이와는 반대로 여자가 오랫동안 그런 식으로 남자를 바라본다면, 남자는 어떻게 행동할까? 아마도 그는 자신이 어떻게 인지되는가를 새삼 느끼게 될 것이며, 어떤 놀랍고도 당혹스러운 감정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즉 두 눈길이 서로 마주치는 순간 남자로서 어둠침침한 공간을 아무런 느낌 없이 그냥 벗어난다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진지한 감정을 품는다고 하더라도, 다만 미소로써 가장 경쾌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 남성적 오르가슴을 만끽하지 못하는 경우라든가, 마치 어떤 기이한 상황 속에서 여자 그리고 밀월의 방이 엉뚱하게 교체된 경우를 생각해 보라. 이 경우 남자는 성교를 하다가, 쾌락의 정점에 이르는 순간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그저 그는 짤막한 사정의 엑스타시를 느끼지 못하고, 기껏해야 헛물 들이키는 “음 (音)”만을 접할 테니까 말이다. 따라서 남녀가 눈길 마주치는 장소는 하나의 해결책으로서 무조건 성행위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곳은 항상 어떤 여성적인 방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남자는 여성을 마냥 가만히 품 안에 안고 있을 수는 없다.

 

사랑이 오랫동안 상대방을 바라보는 눈길로 시작되어, 어느 순간 완전히 정점에 이르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아쉽게도 그만 사멸되는 경우가 있다. 위대한 음악은 이러한 상황 묘사를 노래로 남긴 바 있다. 이를테면 「트리스탄」의 제2막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주인공은 꼼짝도 하지 않고 임을 바라보지만, 끝내 임과 육체적으로 접촉하지 못한다. 트리스탄의 눈길은 사랑을 얌전하게 표현한 것도 아니고, 동침의 가능성을 “암시”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두 남녀가 음악에 맞추어 눈빛으로써 이중주를 연주한 것도 아니다. 만약 트리스탄이 이졸데의 앞섶을 나중에 벗어났더라면, 어쩌면 그게 오히려 더 사실적이고 자연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미의 앞섶은 지하가 아니라, 높은 곳에 자리한, 고립된 비너스 산이 아닌가? 오페라가 자연스럽게 전개될 경우, 이졸데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계속 숨을 헐떡거릴 수 있으며, 눈을 부릅뜬 채 더 이상 어둡지 않은, 그러나 분명히 간파될 수 없는 도취감에 사로잡힌 채 남자를 사랑할 수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트리스탄은 잠시 비겁하게 눈을 돌린다. 창문 없는 곳에서 침묵을 지키는 대신에, 차라리 자신에게 주어진 깊은 중요한 공간을 찾는 게 더 나았는지 모른다. 그래야 남자는 그 곳에 머무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자고로 임에 대한 정조 지키는 일 그리고 부정을 저지르는 일이 동일한 성행위로 끔찍하게 귀결되는 경우는 드물다. 남자는 일시적으로 사랑의 욕망을 느끼는데, 이 감정은 마치 바람 앞의 촛불처럼 쉽사리 꺼져버린다. 그러나 사랑은 여자에게는 삶 전부나 다름이 없다. 그렇기에 사내라면 누구나 끝없이 성욕을 부추기는 여자에게서가 아니라, 끝없이 에로스를 추구하는 여자에게서 언제나 실패를 맛보기 마련이다. 만약 에로스를 추구하는 여성의 본질이 예술과 근친하다면, 남자는 그미를 그저 오랫동안 바라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