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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설호의 시, "브레멘"

브레멘 박설호 가을 저녁 강가에는 오리 떼 그루잠 자고 떡갈나무 가지의 상고대 다가오는 추위에도 흐물흐물 녹는 디도의 흐느끼는 눈물이라면 * 저 멀리 계신 부모님 정화수가 보이지 베저 강 둥거 호수 ** 얼음 사이 덧물이 흘러 새띠기들 갈 길 바쁜 행려자의 소매를 잡고 친구로 괴자고 다소곳이 애원하고 있을 때 푸드득 갈까마귀도 푸접 떨고 있었지 브레멘 광장에서 올려다 본 당나귀 황구 고양이 수탉 모두 힘없는 늙은이 모임 *** 약한 자의 저항 어떠한 힘인지 보여준다면 화음은 길손의 마음 벅차게 만들었지 바로 여기 반거충이 잠시만 머물지만 데이지 꽃 그 향기 가슴속 깊이 사랑하기에 함께 아우르자는 디도의 말없는 고백이라면 순간의 설렘 속에서 기쁨은 영원했지 * 디도: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에 나오는 카르타고..

20 나의 시 2023.04.02

서로박: (5) 토마스 뮌처의 천년왕국설

(앞에서 계속됩니다.) 25. 재세례파와 토마스 뮌처의 농민 혁명에 대한 평가: 15세기 말부터 유럽의 가난한 사람들은 오랫동안 국가의 폭력 그리고 이에 간접적으로 지지하는 교회 체제에 굴복하면서 살았습니다. 이들은 뮌처를 중심으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터전으로서의 상호부조의 사회를 건설하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계획은 종교 혁명의 운동으로 시작되었으며, 결국은 재세례파와 뮌처의 농민 운동으로 발전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존엄성을 고수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토대는 종교 개혁 및 사회 개혁의 움직임으로 발전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더 나은 삶을 구현하여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지상의 천국을 구현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발전되었습니다. 나중에 카를 카우츠키는 자신의 책에서 농민 혁명을..

26 유토피아 2023.04.02

서로박: (4) 토마스 뮌처의 천년왕국설

(앞에서 계속됩니다.) 17. 루터의 변절과 그의 언어적 폭력: 루터는 고위층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1521년 보름스 성당에서 고초를 겪은 뒤에, 성서 번역에 몰두하고, 세상사에 관여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루터가 보름스 성당에서 자신의 주장을 번복하고, 권력에 굴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체득한 죽음에 대한 위기의식은 이후 그의 정치적 행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이후에 보여준 루터의 정치적 입장은 수구반동주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가령 루터가 독일 농민 혁명 당시에 그냥 가만히 있지 않고, 농부들의 폭동을 천민들과 강도떼의 폭력적인 난동이라고 규정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세요. 루터는 기득권 세력에 빌붙어서 체제 옹호적으로 처신한 셈입니다. 그의 짤막한..

26 유토피아 2023.04.02

서로박: (3) 토마스 뮌처의 천년왕국설

(앞에서 계속됩니다.) 10. 심령주의 신앙과 세례: 뮌처는 글과 문헌을 중요한 무엇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뮌처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식자들의 지식이 아니라, 진정한 믿음을 투시한 사람이야 말로 구약과 신약의 정신을 올바르게 수용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신을 두려워하는 예언자들이야 말로 현재 현실에 관여하는 신의 의지를 인지하고 인식할 뿐이라고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신의 뜻을 투시한 예언자만이 신의 말씀을 전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필자는 영지주의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영지주의와 심령주의는 영혼을 인지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영지주의는 기원 후 그리스도의 영혼을 재발견하려는 그노시스 학파로서, 하나의 종파의 차원에서 이해될 있습니다. 이에..

26 유토피아 2023.04.02

서로박: (2) 토마스 뮌처의 천년왕국설

(앞에서 계속됩니다.) 6. 뮌처의 강인하고 짧은 삶 (4): 1521년은 루터에게는 끔찍한 시련의 해였습니다. 그는 종교 개혁의 선언으로 보름스 성당에서 심문을 당하면서 쭉을 고비를 넘깁니다. 뮌처는 바로 이 시기에 「프라하 선언」을 발표하고, 종교 개혁에 전력투구하기로 결심합니다. 16세기 얀 후스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결성한 타보르 종파는 겉으로는 로마 가톨릭과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지는 않았지만, 내적으로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지상의 평등한 천국을 건설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잠행의 시기에 뮌처는 알트슈테트에 있는 요한니스 교회의 목사로 부임합니다. 이때 그는 창의력을 발휘하여 제법 많은 글을 집필합니다. 1524년에 이르러 주어진 여건은 정반대로 변화됩니다. 독일 남서부 슈틸링겐에서 농민들..

26 유토피아 2023.04.02

서로박: (1) 토마스 뮌처의 천년왕국설

1. 위대한 종교 개혁자, 라스카사스와 토마스 뮌처: 서양의 종교 개혁가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서 라스카사스LasCasas와 토마스 뮌처Thomas Müntzer가 손꼽힙니다. 그 이유는 라스카사스와 뮌처가 종교의 개혁과 정화 운동을 넘어서서, 주어진 현실의 비참한 상황을 개선하고 민초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라스카사스는 가톨릭 사제로서 신대륙에서의 인디언 학살과 제국주의의 비리를 지적하고,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 수없이 대서양을 횡단하였습니다. 뮌처는 16세기에 독일 농민 운동을 주도함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에게 지상의 천국을 선물하려고 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힘없고 가난한 인민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시대의 가장 끔찍한 모순을 고발하며 이를 ..

26 유토피아 2023.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