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8. 유토피아 국가의 체제와 국정 운영 방식: 유토피아는 영국과 웨일스를 합한 크기의 거대한 섬입니다. 여기에는 도합 54 개의 도시가 위치하는 데, 모두 정방형의 구조로 분할되어 있습니다. 섬의 국가는 거대한 사회 조직으로서 대가족 체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약 40 명의 남자와 여자들과 아이들이 한 가족을 이루며, 이들을 다스리는 자는 특정한 한 남자 혹은 여자입니다. 대가족은 다시 약 서른 개의 소가족으로 나누어지는데, 사람들은 소가족을 대표하는 자를 “필라르켄 Phylarchen”이라고 일컫습니다. 소가족의 대표들은 일 년에 한 번씩 모여서 200명의 장교를 선출합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장교들을 “트라니보어 Tranibor”라고 명명합니다. 장교들은 제반 도시에서 천거된 유능한 사람들 가운데에서 국가의 수상을 선출합니다. 국가의 수상이 된 자는 죽은 때까지 이 임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국가의 수상은 트라니보어들과 함께 국정을 수행해 나갑니다. 비록 장교들이 일 년에 한 번씩 교체되지만, 이들은 출신지를 대표하여 공개적으로 수상의 정책 수행을 도와주고 감시합니다.
9. 유토피아의 사람들은 자유 평등을 누리고 있는가?: 유토피아의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노동의 의무를 지닙니다. 노동을 통해서 사람들은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그들이 제각기 꿈꾸는 구원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는 청교도주의자들과 칼뱅주의자들이 언급하는 노동 세계를 연상하게 합니다. 물론 유토피아에서는 노예 제도가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여, 재화를 정당한 방식으로 분배합니다. 노동력은 극대화되어, 하루의 노동시간은 놀랍게도 여섯 시간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만일 하루 여섯 시간만 일하게 되면, 사람들은 나머지 시간에 공개 강의에 참석하는 등 정신적으로 자신을 수련할 수 있다고 합니다.
스포츠를 제외하면, 사람들은 수많은 게임 등으로 시간을 허비해서도 안 되고, 여행을 떠나서도 곤란하다고 합니다. 남자와 여자들은 서로 구분될 수 없도록 유니폼을 입어야 합니다. 유토피아의 인구는 철저한 계획에 의해서 정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합니다. 시골에 거주하는 자들과 도시에 거주하는 자들은 약 10년에 한 번씩 거주지를 옮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만인이 시골에서의 일을 필수적으로 수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친애하는 J, 만약 상기한 내용 및 16세기의 사회상을 충분히 고려한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유토피아 사람들은 비교적 자유와 평등을 누리고 살아간다고 말입니다.
10. 유토피아의 인구, 노동, 의료 및 복지 시설 그리고 학문: 인구가 적정 수준을 유지해야 하는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습니다. 인구가 넘쳐나면, 근처의 섬에 식민지를 건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유토피아 사람들은 인접한 섬의 원주민들에게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도움을 주어야 하고, 원주민이 저항할 경우 무력으로 이들을 다스려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중앙집권적 방식에 의해서 의복과 거주지를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제각기 노동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의 노동에 상응하는 재화를 획득하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돈은 사유 재산과 마찬가지로 거의 불필요합니다. 모어는 처음부터 두 가지 사항을 신랄하게 거부합니다. 그 하나는 오말불손이며, 다른 하나는 돈입니다. 오만불손함이 인간의 마음속에 사악함을 부추기는 근본적인 정서에 해당한다면, 돈은 인간의 삶에 수많은 악덕을 가져다주는 근원이라고 합니다. 이상 국가는 처음부터 철저하게 인민의 건강을 도모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사람들은 공동 육아를 준수합니다.
11. 휴머니즘 사상 그리고 종교적 관용사상: 모든 사람들은 교육의 혜택을 받으며, 거의 예외 없이 학문을 접할 수 있습니다. 이는 토마스 모어가 고대 그리스의 문화 및 문헌 등을 애호한 데에서 유래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모어의 사상은 비단 기독교 문화를 넘어서서, 고대 그리스 문화에 나타나는 인간 본위주의적인 개혁적 특징을 보여줍니다. 친애하는 J, 여기서 우리는 이성의 고유한 힘에 대해 전적으로 신뢰하는 저자의 신념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토마스 모어는 당시 영국의 학교에서 바람직한 교육이 거의 파멸 직전에 처해 있다는 것을 예리하게 통찰하였으며, 이를 수정하기 위해서 계몽,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전인적 교양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보편적 학문 추구는 필수적이라고 여겨졌지요.
진정한 삶을 위해서는 금욕하는 수사 한 사람이 가급적이면 엄격하게 인간 삶을 질서잡고, 스파르타식의 교육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높은 도덕적 원칙은 자연에 합당하고, 이성에 의해서 전개되는 삶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원칙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사회의 미덕을 받아들이게 되고 진정한 의미의 개인과 사회의 행복을 맛보게 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최상의 원칙은 근본적으로 인간성과 도덕성 그리고 자발성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세 가지 특성은 하나로 통합될 수 있으며, 결코 자연 종교의 제반 원칙과 대립되지 않는 것들입니다.
12. 성과 결혼, 법 그리고 처벌: 유토피아에서의 성도덕과 결혼의 법칙은 약간 엄격합니다. 가령 가부장적 사회에서 나타나는 일부다처주의의 삶은 결코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 사람들은 무조건 금욕을 미덕으로 내세우지는 않습니다. 예컨대 수음 행위는 자연의 뜻에 거슬리는 좋지 못한 짓이라고 합니다. 또한 결혼은 파기될 수 있습니다. 결혼하기 전에 신랑과 신부 후보자들은 상대방의 알몸을 보고난 뒤에 결혼식을 올립니다. (친애하는 J, 지배층의 수사들이 금욕해야 하고, 일반 사람들이 성생활을 자유롭게 누린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이는 분명히 모순입니다.) 나아가 자살은 엄격한 금지 사항으로 규정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죽음에 직면한 환자의 경우 “안락사 Euthanasie”를 위한 의사의 처방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법적 사항은 아주 간명하고도 짤막합니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들은 법 규정을 잘 이해하고 있으므로, 세밀한 사항에 관한 법학자들의 유건 해석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법과 여러 가지 규정 사항에 관해서 시시콜콜 골머리를 앓지 않습니다. 유토피아는 진보적인 사회적 체제를 갖추고 있으므로 범법 행위가 거의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가 발생하면, 국가는 범죄자에게 결코 사형을 선고하지 않고, 그가 강제 노동으로써 자신의 죗값을 치르게 합니다. 친애하는 J, 유토피아에서는 -몇몇 예외 사항을 제외하고는- 사형 제도가 폐지되어 있습니다.
13. 군대 그리고 종교의 관용사상: 유토피아 사람들은 평화를 추구하며, 어쩔 수 없을 경우에 한해서 무기를 사용합니다. 히틀로데우스는 유토피아 내에서의 군대 조직 그리고 군사적 전략을 세밀하게 서술하고 있지요. 나아가 종교적 신념과 믿음은 유토피아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합니다. 토마스 모어는 히틀로데우스의 입을 빌려, 유럽 사회 내의 교회 조직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유럽의 교회는 모어에 의하면 너무나 독단적이라서 인간 삶을 구속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종교적 가르침은 모어의 견해에 의하면 이성에 합당하게 신의 핵심적 명제들로 축소화되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창조신의 이념, 영혼의 불멸, 저세상에서의 은총과 처벌, 신이 주도하는 세계의 구상 등이 바로 그러한 핵심적 명제에 해당합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핵심적 명제를 준수하면 충분하며, 그 외의 다른 여러 가지 교회의 세부적 요구사항들을 지킬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어가 원시 기독교의 공산주의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 유토피아 사람들은 종교적 관용을 누리고 살아갑니다. 무신론은 용납되지 않지만, 사회 전역에 종교적 다원주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인민들은 사제들을 선출합니다. 사제들 가운데에는 여성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제로 선출된 사람들은 예배뿐 아니라, 예의범절을 공공연하게 규정하는 자로서 활약하며, 선생으로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나아가 그들은 축제를 함께 치르기도 합니다.
토마스 모어와 그의 가족들
14. 결론을 대신하여: 친애하는 J, 지금까지 우리는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의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에른스트 블로흐는 『희망의 원리』에서 토어의 『유토피아』를 “사회적 자유를 최대한 반영한 위대한 작품”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모어의 작품이 자유의 사회 유토피아라면, 캄파넬라의 작품 『태양의 나라』는 질서의 사회 유토피아로 규정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실 모어의 작품에 묘사된 삶은 그야말로 자유에 대한 만인의 축제와 다를 바 없습니다. 위대한 사상가 토머스 모어는 어느 가상적인 모델 속에다 자신의 정치적 철학적 종교적 신념을 담았습니다. 그 속에는 자신이 살던 시대적 상황이 구체적으로, 그러나 간접적으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작품은 그 자체 시대를 뛰어넘는 놀라운 갈망의 사회에 관한 모습을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해줍니다.
친애하는 J, 토마스 모어는 시대를 뛰어넘는 사상가이자, 정치가였습니다. 그는 훗날에 어떤 치졸한 정치적 소용돌이에 몰려서, 권력자의 도끼에 의해서 무참하게 처형되고 맙니다. 그가 남긴 말은 단 하나 “내 목은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였지요. (박원순: 내 목은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한겨레신문사 출판부 1999.) 그렇지만 토머스 모어는 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사상을 후세 사람들에게 전해주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어떤 정치적 전복을 위한 도구 내지 모반을 위한 팸플릿으로 활용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유토피아』는 혁명가와 개혁 사상가들의 필독서로 작용했습니다. 한 가지만 예를 들어 봅시다. 작품에 반영된 공동적인 삶은 멕시코에서 활동하던 에스파냐 출신의 주교 주마라가에 의해서 신대륙에서 부분적으로 실천된 바 있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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