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유토피아

서로박: (4) 바이틀링의 기독교 공산주의

필자 (匹子) 2023. 3. 31. 08:24

(앞에서 계속됩니다.)

 

16. 엘리트의 가치 중심적 지배구조: 바이틀링은 비록 푸리에의 영향을 받았지만, 근본적으로 유토피아 사상가들로부터 많은 자양을 공급받은 게 틀림없습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플라톤의 국가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바이틀링은 플라톤의 독일어 번역본을 정독하였는데, 플라톤의 영향은 바이틀링의 문헌 속에 은밀히 용해되어 있습니다. 비근한 예로 우리는 엘리트 관료주의의 특성을 들 수 있습니다. 이상적 국가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탁월한 재능을 지닌 엘리트가 가장 중요한 임무를 맡아야 하며, 이들이야 말로 사회의 질서를 가장 훌륭하게 관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바이틀링은 언급한 바 있습니다. (Weitling I: 225).

 

그렇다면 공동체 내에서 나타날 수 있는 엘리트 관료들의 잠재적인 횡포를 어떻게 사전에 차단할 수 있을까요? 이 문제에 관해서 바이틀링은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밖에 바이틀링은 생시몽의 기술 국가의 체제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았습니다. 바이틀링의 유토피아에 담겨 있는 정치적 구조 속에는 놀랍게도 이른바 공화주의자의 정치적 견해가 거의 배제되어 있습니다. 공화주의는 두 사람 이상의 힘이 합쳐서 이루어지는 정치체제인데, 바이틀링은 이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가치 있는 자의 지배 Meritokratie”, 다시 말해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적재적소에서 정책의 선두 지휘해야 한다는 우월주의의 사고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17. 바이틀링의 유토피아 속의 모순점: 바이틀링은 전체적으로는 자유와 평등을 바탕으로 한 노동자와 수공업자의 국가 공동체를 추구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엘리트의 관료주의를 부분적으로 도입하고 잇습니다. 특히 물론 국가는 관청의 임무로 축소화되어야 하지만, 관청을 관장할 사람은 유능한 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바이틀링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습니다. 하나의 완전한 사회는 정부를 소유하고 있지 않지만, 하나의 훌륭한 관청을 소유하고 있다. 법은 없지만, 의무는 존속되어야 하고, 형벌은 없지만, 구원의 수단은 존재해야 한다.” (Weitling I: 30).

 

인용문을 고려하면 우리는 바이틀링이 플라톤과 생시몽이 생각한 관청으로서의 체제를 의식한 게 틀림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관청의 임무와 관련하여 바이틀링은 노동의 영역 그리고 학문과 기술의 발전 영역이라는 두 가지 중요한 영역에 커다란 비중을 두었습니다. “공동체에서는 세 가지 직업을 지닌 자들이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철학자, 의사 그리고 기술자들이 그들이다.” (Euchner: 72). 이들은 국가의 중요 직책을 맡기 위해서 익명으로 청원하게 되는데, 그들의 직책은 경쟁을 통하여 결정되어야 한다고 바이틀링은 주장 합니다.

 

18. 국가 중심적 구도 그리고 바이틀링의 유토피아의 한계: 요약하건대 바이틀링이 설계한 바람직한 공동체의 체제는 국가 중심적 구도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강압 내지 억압의 장치를 처음부터 지니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공동체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육체노동을 행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수확의 시기에는 일손이 부족하므로 모든 학교가 문을 닫아야 합니다. 바이틀링에 의하면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할 것 없이 모두가 들판에서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합니다. 바이틀링은 남녀평등에 관해서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렇지만 먼 미래에는 반드시 성의 평등이 실현될 수 있으며, 실현되어야 한다고 바이틀링은 주장했습니다. 적어도 여성들이 유용한 학문에 있어서, 발명과 재능에 있어서 남성들보다 탁월함을 보이지 않는 한, 여성들이 사회를 관장하는 핵심 부서에서 일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이틀링이 남녀의 질적인 동등권을 용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에 관한 바이틀링의 입장은 한마디로 전근대적인 사회적 편견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상기한 사항을 고려한다면 그는 19세기의 유토피아의 요구 사항을 넘어서지 못하고, 소시민 계층 내지 수공업자 계층 사람들이 자신의 가난한 처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공산주의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거듭 강조해나갔습니다.

 

19. 요약. 바이틀링의 사상: 바이틀링은 사회 유토피아의 구체적 모습을 세부적으로 설계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바이틀링의 사상은 사유재산제도, 시장, 화폐 등의 철폐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사회주의의 조합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바이틀링의 유토피아는 모렐리의 자연법전에 나타난 국가유토피아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그 특성상 국가 중심 사회주의의 공동체의 틀을 추종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바이틀링에게서 중요한 것은 유토피아의 틀 내지 구도가 아니라, 그가 목표로 추구하는 사회적으로 향상된 인간의 모습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바이틀링의 유토피아는 기독교의 우아함과 순결한 정신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혁명에 대한 과감한 열정을 내재하고 있습니다. 바이틀링은 목수의 아들과 사회주의, 혹은 그리스도가 어떻게 고통당하며 괴로워하는 프롤레타리아에게 강림할 수 있을까?” 하고 오래 고민하였습니다. (블로흐: 1179). 그렇기에 바이틀링에게서 노동자 예수의 붉은 조합이 연상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입니다.

 

참고문헌

 

- 블로흐, 에른스트: 희망의 원리, 5, 열린책들 2004.

-  Euchner, Walter: Ideengeschichte des Sozialismus in Deutschland, Teil I, in: (hrsg.) Helga Grebing, Geschichte der sozialen Ideen in Deutschland. Sozialismus- Katholische Soziallehre - Protestantische Sozialethik. Ein Handbuch, Essen 2000, S. 19 145.

- Lustiger, Arno: Rotbuch. Stalin und die Juden, Berlin 2002.

- Weitling, Wilhelm: Garantien der Harmonie und Freiheit, Berlin 1955.

- Weitling, Wilhelm: Das Evangelium des armen Sünders, Leipzig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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