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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 소개) 최영철의 두 편의 시

길 최영철 인생이 달디달 때 술맛은 쓰고 인생이 쓰디쓸 때 술맛은 달았네 어느새 사랑에 취한 이에게 모든 길은 파묻혀 보이지 않아도 이윽고 사랑을 놓친 이에게 천지사방 모든 길이 망망대해였네 행여 묵직한 주머니를 넉넉한 여비로 생각지 말게나 그 바람에 바삐 가야 할 길 얼마나 멀고 무거워졌겠는가 먼저 길 떠난 이들이 모른 척 흘리고 간 여비가 차곡차곡 쌓여 저 멀고먼 협곡마다 반짝이고 있으니 나 이제 이 낯선 길 하나도 두렵지 않다네 ..................... 나리꽃 필 때 첫사랑의 정체는 소매치기였어 말 한 마디 없이 나와 너의 순정만 훔쳐 달아났지 나 잠깐 혼절해 있는 사이 그걸 어디 멀리 내다버린 줄 알았는데 이순(耳順) 어느 맑은 날 처음 수줍음 그대로 돌아 왔네 최영철 시집: 멸종 ..

19 한국 문학 2023.04.13

서로박: (4) 보위에의 "칼로카인"

(앞에서 계속됩니다.) 23. 여성의 세계관: 보위에의 작품에는 페미니즘이 자향하는 바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가령 등장인물 린다의 경우가 그것입니다. 린다는 사회 정치적 문제보다는 인간의 근본적인 심리인 사랑의 감정에 더욱 충실한 인간형입니다. 레오 칼은 린다를 통해서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국가 권력의 충직한 하수인이었는가? 하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린다는 인간과 인간을 서로 연결해주는 매개체가 국가 권력과 직업 세계의 공적인 관계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사랑과 우정과 같은 순수한 영혼의 교감이라는 점을 알려줍니다. (Ross 127). 이를 고려할 때 린다는 공적인 삶과 사적인 삶에서의 제반 갈등을 풀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긍정적 인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디스토피아의 소설에서는 ..

39 북구문헌 2023.04.12

서로박: (3) 보위에의 "칼로카인"

(앞에서 계속됩니다.) 16. 과연 칼의 아내는 그를 사랑하는가? 그런데 칼로서는 사전에 무언가를 확인할 게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내 린다에 대한 내적인 감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레오 칼은 몰래 린다에게 칼로카인을 투여합니다. 린다는 자신의 내적 갈망을 있는 그대로 토로합니다. 자신은 국가가 시키는 대로 “아이 낳는 기계”로 살고 싶지 않고, 사랑하는 남편과 오순도순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미는 자식들과 헤어지지 않고, 죽을 때까지 칼과 아이들과 함께 살고 싶다고 고백합니다. 린다가 의식을 되찾았을 때, 그미는 남편이 자신에게 칼로카인을 투여했음을 알아차립니다. 그런데도 린다는 주인공의 약물 투여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레오 칼과 린다는 이 세상에 참된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마침내 인지하게 됩니다. 이전..

39 북구문헌 2023.04.12

서로박: (2) 보위에의 "칼로카인"

(앞에서 계속됩니다.) 7. 작품의 배경: 소설 『칼로카인』은 총 19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미래의 시점, 즉 21세기의 세계 국가를 배경으로 합니다. 문학사적으로 고찰할 때 많은 작가들은 검열을 고려하여 문학적 배경을 의도적으로 과거로 이전하였습니다. 계몽주의 극작가, 레싱Lessing은 작품 「에밀리아 갈로티Emilia Galotti」(1772)의 배경을 18세기 독일이 아니라, 과거의 이탈리아로 옮겨놓았으며, 토머스 모어는 16세기 영국 대신에 미지의 섬을 작품의 배경으로 설정한 바 있습니다. 보이어 역시 의도적으로 시대적 배경을 미래의 어느 시점으로 옮겨놓았습니다. 보위에는 작품 발표 이전에 편집자와 편지를 교환했는데, 작품의 배경을 중국으로 설정하면 어떨까? 하고 오랫동안 고심했다고 합니다. ..

39 북구문헌 2023.04.12

서로박: (1) 보위에의 "칼로카인"

1. 속마음을 털어놓게 하는 묘약: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의 획을 긋는 일련의 디스토피아 작품들은 20세기 전반부에 우후죽순처럼 출현하였습니다. 그 까닭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시대적 정황에서 비롯합니다. 첫째로 자본의 증식을 추구하는 열강들이 제각기 국가 이기주의의 정책을 추구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개개인의 자유는 국가의 전체적 관점에 의해 무시되거나 억압되었습니다. 둘째로 산업 발전으로 인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으며, 유럽의 열강들은 원자재 확보를 위해서 식민지 쟁탈에 뛰어들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제 1세계와 제 3세계의 갈등은 더욱 첨예화되었습니다. 셋째로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대량 살상 무기가 획기적으로 계발되었습니다. 광산 사업을 위해 발명된 다이너마이트가 사람을 대량 살상하는 무기로 활용된..

39 북구문헌 2023.04.12

박설호: (4) 김상일의 "腦의 충돌과 文明의 충돌"

(앞에서 계속됩니다.) 9. 홍산문화 그리고 동학의 중요성: 미래의 문화는 저자에 의하면 동양과 서양, 중국과 한국, 남성과 여성, 인격신과 기 에너지 등의 대립이 아니라, 서양의 이원론적 균열과 충돌 대신에 조화와 화합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한다. 서로 다른 두 개의 문화는 충돌의 과정에서 승리와 패배로 등을 돌릴 게 아니라, 상호적으로 서로 장점을 교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뇌량이 그러하듯이 좌뇌적인 무엇은 저자의 견해에 의하면 우뇌적인 무엇과의 결합 시에 상호 협력하고 아우르는 과정을 거쳐야 진정한 미래의 건전한 문화를 창조해낼 수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남성 중심적 신학 Theology”은 평등 호혜의 의미를 받아들여서 “여성 중심적 신학 Thealogy”으로 변해야 한다. 이 점이야 말로 ..

23 철학 이론 2023.04.11

박설호: (3) 김상일의 "腦의 충돌과 文明의 충돌"

(앞에서 계속됩니다.) 7. 문화적 침범과 서구화 그리고 이와는 다른 홍산 문화: 서양의 이원론의 대립은 좌뇌와 우뇌의 균열에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대립은 앞에서 언급한 여성 살해에 관한 서양의 신화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서구의 기독교 국가들은 기독교를 비서구 국가에 전파하고, 이들이 서구화하기를 희구하였다. 그들의 3 M 정책은 “선교Mission”, “상인Merchant” 그리고 “군대Military” 등을 동원하는 일이었다. 하나의 문화가 다른 문화를 잠식하고 파괴하는 것은 신화에서 선취되고 있다. 문명사의 대서사시는 동양과 서양 사람들의 충돌과 갈등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 가령 우랄알타이어 산맥에 거주하던 수메르 인들은 메소포타미아로 이전하여 서양 문명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10세기의 칭..

23 철학 이론 2023.04.11

박설호: (2) 김상일의 "腦의 충돌과 文明의 충돌"

(앞에서 계속됩니다.) 5. 두 가지 이질성을 아우르는 뇌량 그리고 한국의 고대 문화: 한국의 고대 문화는 좌뇌와 우뇌의 조화를 이루는 뇌량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다. 그 까닭은 차축 시대 이전에 송화강 유역에서 풍요로운 홍산 문화를 이룩했기 때문이다. 너무나 강대한 홍산 문화는 황하강 유역의 중국인들의 초라한 용산문화보다 1000년 앞선 문명으로서 강한 모계 사회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도 서양의 대부분 역사가들이 중국 송화강 유역의 용산문화를 고대 중국의 문화라고 단정 지은 까닭은 홍산 문화의 발굴 작업이 20세기 이후에 비로소 활발히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류에 대한 대표적인 문헌 가운데에는 카를 야스퍼스의 『역사의 근원과 목표 Vom Ursprung und Ziel der Gesc..

23 철학 이론 2023.04.11

박설호: (1) 김상일의 "腦의 충돌과 文明의 충돌"

1. 문명의 충돌을 극복하려는 뇌 연구: 김상일 교수의 『脳의 충돌과 文明의 충돌』(2007)을 흥미롭게 읽었다. 이 책은 뇌의 연구와 문명의 역사를 서로 비교한다는 점에서 정신과학과 사회과학의 내용을 자연과학과 접목시킨다는 점에서 신선하면서도 놀라운 내용을 독자에게 전하고 있다. 저자는 맨 처음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과 국제 질서의 재편성The Clash of Civilizations and the Remaking of World Order』(1996)에서 어떤 모티프를 찾아내어, 이를 뇌 과학 연구에 접목시킨다. 그렇지만 뇌의 기능과 문명의 충돌을 서술하면서, 저자는 동서양의 사고방식의 차이, 중국과 한국의 문화적 대립, 유, 불, 도로 요약되는 동양학의 발전과 수용 그리고 한 사상 내지 동학..

23 철학 이론 2023.04.11

서로박: 천일야화 431 번째 이야기 (2)

(앞에서 계속됩니다.) 7. 공주, 산정에 올라 말하는 새를 만나다.: 20일이 되는 날에 공주는 무슬림 수사를 마주치게 됩니다. 그미는 말에서 내려서 큰절을 했습니다. 수사는 조용히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러자 공주는 명상에 침잠한 성자에게 아무 질문을 던지지 않은 채 말에 올랐습니다. 그미는 온갖 굉음이 가득한 산으로 향해 서서히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공주는 사랑하는 임을 생각하고 반드시 그를 구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솜으로 귀를 단단히 틀어막았습니다. 공주는 반드시 말하는 새를 만나서, 자신이 갈구하는 바를 직접 경청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공주는 주위의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드디어 정상에 도달했습니다. 높은 암벽의 꼭대기에는 새장 안에 새 한 마리가 앉아 있었습니다. 공주는 마구 퍼덕..

38 중세 문헌 2023.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