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내 단상

(단상. 567)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필자 (匹子) 2023. 4. 20. 10:02

 

1.

20세기 최고의 시집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라면, 필자는 20세기 최고의 소설집으로 조세희의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꼽고 싶다.

 

2.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작품은 시로 쓴 산문이고 (작가는 글을 잘못 썼을 때 원고지 한 칸 씩 가위로 오려서 정성스럽게 붙였다), 피로 쓴 산문이다.

 

3.

작품은 필자에게 기쁜 슬픔 그리고 슬픈 기쁨을 동시적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그 하나가 예술적 탁마의 차원에서 감지되는 무한한 희열이었다면,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체험해야 하는 가난 그리고 자본(가)의  횡포에 대한 비애와 분노의 감정이었다.

 

4.

작가는 의도적으로 "난쟁이"가 아니라, 난장이로 표현했다. 장애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겠다는 세심한 배려 때문이었다. 누가 그들을 세상에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게 만들었는가?

 

5.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피로 쓴 산문이다. 나의 가난이 아니라, 우리의 가난의 문제를 알려야 한다는 작가 정신이 용해되어 있다. 

 

6.

작가 조세희는 말과 글만 앞세우는 작가가 아니었다. 그는 행동하고 저항하는 지식인이었다. 2005년 쌀 개방에 반대하는 데모에 참석하다가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야 했다. 

 

7.

그는 일시적으로 절필을 선언했다. 못 쓰는 게 아니라, 안 쓰는 것이라고 했다. 작가와 지식인이 오늘날 카산드라처럼 외면당하는 시대에 대부분 문학 작품은 관심 밖에 머물고 있다.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눈먼 세상이라면, 가난을 감내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 스스로 집필에 몰두하지 않는 게 깨끗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8.

그의 유품 가운데에는 조세희 작가가 평소에 자주 읽던 책들이 있다. 그 가운데 에른스트 블로흐가 눈에 띈다. 자본주의는 돈만 중시하는 이기적인 인간형을 양산하고, 사회주의는 -비록 하자를 지니지만- 그 이상에 있어서는 사회와 민족을 고려하는 이타주의를 낳게 한다.

 

9.

조세희 작가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꿈속에서 내 뺨을 사정 없이 후려친다. "세상에 가장 어려운 것은 좋은 글을 쓰는 일이다. 두 번째로 좋은 것은 집필하지 않는 일이다. 세 번째로 좋은 것은 침묵이다."

 

10.

조세희 선생은 우리에게 조언한다: "함량 미달의 작품을 경솔하게 세상에 공개하지 마세요. 쓰기 전에 무언가를 읽고 깊이 생각하세요. 그리고 세상을 더 낫게 만들려고 행동하면서, 이따금 작품을 다듬으세요". 

 

 

"문학과 지성" 출판사는 조세희의 작품 간행만으로 문학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작가 조세희 (1942 -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