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북구문헌

서로박: (1) 보위에의 "칼로카인"

필자 (匹子) 2023. 4. 12. 09:56

1. 속마음을 털어놓게 하는 묘약: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의 획을 긋는 일련의 디스토피아 작품들은 20세기 전반부에 우후죽순처럼 출현하였습니다. 그 까닭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시대적 정황에서 비롯합니다. 첫째로 자본의 증식을 추구하는 열강들이 제각기 국가 이기주의의 정책을 추구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개개인의 자유는 국가의 전체적 관점에 의해 무시되거나 억압되었습니다. 둘째로 산업 발전으로 인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으며, 유럽의 열강들은 원자재 확보를 위해서 식민지 쟁탈에 뛰어들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제 1세계와 제 3세계의 갈등은 더욱 첨예화되었습니다. 셋째로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대량 살상 무기가 획기적으로 계발되었습니다. 광산 사업을 위해 발명된 다이너마이트가 사람을 대량 살상하는 무기로 활용된 것은 좋은 범례입니다.

 

이 장에서 다룰 작품은 스웨덴의 시인이자 작가인 카린 보위에 (Karin Boye, 1900 - 1941)의 소설 『칼로카인Kallocain』입니다. 작품에서 세계국가는 더 이상 개개인의 안녕과 행복을 도모하는 게 아니라, 모든 권력을 남용하는 기관입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통솔하고 심지어는 개개인의 사생활까지 감시 감독하고 있습니다. 칼로카인은 부작용이 없는 생화학의 액체로서, 누군가 이 약을 복용하면, 무의식의 상태에서 자신의 속마음을 발설하게 됩니다. 작가는 이러한 액체, 칼로카인을 발명해내는 주인공을 통해서 주어진 현실 그리고 이로 인해 나타나는 심리적 상태 등을 정교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2. 보위에의 삶 (1): 카린 보위에는 1900년 괴테보리에서 기술자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보위에의 선조들은 유럽 중부의 뵈멘 출신이었는데, 1844년에 스웨덴으로 이주했다고 합니다. 1909년에 그미는 가족과 함께 수도인 스톡홀름으로 거주지를 옮겼습니다. 보위에는 1921년부터 1926년까지 웁살라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였습니다. 학생 시절에 그미는 프랑스 앙리 바르뷔스Henri Barbusse의 평화적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서클에 가입하였습니다. 보위에는 당시의 정황을 고려할 때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한 것 같습니다. 당시의 대부분 지식인이 그러했듯이 보이어 역시 불과 26세의 나이에 소련을 여행하여 그곳의 혁명적인 분위기를 생생히 체험하였습니다. 그러나 소련의 현실 변화에 커다란 실망감을 느끼고 스웨덴으로 돌아옵니다. 1928년 석사학위를 취득한 보이어는 “모탈라Motala” 지역에서 중등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가끔 좌익 문예지에 시와 비평 등을 기고하였습니다.

 

3. 보위에의 삶 (2): 보위에에게 결혼생활은 삭막한 것이었습니다. 1929년에 자신이 가담했던 평화서클의 비서, 라이프 뵈르크와 결혼한 바 있으나, 이는 형식적 혼인이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보위에는 오로지 서류상으로 1934년까지 라이프 뵈르크와 혼인 상태에 있었습니다. 1932년에 보위에는 마침내 자신의 진정한 임과 만납니다. 군넬 베르그스룀이라는 이름을 지닌 여성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군넬 베르그스트룀은 보위에와 동성애의 관계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군넬은 사랑하는 보위에로 인하여 남편인 시인, 군나르 에켈뢰프와 이혼하였습니다.

 

그러나 보위에와 베르크스트룀의 사랑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이별 후에 보위에는 극도의 절망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1933년 여름에 베를린에 머물렀습니다. 이때 그미는 마르고트 하넬과 처음으로 만납니다. 마르고트는 19세의 독일 처녀였는데, 이때부터 보위에는 그미와 함께 괴테보리에서 살았습니다. 이 시기에 그미는 교사로 일하면서, 신문과 잡지에 가끔 자신의 글을 발표하였습니다. 1941년 4월 24일 보위에는 괴테보리에서 50킬로 떨어져 있는 어느 숲에서 시체로 발견됩니다. 보위에의 죽음은 음독자살로 밝혀집니다. 마르고트는 보이어의 사망 직후에 연인을 따라 목숨을 끊었습니다. 자살의 이유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4. 보위에 문학의 특성: 보위에의 초기 문학은 놀라운 긴장감을 불어넣는 이상주의 그리고 개인적 진실을 찾으려는 열정 등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미의 문학은 생동감 넘치는 진지함 그리고 정신분석학적 치밀함을 지니고 있는데, 이념과 현실, 의무감과 충동, 인습과 삶의 심원함 사이의 제반 갈등 등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체험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작품, 『크리스Kris』(1934)는 보위에의 삶에 대한 진솔한 태도, 진리에 대한 사랑 그리고 젊음과 미래에 대한 믿음 등을 현상화시키고 있습니다. 독자는 이 작품에서 특유의 섬세한 영혼이 느끼는 불안 그리고 두려움 등을 아울러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칼로카인. 21세기의 장편 소설Kallocain. Roman från 2000- talet』(1940)은 보위에의 이전에 알려진 문학적 경향과는 커다란 대조를 이룹니다. 소설은 전체주의 시스템이 어떻게 개개인에게 끔찍한 억압기제로 작용하는가? 하는 물음을 제기합니다. 보위에의 문학세계는 독일 출신의 유대인 극작가, 페터 바이스에 의해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Haug: 38). 바이스는 스웨덴에서 오래 체류했는데, 이때 북구의 문학을 깊이 천착하였습니다. 그는 논문 소설, 『저항의 미학Die Ästhetik des Widerstands』 제 3권에서 보위에의 불행은 남성 지배의 횡포에 기인한다고 지적하였습니다. (Weiss 3: 32f).

 

5. 독일 파시즘 침략에 대한 불안, 스웨덴의 조직적 정치 이데올로기: 보위에의 『칼로카인』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리는 40년대의 스웨덴의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독일의 파시스트들은 서서히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옥죄이기 시작합니다. 스웨덴 정부는 막강한 힘을 지닌 외부의 적과 정면으로 대결하는 대신에, 저자세를 취하면서 그들에게 아부하였습니다. 실제로 스웨덴은 40년대 초부터 독일에게 철강 생산을 위한 원자재를 공급해주었습니다. 스웨덴 정부는 국민 대다수가 히틀러를 싫어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자청해서 독일의 국가사회주의에 동조하며, 히틀러를 추종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국민들로 하여금 불신과 고립을 강화시키게 하는 정책이었습니다. 당국은 반정부적인 자들을 엄중하게 처벌하고, 이들을 밀고하는 자들에 대해 상을 내렸습니다. 이로 인하여 스웨덴 사람들은 서로 대화를 기피하고, 이간질을 일삼았습니다. 어쩌면 보이어는 정부에 의해 은밀하게 이행되는 교묘한 통제의 정책 그리고 이로 인한 일반 사람들의 히스테리의 반응을 희화화하려고 했는지 모릅니다.

 

6. 개인과 사회: 일단 작품의 일부분을 인용하려고 합니다. 여기서는 개별 인간과 사회가 개별 세포와 전체적 조직으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모든 군인은 어린 시절부터 저열한 삶과 고결한 삶의 차이를 배워야 했다. 저열한 삶은 복잡하지 않고, 분화되지 않은 삶을 가리킨다. 가령 우리는 동식물을 예로 들 수 있다. 이에 비하면 고결한 삶은 복잡하며, 다양하고, 분화된 것이다. 가령 세밀하고, 훌륭하게 기능하는 일원성으로서의 인간의 육체를 생각해 보라. 모든 군인들은 사회의 개혁에 언제나 동일한 행동을 취하는 것을 배워야 했다. 사회는 처음에는 아무런 계획 없는 집단이었는데, 고도로 조직화되고, 분화된 형태로 발전했다. 그리하여 생겨난 것이 우리가 처한 세계국가이다. 개인주의에서 공동체 주의로, 고독한 삶에서 공동의 삶으로 – 이것이 거대한 성스러운 조직의 길이요, 행적이었다. 거대한 조직에서 개별적 존재는 하나의 세포와 같다. 그것은 오로지 전체로서의 조직에 봉사하고 기여할 뿐이다.” (Boye: 47).

 

세계국가에서 개인의 자유는 철저히 차단되고 있습니다. 국가가 하나의 조직이라면, 개인은 조직에 종속된 미세한 세포와 같습니다.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지속적으로 차단하고 구속합니다. 개인이 자기 스스로 비판의식을 발전시키면, 궁극적으로 국가의 적으로 핍박당하게 됩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