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 55

박설호: (2) 에른스트 블로흐 읽기 (III) 서문

(앞에서 계속됩니다.) 제 3부에 실린 글은 얼핏 보기에는 블로흐 연구와 무관하게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연구 대상은 다를지 몰라도, 독자들은 논의의 전개 및 방법론에 있어서 에른스트 블로흐를 유추할 수 있으리라고 여겨집니다. 첫 번째 글 「이반 일리히의 젠더 이론 비판」은 미발표의 논문으로서 일리히의 저작물 『젠더』를 비판적으로 구명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서 필자는 두 가지 사항을 지적하려 하였습니다. 그 하나는 일리히의 과거 지향적 관점이 퇴행의 반동적 세계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젠더에 대한 일리치의 시각이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고찰할 때 추상적이고 전근대적이라는 점입니다. 「원시 사회는 암반위에 있고, 문명사회는 절벽을 기어오르는가?」는 김유동 교수의 『충적세 문..

27 Bloch 저술 2023.04.22

박설호: (1) 에른스트 블로흐 읽기 (III) 서문

서문 “인간은 항상 초보자이다.” (블로흐) “일곱 번 깊이 생각해야 영특한 사고가 태동한다. 그런데 그 사고는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떠올리면, 동일한 명제라 하더라도 다른 의미를 전해준다.” (블로흐) “사랑이란 어떤 완전히 새로운 삶으로 향하는 여행이다.” (블로흐) ........................... 친애하는 J, 오늘 유난히 중국 발 미세먼지가 하늘을 잿빛으로 가리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사회의 제반 사항을 은폐하는 자본의 횡포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중국은 거대한 곰처럼 강성해지고, 일본 사람들은 후쿠시마 사태로 인하여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불안해하는 것 같습니다. 한반도는 여전히 반으로 동강나 있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가난과 폭정에 시달리며, 남한 사람들은 -빈부 차이가..

27 Bloch 저술 2023.04.22

서로박: 엥겔스의 '가족의 기원'

친애하는 K, 오늘은 프리드리히 엥겔스 (1820 - 1895)의 사회 이론을 담은 저서, 『가족,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 Der Ursprung der Familie, des Privateigentums und des Staats.』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이 작품은 마르크스가 죽은 1년 뒤에 (1884) 바로 간행되었습니다. 마르크스는 죽기 전에 인류 사회의 형성 시기의 역사에 관한 주요 단계를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그는 엥겔스와 여러 가지 저서를 공동으로 저작 발표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독일 이데올로기 Deutsche Ideologie』입니다. 이를 고려할 때『가족의 기원』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오랜 협력 작업의 하나에 해당합니다. 엥겔스가 이 작품을 완성하게 된 계기는 1877년..

23 철학 이론 2023.04.21

(단상. 567)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 20세기 최고의 시집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라면, 필자는 20세기 최고의 소설집으로 조세희의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꼽고 싶다. 2.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작품은 시로 쓴 산문이고 (작가는 글을 잘못 썼을 때 원고지 한 칸 씩 가위로 오려서 정성스럽게 붙였다), 피로 쓴 산문이다. 3. 작품은 필자에게 기쁜 슬픔 그리고 슬픈 기쁨을 동시적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그 하나가 예술적 탁마의 차원에서 감지되는 무한한 희열이었다면,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체험해야 하는 가난 그리고 자본(가)의 횡포에 대한 비애와 분노의 감정이었다. 4. 작가는 의도적으로 "난쟁이"가 아니라, 난장이로 표현했다. 장애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겠다는 세심한 배려 때문이었다. 누가 그들을 세상..

3 내 단상 2023.04.20

서로박: (3) 사드의 "새로운 저스틴"

(앞에서 계속됩니다.) 11. 그미의 여동생 줄리엣이 겪었던 이야기: 이렇듯 『새로운 저스틴』 속에는 수없이 많은 범죄, 강간, 살인 등이 뒤섞인 채 묘사되어 있습니다. 저스틴의 이야기는 줄리엣의 이야기로 건너뜁니다. 줄리엣을 둘러싼 이야가들은 몇몇 장면을 제외한다면 줄리엣의 시각에서 서술되고 있습니다. 줄리엣은 누아케이에라는 한량을 만납니다. 그는 온갖 사악하고 끔찍한 일을 마치 밥먹듯 저지르는 자입니다. 게다가 대단한 허영심을 지닌 잔악하기 이를 데 없는 사내로서, 힘없고 착하며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을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착취하는 거머리 같은 인간입니다. 누아케이아는 줄리엣의 주인으로 등장하는데, 신을 모독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자신의 하녀들의 성을 차례로 농락하며 지냅니다. 그 뿐 아니라 그..

32 근대불문헌 2023.04.19

서로박: (2) 사드의 "새로운 저스틴"

(앞에서 이어집니다.) 5. 18세기 유럽 사회 내의 사랑과 성에 관한 이야기: 이미 언급했듯이 『새로운 저스틴』이 발표되기 전에 간행된 두 개의 판본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첫 번째 판본은 감옥에서 유작으로 발견된 『미덕의 불운 Les infortunes de la vertu』 (1787)이며, 두 번째 판본은 『저스틴, 혹은 미덕의 불운 Justine ou Le Malheurs de la vertu』 (1791)를 가리킵니다. 물론 1796년에 그의 소설, 『줄리엣의 이야기 혹은 악덕의 이로운 사항들 Histoire der Juliette ou Les prospérités du vice』이 하나의 발췌 본으로 간행된 바 있습니다. 작가는 이러한 일련의 작품들, 특히 『줄리엣』을 통해서 장 작 루..

32 근대불문헌 2023.04.19

서로박: (1) 사드의 "새로운 저스틴"

1. 방대한 철학적 모험 소설: 친애하는 S, 오늘은 섬뜩한 느낌을 풍기지만, 강렬한 성적 욕구를 전해주는, 소설 한 편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소설의 원제목은 『새로운 저스틴 혹은 미덕의 불행, 그미의 여동생 줄리엣의 이야기 La Nouvelle Justin ou les Malheurs de la l’historie de Julientte, sa sœur』 (1797)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작품은 노골적인 성 묘사, 거침없는 사회 비판 등으로 당시에 작자 미상으로 간행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자는 다름 아니라 프랑스의 관료주의자, 철학자, 혁명적 정치가 마르키 드 사드 (1740 – 1814)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그를 사드 백작이라고 칭하는데, 원래의 이름은 도나텡 알폰스 프랑스와 마르키 드 사드입..

32 근대불문헌 2023.04.19

(명시 소개) 서로박: (2) 최영철의 시 "길" (해설)

(앞에서 계속됩니다.) 행여 묵직한 주머니를 넉넉한 여비로 생각지 말게나 그 바람에 바삐 가야 할 길 얼마나 멀고 무거워졌겠는가 凹: 5행과 6행에서 갑자기 시적 화자가 등장합니다. 凸: 네, 시인이 직접 독자에게 무언가 알려주고 있습니다. 기실 인간은 모두 태어난 다음부터 죽을 때까지 어디론가 떠나는 여행객일 수 있어요. 사람들은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휴게소에 내려서 휴식을 취하거나 먹고 마십니다. 우리의 휴식은 어쩌면 고속도로를 지나치다 잠시 들르는 휴게소에서의 시간으로 비유될 수 있습니다. 凹: 아니면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 사이의 대비라고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요? “주머니”가 묵직한 사람과 가벼운 사람들은 제각기 씀씀이가 다르니까요. 凸: 좋은 지적이네요. 우리는 삶의 과정에서 원하든 원치..

19 한국 문학 2023.04.18

(명시 소개) 서로박: (1) 최영철의 시 "길" (해설)

凹: 오늘은 최근에 간행된 최영철의 시집 『멸종 미안족』(문학연대 2021)을 논하기로 하겠습니다. 선생님은 시작품 가운데 왜 「길」을 선택하셨는지요? 凸: 일순간 어떤 섬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인생의 길” 아니면 도(道)를 지적해주는 자극이라고 할까요? 작품은 인간의 삶 그리고 삶의 의미와 방향을 성찰하려는 독자들에게 자극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凹: 그것은 무엇이지요? 凸: 시를 해석하면, 본의 아니게 시구를 해부해야 합니다. 최영철 시인의 작품들은 어떤 성찰과 깨달음을 요청할 뿐, 시 분석을 요구하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행간을 읽고 그 여백을 채워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분석을 자제하고, 행간의 여백을 채워나가는 식으로 작품을 읽어야 할..

19 한국 문학 2023.04.18

카린 보위에의 시 "최상의 것"

스웨덴의 시인 카린 보위에의 시작품들은 간결한 언어로 인간의 삶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인간의 불완전함에서 기인하는 고통의 편린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강렬히 원하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그 무엇을 얻을 수 없는 경우를 느낍니다. 이는 사랑의 삶에서 자주 감지되는 현상이지요. 하고 싶은 데 할 수 없는 경우는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만듭니다. 바로 이러한 미묘한 고통 속에서 보위에의 연애시가 태어났습니다. 시 한편을 인용하기로 하겠습니다. 「최상의 것 Det bästa」 카린 보위에 Karin Boye 우리가 가진 최상의 것을 글로 기술할 수 없어요. 줄 수도 말할 수도 없어 마음 깊이 간직해야 하지요. Det bästa som vi äga, det kan man inte giva,..

21 독일시 2023.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