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 55

서로박: (2)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 강"

(앞에서 계속됩니다.) 백군의 패잔병들은 콘스탄티노플로 망명하기 위하여 노보로시스크에서 배를 탑니다. 그러나 그레고리는 망명을 거부하고 볼셰비키들을 맞이합니다. 그리하여 주인공은 입장을 바꾸어 적군에 합류합니다. 적군에 합류한 것은 자신의 과오를 스스로 씻기 위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레고리는 부조니의 기마부대와 함께 폴란드 전투에 참가합니다. (친애하는 A, 적군에 속하는 부조니의 기마부대의 학살극을 잘 알고 계시겠지요? 이삭 바벨이 묘사한 바 있지만 부조니는 눈앞의 적인 백군을 퇴치하지 않고, 아군 가운데 유대인들을 골라 학살극을 벌인 것으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이렇듯 전쟁의 와중에는 정치적 입장에 관한 물음이 중요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관계, 민족 차이, 경제적 이득 등에 관한 사항이 더 중요한 것처럼..

31 동구러문헌 2023.04.30

서로박: (1)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 강"

망중한이면 나는 으레 비에니아프스키 Wieniawski의 「스케르초 타란텔라 Scherzo Tarantella」를 듣습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연주가 가장 멋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곡을 들으면, 어째서 광대무변한 우크라이나가 생각나는 것일까요? 물론 나는 그곳으로 가보지는 못했지만, 수많은 사진과 동영상들을 감상하곤 하였습니다. 돈 강은 우크라이나의 젖줄로서 풀과 밀이 자라는 곡창 지대 사이로 1870 킬로미터를 유유히 지나치면서, 여행객들에게 하나의 장관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돈 강은 우크라이나 북부에서 남쪽 지역을 지나치다가 흑해로 흘러갑니다. 카자흐 인민들은 돈 강의 강물을 “조상들의 눈물”이라고 믿었습니다. 기마 민족인 그들은 오랜 세월 동안 타 민족들과 전쟁을 ..

31 동구러문헌 2023.04.30

서로박: 돈키호테 다시 읽기 (2)

(앞에서 계속됩니다.) 7. 사랑하는 임의 상을 사랑할 뿐이다.: 임을 애타게 갈구하면, 만남은 성급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법인가요? 사랑을 애타게 갈구하는 남자는 그미를 사랑하는 대신에, 스스로 갈구하는 임의 상만을 사랑합니다. 돈키호테는 (비록 착각 속에서 살아가지만) 자신의 행위를 필요로 하는 현실과 직접 부딪칩니다. 현실 속에는 자신의 갈망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돈키호테가 둘시네아를 생각할 때는 이와는 다릅니다. 그미는 하나의 명상으로서 돈키호테의 뇌리 속에서만 출현할 뿐입니다. 친애하는 T, 언젠가 독일의 작가 투콜스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키 크고 날씬한 분을 갈구하지만, 작고 뚱뚱한 분을 얻는다. 그게 삶”이라고 말입니다. 둘시네아는 아주 가까운 곳, 토..

34 이탈스파냐 2023.04.29

서로박: 돈키호테 다시 읽기 (1)

1. 돈키호테 그리고 둘시네아: 세르반테스의 작품 『돈키호테』는 오늘날 세계 문학 가운데 가장 커다란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손꼽힙니다. 이는 오슬로에 있는 노벨 연구소가 현존하는 100명의 작가에게 보낸 앙케트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중심으로 주인공과 둘시네아 사이의 영혼의 관계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합니다. 둘시네아는 세르반테스의 작품에서 그렇게 많이 언급되지 않는 주변인물입니다. 그렇지만 둘시네아가 돈키호테의 삶과 사랑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생략될 수 없습니다. 나아가 그미는 주인공의 시대착오성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작품의 현실적 배경은 15세기 말로 추론되지만, 정작 주인공은 자신의 중세의 기..

34 이탈스파냐 2023.04.29

(명저 소개) 김종갑 교수의 성인책

김종갑 교수의 성과 인간에 관한 책은 2014년에 간행되었는데, 필자의 과문함 때문에 이제야 이 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부제는 "문학과 예술로 읽는 섹슈얼리티의 역사"입니다. 책은 총 8장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첫 번째 장과 마지막 장은 서문과 결어와 같습니다. 책은 저자의 열린 사고를 명징하게 드러내기보다는 예문과 사실에 근거하여 은근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독자에게 무언가를 강권하는 특성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행과 행 사이를 예리하게 읽어나가야 저자의 놀라운 시각을 하나씩 찾아낼 수 있습니다. 필자는 언젠가 문학사를 강의하면서, 서양의 문학사는 관습 도덕 그리고 법의 약화 과정이라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대를 논외로 한다면, 기독교가 도래한 다음의 역사는 ..

1 알림 (명저) 2023.04.28

(단상. 568) 전세 제도를 철폐할 수는 없을까?

1. 마키아벨리는 사악한 유형과 관련하여 여우와 사자를 예로 들었다. 여우는 거짓과 사기를 일삼고, 사자는 끔찍한 폭력을 저지른다고 했다. 권력자는 이 두 가지 속성을 교묘하게 역이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거짓과 사기를 일삼는 인간형 (보이스피싱 범죄자, 전세사기꾼) 그리고 전쟁을 일으키는 인간형 (푸틴과 같이 전쟁을 부추기는 권력자) 등을 세상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을까? 2. 전세 제도는 다른 나라에는 거의 없다. 전세 사기는 더더욱 없다. 거금을 맡기고 세들어 사는 나라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 월세를 주고 부동산을 임대한다. 3. 전세든 월세든 간에 문제는 무기한 살 수 없다는 데 있다. 독일에서 세들어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기간만큼, 무기한 세들어 설 수 있다. ..

3 내 단상 2023.04.28

서로박: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권태'

이탈리아의 작가, 알베르토 모라비아 (A. Moravia, 1907 - 1990)의 소설, 『권태 La Noia』는 1960년에 발표되었고, 전 세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알베르토 모라비아는 자신의 소설을 “예술적 통속소설”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모라비아에 의하면 훌륭한 소설이란 단순한 노동자에게 잘 읽히고, 지식인 계층에게 어떤 감추어진 의미를 전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모라비아는 노동자들에게 음탕하고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반면에, 식자층에게 바람직한 세계관 내지 전망을 상실한 현대인들의 무기력함을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주인공, “나”는 30세 중반의 “디노”라는 화가입니다. 그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확실하게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로 인하여 주인공의 마음속에서 어떤 불쾌한 감정..

34 이탈스파냐 2023.04.27

서로박: (2) 모리스의 "유토피아 뉴스"

(앞에서 계속됩니다.) 22세기의 영국에서 환영 받는 일감은 단순 노동 외에도 학문입니다. 사람들은 학문의 연구를 통하여 환경 친화적인 에너지를 창조해낼 수 있었습니다. 이에 비하면 사람들은 고도로 발전된 기계의 사용을 결코 애호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계에는 인간의 예술적 감각이 조금도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리스는 작품 속에 기계 설계 및 이에 관한 세부적인 기술적 사항을 사변적으로 그리고 정밀하게 해명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사실 모리스는 기계와 자연과학에 관해서 잘 모른다는 것을 은연중에 시인합니다. 그렇지만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과학 기술의 구체적 사항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인간과 자연에 친화적인 과학과 기술이 환영 받는 사회적 전제조건을 마련하는 일이었습니다. 우연히 아름다운 ..

35 근대영문헌 2023.04.23

서로박: (1) 모리스의 "유토피아 뉴스"

친애하는 M, 오늘은 윌리엄 모리스의 『유토피아 뉴스』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모리스의 유토피아는 미리 말씀드리건대 무정부주의에 입각한 소규모 사회주의의 공동체의 유토피아에 편입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처음부터 국가의 체제 속에서 설계된 사회주의 유토피아와는 거리감을 취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리스는 이를테면 독일의 빌헬름 바이틀링 Wilhelm Weitling의 농촌 중심의 기독교 사회주의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데, 나중에 루돌프 슈타이너 Rudolf Steiner의 대안교육 운동이라든가 생태코뮌 운동의 영역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작품의 제목은 명실 공히 “유토피아로부터의 소식”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제목은 자구적으로는 “아무도 없는 ..

35 근대영문헌 2023.04.23

(명시 소개) 전홍준의 "좀" - 저항의 시정신

좀 전홍준 수평선을 바라보며 꿈을 키우던 시절이 있었다 철벅거리며 살아서 어느덧, 불혹 밴댕이 소갈머리 같은 교활한 좀이 되어 세상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살아가는 지금도 어떤 꿈이 있을까 돌아보면 개기름 자르르한 허리와 황금으로 걸신들린 해골박 불어터진 국수가락처럼 질척거리는 인생이 피래미새끼 한 마리 살지못하는 탁한 연못으로 누워있다 남에겐 날을 세우고 내 허물엔 관대하여 동무 하나 없는 적막한 처소에서 석쇠에 나를 굽고 있는가. 凸: 오늘은 전홍준 시인의 "좀"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나는 노새처럼 늙어간다"에 실려 있습니다. 凹: 왜 하필이면 이 작품을 선택했는지요? 凸: 여러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전홍준의 디스토피아의 역설적 시정신과 관련됩니다. 凹: 어쩌면 작품 "좀"은 시대와 ..

19 한국 문학 2023.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