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유토피아

서로박: (5) 토마스 뮌처의 천년왕국설

필자 (匹子) 2023. 4. 2. 11:44

(앞에서 계속됩니다.)

 

25. 재세례파와 토마스 뮌처의 농민 혁명에 대한 평가: 15세기 말부터 유럽의 가난한 사람들은 오랫동안 국가의 폭력 그리고 이에 간접적으로 지지하는 교회 체제에 굴복하면서 살았습니다. 이들은 뮌처를 중심으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터전으로서의 상호부조의 사회를 건설하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계획은 종교 혁명의 운동으로 시작되었으며, 결국은 재세례파와 뮌처의 농민 운동으로 발전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존엄성을 고수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토대는 종교 개혁 및 사회 개혁의 움직임으로 발전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더 나은 삶을 구현하여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지상의 천국을 구현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발전되었습니다.

 

나중에 카를 카우츠키는 자신의 책에서 농민 혁명을 종교적 차원에 국한시키고 사회 혁명 운동과는 별개로 평가했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뮌처의 사상에서 정치성을 일탈시키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공유제의 이념을 사회주의 사상과 결합시키려고 하는 것도 문제일 것입니다. 어쨌든 독일 농민 혁명은 이데올로기로서의 “토피아 Topie”를 개혁과 혁명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자극제로서의 “유토피아 Utopia”로 전환시킨 강력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26. 절대 권력, 실정법 그리고 민족주의: 실제로 독일 농민운동의 패배로 인하여, 근대 국가는 자신의 세 가지 위용을 관철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제후의 절대 권력, 절대적인 권한으로서의 실정법 그리고 민족주의를 가리킵니다. (Landauer: 67). 이러한 세 가지 사항은 계층을 용인하는 국가의 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했고, 17세기 절대 왕권을 더욱 강화시키게 합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막강한 종교 세력을 약화시키고, 초기 자본주의에 긍정적으로 자극을 가한 세력이 바로 황제의 권력이었습니다. 황제의 권력은 가톨릭 교황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절대 권력, 절대적 권한으로서의 실정법 그리고 민족주의에서 파생되는 애국심 등은 당시의 현실적 정황을 고려한다면 무조건 타파의 대상으로 간주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27. 뮌처의 영향 (1): 그렇다고 뮌처의 혁명의 시도가 아무런 계획과 방법을 전제로 하지 않은 혁명과 개혁의 프로그램이라고 통째로 폄하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뮌처가 주도한 농민혁명은 어떤 구원의 예언, 종말론적인 기대감, 폭력적인 선교의 의지 등의 동인으로 출현한 거대한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뮌처는 평등 사회에 관한, 분명하고 명징한 유토피아 모델을 미리 설계하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인간의 이성에 의해서 축조될 수 있는 모델을 설계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뮌처에게 당장 시급한 것은 기존의 사악한 무엇을 척결하는 행위였지, 결코 한가한 자세로 편안하게 앉은 채, 주어진 비참한 사회상과 반대되는 상상의 찬란한 사회 유토피아의 설계가 아니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최소한 죄악을 척결하려는 뮌처의 의향은 공명정대한 신에 대한 굳은 믿음에 의해서 출현하였으며, 농부들의 혁명으로 때 이르게 실천되었다는 사실입니다.

 

28. 뮌처의 영향 (2): 뮌처의 사상과 실천은 나중에 “전근대 사회에서 가난에 억눌린 민중들의 저항 운동과 혁명운동을 촉진하는” 강령으로 지속적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황대현: 101). 실제로 토마스 뮌처는 나중에 사회주의 혁명 운동 당시에 무산계급에게 선구자적인 인물로 간주되었습니다. 억압과 강제노동에 시달리는 무산계급의 갈망은 혁명적 전복의 촉진제로서 “지금, 여기”에서 이룩될 수 있는 변화의 세상을 선취하는 식으로 이어졌습니다. 가령 “모든 게 공동 소유다Omnia sunt communia”라는 플라톤의 발언은 뮌처에 의해서 만인의 평등을 위한 슬로건으로 수용되었는데, 이는 그야말로 “창조적 오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플라톤은 처음부터 계층 차이를 인정하고, 동일한 계층 사이의 평등을 주창했는데, 뮌처는 이를 뒤집어서 만인의 평등으로 잘못 수용했기 때문입니다.

 

 

참고 문헌

 

- 길희성 (2004): 보살 예수, 현암사.

- 블로흐, 에른스트 (2009): 저항과 반역의 기독교, 열린책들.

- 블로흐, 에른스트 (2012): 마르크스, 뮌처, 혹은 악마의 궁둥이, 박설호 편역, 울력.

- 에버트, 클라우스 (1994): 토마스 뮌처. 독일 농민혁명가의 삶과 사상, 오희천 역, 한국신학 연구소.

- 최재호 (2004): 토마스 뮌처의 종말론, 실린 곳: 서양사론, 제 83집, 93 – 124쪽.

- 황대현 (2007): 혁명의 신학자, 토마스 뮌처, 실린 곳: 박상철 외, 꿈은 소멸하지 않는다, 한겨레 출판, 75 – 102.

- Arnold, Gottfired (1740): Unparteiische Kirchen und Ketzer Historie. Vom Anfang des Neuen Testaments bis auf das Jahr Christi 1688, Schaffhausen.

- Bloch, Ernst (1921): Thomas Münzer als Theologe der Revolution, München.

- Franz (1976): Franz, Günter (hrsg.), Thomas Müntzer. Die Fürstenpredigt, Stuttgart.

- Kautsky, Karl (2011): Der Ursprung des Christentums. Eine historische Untersuchung, Frankfurt a. M.

- Landauer, Gustav (1923): Die Revolution, Frankfurt a. M..

- Luther, Martin (1978): Vom ehelichen Leben und andere Schriften über die Ehe, (hrsg.) Dagmar Lorenz, Stuttgart.

- Mannheim, Karl (1996): Ideologie und Utopie, Frankfurt a. M.. (한국어판) 카를 만하임 (2012):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 임석진 역, 김영사.

- Müntzer, Thomas (1973): Schriften und Briefe; Frankfurt a. M..

- Schlöderle, Thomas (2012): Geschichte der Utopie, Stuttgart.

- Swobosa (1975): Swoboda, Helmut (hrsg.), Der Traum vom besten Staat. Texte aus Utopien von Platon nis Morris, München.

- Wehr, Gergard (1972): Thomas Müntzer, Reinbek bei Hambu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