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북구문헌

서로박: (4) 보위에의 "칼로카인"

필자 (匹子) 2023. 4. 12. 10:05

(앞에서 계속됩니다.)

 

23. 여성의 세계관: 보위에의 작품에는 페미니즘이 자향하는 바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가령 등장인물 린다의 경우가 그것입니다. 린다는 사회 정치적 문제보다는 인간의 근본적인 심리인 사랑의 감정에 더욱 충실한 인간형입니다. 레오 칼은 린다를 통해서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국가 권력의 충직한 하수인이었는가? 하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린다는 인간과 인간을 서로 연결해주는 매개체가 국가 권력과 직업 세계의 공적인 관계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사랑과 우정과 같은 순수한 영혼의 교감이라는 점을 알려줍니다. (Ross 127). 이를 고려할 때 린다는 공적인 삶과 사적인 삶에서의 제반 갈등을 풀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긍정적 인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디스토피아의 소설에서는 여성의 세계관 자체가 한 번도 언급되거나 중요한 이슈로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보이어의 경우는 하나의 예외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전체주의 국가에서의 여성의 참혹한 희생은 -본서의 제12장에서 다루게 될- 마가렛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The Handmaid’s Tale』(1985)에서 다시 한 번 묘사되고 있습니다.

 

24. 작품은 20세기 유럽에서 발생한 특정 사건을 패러디한 것은 결코 아니다: 작품의 주제는 조지 오웰의 『1984년』의 그것과 매우 흡사합니다. 오웰이 사회 전체를 세밀하게 구획하여 세 계층으로 나눈 다음, 전체주의 국가 시스템의 횡포를 다양한 각도에서 광활하게 다루었다면, 카린 보위에는 작품의 틀을 무엇보다도 레오 칼이라는 엘리트 기술자의 이야기에 국한하고 있습니다. 물론 작가는 주어진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작가 보위에는 출판사 사장인 보니에르와의 편지 교환에서 “소설의 배경을 중국으로 설정하면 어떻겠는가?” 하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바 있습니다. 어쩌면 중국의 홍위병이 펼치는 중앙 집권적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국가 행정 방식은 작가에게 하나의 그럴듯한 문학적 범례로 작용했는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작품을 하나의 우화로 수용해야 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25. 작품의 주제는?: 보위에의 작품에 대한 해석은 무척 다양합니다. 혹자는 작품의 배경이 스탈린주의의 전체주의의 폭정이라고 주장하는 반면에, 혹자는 히틀러의 인종 이데올로기 내지 사악한 감시 감독 체제를 통렬하게 비판했다고 주장합니다. 해석의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할 때 이러한 사실을 작품의 주제로 못 박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음의 사항을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보위에의 『칼로카인』은 조지 오웰의 소설이 공개되기 8년 전인 1940년에 발표되었습니다. 당시 독일은 파시즘의 독재 정책을 펴나가면서 덴마크와 노르웨이에 군사적 영향력을 떨치고, 소련은 핀란드 지역을 간접적으로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덴마크는 말하자면 두 세력의 중간 지역으로서, 더욱더 강성해가는 독일의 군사력에 커다란 위협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당시의 스웨덴은 정치적으로 모순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스웨덴 정치가들은 히틀러 독재에 대해 거부 반응을 느꼈지만, 일부 아리아인의 순수 혈통을 고수하자는 나치의 주장에 대해 부분적으로 동참했습니다. 어쩌면 보이어는 작품을 통하여 소련의 전체주의적 공산주의 시스템을 비난하려 한 게 아니라, 오히려 30년대 말부터 스웨덴의 정치적 분위기를 감싸던 히틀러의 국가 사회주의의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폭로하려고 의도했는지 모릅니다. (Waschkuhn 158). 실제로 히틀러에 충직하게 봉사하던 자연과학자들은 개개인을 감시하기 위해서 온갖 생물학의 화학적 실험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병자와 정신이상자를 가려내기 위해서 그들에게 화학적 거세까지 감행하기도 하였으니까요.

 

26. 무고한 자 역시 얼마든지 죄를 꾸며내어 자백할 수 있다: 칼로카인은 처음부터 당국의 계획적 술수에 의해서 만들어진 약품입니다. 무고한 자들은 이러한 약품을 통해서 얼마든지 죄를 뒤집어쓸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약품 자체가 아니라, 개인에 대한 당국의 서슬 푸른 협박 내지 탄압입니다. 비근한 예로 우리는 아더 케스틀러Arthur Koestler의 『개기 일식Darkness at Noon』를 들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은 1941년에 맨 처음 영어 판으로 간행되었습니다.

 

주인공, 루바소프는 실존하던 정치가들, 이를테면 트로츠키, 라덱 그리고 부하린 등을 연상시키는 남자입니다. 그는 왕년에는 수사반장으로 일하다가, 혁명이 발발했을 때 공산당의 지도자로 활약합니다. 30년대 말 그의 대부분 동지들은 스탈린주의자들에 의해 숙청당합니다. 루바소프 역시 체포되어 감옥에 수감됩니다. 비록 혁명가로 일한 전력 때문에 고문은 면하지만, 밤낮으로 진행되는 심문 동안에 주인공은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옛 동지인 이바노프가 심문을 주관했지만, 도중에 반역 혐의로 체포되어 어디론가 끌려가고, 이번에는 클레트킨이라는 젊은이가 주인공의 심문을 담당하게 됩니다. 문제는 젊은 클레트킨이 스탈린의 열혈 추종자로서 모든 심문과 재판을 공개적으로 거행하는 데 있었습니다. 당국의 끔찍한 심문으로 인하여 루바소프는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범행을 거짓으로 자백합니다. 당이 없으면 자신은 죽은 목숨과 마찬가지이며, 고백하는 게 당에 봉사하는 마지막 기회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Koestler: 576)

 

스탈린의 숙청 사건을 이토록 신랄하게 비판한 문학 작품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나아가 케스틀러의 소설은 허위자백으로 인한 부당한 처벌을 고발하는 놀라운 문헌이기도 합니다. 『개기 일식』은 1940년대 30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1946년에만 프랑스에서 약 40만권 팔렸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다음의 사실입니다. 당시 프랑스 공산당은 케스틀러의 작품으로 인하여 심한 갈등을 느끼다가, 그의 프랑스 판본을 모조리 구매하여 분서갱유했다고 합니다.

 

 

참고 문헌

 

- 바이스, 페터 (2016): 저항의 미학 3, 홍승용 역, 문학과 지성사.

- Boye, Karin (1986): Kallocain: Roman aus dem 21. Jahrhundert, Frankfurt a. M..

- Haug, Wolfgang Fritz (1981): Vorschläge zur Aneignung der „Ästhetik des Widerstands", in: hrsg. von Karl-Heinz Götze und Klaus Scherpe, "Ästhetik des Widerstands" lesen, Literatur im historischen Prozess, Berlin, 29-40.

- Jens (2001): Jens, Walter (hrsg.), Kindlers neues Literaturlexikon, 22 Bde., München.

- Koestler, Arthur (1998): Darkness at Noon. Translated by Daphne Hardy, Harmondsworth.

- Nolte, Ulrike (2002): Kallocain als Darstellung der totalitären Bedrohung, in: Schwedische „Social Fiction“. Die Zukunftsphantasien moderner Klassiker der Literatur von Karin Boye bis Lars Gustafsson, Monsenstein und Vannerdat, Münster

- Ross, Bettina (1989): Politische Utopien von Frauen. Von Christine de Pizan bis Karin Boye, Dortmund.

- Saage, Richard (2006): Utopische Profile, Bd. 4, Widersprüche und Synthesen des 20. Jahrhunderts, 2. korrigierte Aufl., Münster.

- Waschkuhn, Arno (2003): Politische Utopien. Ein Überblick von der Antike bis heute, München/ Wien.

- Weiss, Peter (1984): Die Ästhetik des Widerstandes, 3 Bde., Frankfurt a. 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