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신학이론

블로흐: (3) "굴종의 회개인가, 성령의 수용인가". 루터 비판

필자 (匹子) 2023. 5. 3. 09:57

(앞에서 계속됩니다.)

 

인간 존재는 루터에 의하면 자신의 고유한 힘으로써 믿음이라는 찬란하고 순수한 빛을 확인할 수 없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루터는 신앙인을 도우려고 하는 수사들의 노력마저 용납하지 않았다. 수사계급은 신앙인들에게 어떠한 가치 있는 믿음을 전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신의 과업이 진행되면, 피조물은 이에 대해 어떠한 대응도 할 수 없으며, 교회의 행위 역시 부질없을 뿐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든 간에 신의 과업 앞에서 수동적으로 행동하고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따라서 인간은 그냥 휴식을 취하는 일 외에는 행할 게 없다. 실제로 루터는 어떤 형태를 갖춘 인간적 자유를 헐뜯고 철저히 부정한다.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면서 그는 자신의 신앙을 성당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말하자면 루터는 보헤미아의 급진적 종교개혁가 후스 Hus처럼 잘못된 관습을 완전히 철폐했노라고 자랑하면서, “나는 교황의 심장을 뜯어 먹었노라.”고 노골적으로 선언한다. 여기서 심장은 어떤 정의로움을 표방하고 있는데, 천국으로 향하는 핵심적 에너지로 작동되는 무엇이다.

 

실제로 루터는 부패한 수사들이 면죄부를 팔면서 신자들을, 연옥으로 협박한다고 주장했으며, 성자에 대한 숭배 또한 노골적으로 비판하였다. 이로써 그는 성당이 주도하는 모든 구원의 중개 작업 및 구원의 방식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졌다. 그렇지만 루터는 근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기존하는 성당을 비판하지는 않았다. 즉 성당은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정신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며, 평신도가 차제에 신부와 수사계급으로 거듭나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장애물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오히려 루터는 이와는 정반대의 이유에 근거하여 수미일관 교회와 성당을 비판했다. 즉 성당은 비록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신의 막강한 과업을 노골적으로 무시한 채 제 마음대로 고해성사를 올리며, 성찬식을 거행한다는 것이다. 부패한 수사들을 용납하지 못하는 자는 루터에 의하면 내가 아니라, 신이라는 것이다. 신의 아들인 그리스도가 사라진 다음에 신부와 수사들이 하나의 직업 그 자체로서의 종교적인 중개 작업을 행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한다.

 

루터는 그리스도의 후임자로서의 성령에 무관심했고, 구원에 관한 가톨릭교회의 입장에 대해서 거리감을 취했다. 나아가 그는 그리스 성당에서 연속적으로 영향을 끼치던 정신과 영성의 가르침도 좌시했다. 대신에 루터는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활약했던 과거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그들의 생산적이고도 놀라운 성과를 고찰했을 뿐이다. 루터는 미사를 집전하는 제단이 폐허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는 권위와는 무관하게 직접적으로 신에게 다가가서, 개인 한 사람으로서 신의 막강함을 수용하기 위함은 결코 아니었다. 루터는 오히려 이와는 반대로 반동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개인이라는 존재는 루터의 눈에는 너무나 막강할 정도로 자발적인 무엇으로 투영되었다. 나아가 교회가 신의 은총으로 가득 찬 보물창고라는 주장은 루터에게는 극악무도한 폭력으로 다가왔는지 모른다. 가톨릭교회의 이러한 주장은 그 자체 끔찍한 항변이며, 신의 권위를 무시하는 파렴치한 태도나 다름이 없었다. 루터는 교회가 신의 뜻을 대변하고 신의 가르침을 대신 전하는 체제라는 가설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이는 주께서 지닌 자유, 고결한 권능, 자율성, 절대 권력, 절대성 등을 모독하는 처사라고 한다.

 

루터는 처음에는 로마가톨릭 교회에 대해 그렇게 완강한 자세로 이의를 제기할 의사를 지니고 있지는 않았다. 그가 집필한 명제에는 교황의 칙령을 옹호하고 있다. 루터는 교황의 칙령에 담긴 진실에 반대하는 자가 있다면 그자는 빠르든 늦든 간에 반드시 저주받게 될 것이라고 기술했다. 루터의 글에 강조되는 명제들은 다면 몇 가지 세부적인 사항에 있어서 교회 내지는 성당 내부에서 어떤 토론을 불러일으킬 정도밖에 되지 못한다. 나중에 루터는 더욱더 본능적으로 교황의 권위에 종속하면서 그리스도의 은총의 보물창고의 체제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신의 은총을 관장하는 체제로서의 교회는 주님의 주관적 실행이라는 척도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독자적으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물론 루터는 근본적 측면에서 로마 가톨릭교회의 입장과는 분명한 차이점을 공표한 바 있다. 말하자면 사제 계급은 루터에 의하면 성서의 영향력을 인도하는 조직적 단체의 역할만을 수행해야 하며, 오로지 그리스도만이 이러한 단체를 다스리고 관장하는 총체여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루터는 체제로서의 교회보다 우위에 있는 그리스도의 존재를 한마디로 구원을 위한 최상의 존재로 인정하면서, 이를 공동체 초월의 원칙으로 확정하고 있다.

 

이러한 사항을 고려할 때 다음의 사항은 분명해진다. 즉 교황에 대한 루터의 비판은 근본적으로 결코 프로테스탄트의 관점에서 파생된 게 아니라는 사항 말이다. 성찬식을 거행하는 교회는 루터의 눈에는 사람들을 깊은 몰락의 심연으로 인도하는 것 같았다. 가톨릭교회는 루터의 견해에 의하면 그 자체 피조물의 주체들이 종교적으로 서로 연합하여 결성한 하나의 단체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이러한 단체는 신의 절대적 권위를 무시하고, 신도들을 마구잡이로 선택한, 아무런 토대 없는 자율성의 심연으로 내몰 수는 없다고 했다. 말하자면 루터는 이런 식으로 교회의 기능을 부인하고 깡그리 파기하려고 했는데, 이러한 입장은 아래로부터 위로 향하는 혁명적 특성을 전혀 보여주지 못한다. 그것은 오로지 상부의 관점에서 하나의 국가를 파괴하려는 처사와 같다. 인간은 루터에 의하면 어떤 경우에도 세상을 함께 관장하고 다스릴 수는 없다. 루터는 오로지 전지전능한 신만이 절대적인 군주로서 본연의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사람들은 여기서 루터가 어떠한 이유에서 이러한 정신적인 길을 걸어갔는지 고찰하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시민 사회는 사업가들에게만 자유를 부여한 게 아니라, 개개인의 존재 가치를 상승시켜주었다. 이로써 세상에는 모험을 마다하지 않는 새로운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게 된다. 특히 기존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동시대인들을 감동케 하는 인물들은 주로 독일에서 출현하였다. 이들은 주로 정신의 영역 그리고 교육의 영역에서 놀라운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런데 루터는 이러한 인물들과는 달리 모든 인간적인 특별함을 철저히 파기했다. 그는 일견 바보와 같은 이성에 대한 진솔한 믿음과 기대감을 철저히 비아냥거렸다.

 

가령 우리는 다음과 같이 상정할 수 있다. 프로테스탄트를 신봉하는 누군가가 처음으로 파우스트의 책을 저술했는데, 파우스트를 가톨릭을 신봉하는 교만한 스콜라학자로 묘사하였다고 말이다. 파우스트의 이러한 상은 뷔르템베르크에서 경건하게 신을 숭배하는 루터라는 인간과 정반대되는 면모를 지닌다고 한다. 루터는 경박하게 물질을 탐구하는 파우스트와는 달리, 지상의 재화를 탐하지 않으면서 독수리의 날개를 펄럭이면서 천상과 지상을 마음껏 날아다닌다는 식으로 말이다. 파우스트의 이러한 첫 번째 상은 나중에 이르러 프로테스탄트를 신봉하는 파우스트의 두 번째 자발적 인간형으로 변하게 되었다. 이러한 비약은 루터의 사상과는 정반대되는 어떤 과정을 분명하게 지적해주고 있다. 왜냐면 이러한 변모의 과정에서 출현한 것은 놀랍게도 기독교 신비주의가 추구하는 “나의 영혼을 구제하라.salva meam animam”는 오래된 섬광과 같은 특수한 전통이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루터의 사상적 궤적을 역추적하면, 우리는 다음의 사항을 파악할 수 있다. 즉 루터의 사고가 원시 기독교의 가르침으로부터 얼마나 널리 동떨어져 있는가 하는 사항 말이다. 원시 기독교가 내세우는 가르침은 인간형의 변모 그리고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진정한 자유를 지적해준다. 그것은 예수의 행적을 이어 나가면서, 그리스도의 정신은 내면으로 수용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리킨다. 그러나 루터는 불행한 이웃을 돌보고, 찬란한 미래를 갈구하며 황홀해하는 자세로부터 거리감을 취할 뿐이다. 그렇다. 바로 이러한 결정적인 입장에서 루터는 사도 바울과도 구분된다. 물론 루터가 사도 바울의 길을 스스로 걷고 있다고 천명한 것은 사실이다. 사실 사도 바울은 신앙인들이 주어진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거리감을 취하게 하고, 그리스도를 성스럽고 완전한 공동체와 결합해야 한다고 설파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루터는 사도 바울의 이름을 내걸면서 세례 종파의 원칙에 대해 적대적 자세를 취했다. 이 와중에서 그는 아우구스티누스를 인용했는데, 이는 엄청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대목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정서적 품위보다는 인식에 대한 의지를 중시하고 있는데, 이는 다만 시간이라는 조건 하에서 이해되는 사항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즉 믿음의 완전한 충만함은 –마르틴 루터가 둔스 스코투스에게서 차용한 바 있는- 신의 사랑을 확인하는 일을 통해서가 아니라, 신이 드러내는 진리를 직관하는 행위를 통해서 확립될 수 있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점은 아리스토텔레스, 플로티노스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의 그것과 일치하고 있다. 나중에 해석학자,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는 세계의 토대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감정의 이론을 주창한 바 있는데, 여기서는 성서 해석학자가 이른바 루터의 신앙을 철저하게 답습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루터는 로마 가톨릭 규정에 어긋나는, 믿음이라는 유일한 체험을 강조했는데, 이로써 신앙의 개념을 정립한 바 있다. 슐라이어마허는 루터의 이러한 입장을 충직하게 수용했다.

 

그렇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믿음이란 개개인의 특별한 종교적 감정에 의해서 생동감 넘치게 자라난다는 사실이다. 가령 보헤미아 지역 헤른후트의 종교 단체의 감상적 신비주의를 생각해 보라. 여기서 우리는 동일성의 철학을 추구하는 에크하르트 선사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에크하르트 선사는 정서보다는 무엇보다도 정신을 우선시하는 관념론을 추구하였으며, 이에 근거하여 종교적 신비주의의 심리학을 발전시켰다.

 

여기서 우리는 일단 칼뱅 사상과 가톨릭의 단계 이론을 어느 정도 수용한 칸트 그리고 범신론을 어느 정도 수용한 헤겔을 도외시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프로테스탄트의 정신적인 삶은 루터가 사망한 이후 오랜 세월 동안 루터가 추구한 신의 은총으로서의 신앙으로부터 거대한 범위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말이다. 일부는 루터의 기본적인 이론을 완전히 거부했으며, 일부는 루터의 은총의 이론을 대폭 수정하여 루터의 이론과는 거의 정반대로 해석하게 된다. 마르틴 루터의 이론에는 자율성이라는 찾아볼 수 없는 독단적 강령이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마치 갈등과 파괴를 조장하는 껍데기처럼 르네상스의 탐색적 열정 그리고 루터의 요청하는 신비로운 사고를 불필요하게 부추길 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