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치 25

서로박: 마르크스의 독일 이데올로기

카를 마르크스 (1818 - 1883)의 "독일 이데올로기 (Die deutsche Ideologie)"는 다음과 같은 부제를 달고 있다. “포이어바흐, 바우어 그리고 슈티르너 등으로 대변되는 최근 독일 철학 내지 여러 다른 예언자들의 사상에 담긴 독일 사회주의 등에 대한 비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철학적 논저, "독일 이데올로기"는 1845/ 46년에 탄생하였다. 그러나 이 작품은 1932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결된 책으로 간행되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공산주의자 동맹의 역사에 관하여 (Zur Geschichte des Bundes der Kommunisten)」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즉 그는 이미 1844년 여름에 마르크스와 만나, 모든 이론적 영역에서 의견 일치를 보았다는 것이다. 그..

23 철학 이론 2021.10.13

서로박: 헹크만 교수와 참고문헌

1. 뮌헨 대학교 철학과 교수 가운데 볼프하르트 헹크만이라는 분이 있었다. 80년대 초에 나는 부전공의 학점 취득을 위해서 헤겔과 루카치의 강좌를 수강했는데, 이를 계기로 그분을 알게 되었다. 깡마른 얼굴에 약 2미터 장신인 그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모습은 당시에 무척 기이하게 보였다. 안경을 낀 진지한 면모가 아니었더라면, 그는 추측컨대 틀림없이 돈키호테라는 별명을 얻었을 것이다. 사적으로 담소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그는 자전거를 애용하는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거주지가 뮌헨 동쪽 지역인 이스마닝이라서 자동차로 출퇴근하는 게 너무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하기야 뮌헨 시내는 자주 도로가 막히고, 주차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영국 공원을 가로질러 자전거를 타면, 기분이 상쾌해진다는 것을 나중에 나..

2 나의 잡글 2021.09.01

블로흐: 나의 청년 시절의 친구, 루카치

여기서 "나"는 장 미셀 팔미어를 가리키고. "너"는 에른스트 블로흐를 가리킨다. 이하의 인터뷰는 1976년에 행해졌는데, 다음의 문헌에 실려 있다. Arno Münster (hrsg.): Tagträume vom aufrechten Gang, Suhrkamp: Frankfurt a. M. 1977. S. 102 - 106. ........................... 나: 교수님은 어떤 외적 조건에서 루카치를 알게 되었으며, 어떠한 계기로 우정을 쌓게 되었는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너: 언젠가 짐멜은 다음과 같이 말했지요, 누군가가 세미나에 참석하고 싶은 헝가리 출신의 철학자를 소개해주었다고 했습니다. 그가 바로 죄르지 루카치라고 했어요, 당시에 나는 그를 알지 못했습니다. 짐멜도 그를 잘 몰랐지요..

30 bloch 대화 2021.08.04

블로흐: 루카치와의 표현주의 논쟁

여기서 "나"는 장 미셀 팔미어를 가리키고. "너"는 에른스트 블로흐를 가리킨다. 이하의 인터뷰는 1976년에 행해졌는데, 다음의 문헌에 실려 있다. Arno Münster (hrsg.): Tagträume vom aufrechten Gang, Suhrkamp: Frankfurt a. M. 1977. S. 107 - 110. ................................. 나: 당신이 젊었을 때 독일에서 주도적이며 가장 중요한 예술 사조는 표현주의였습니다. 물론 시대적 간격이 존재하지만 말입니다. 루카치와는 반대로 당신은 표현주의에서 상당한 영향을 받았지요? 너: 네, 표현주의는 나에게 근본적인 중요성을 안겨주었습니다. 루카치에게 그것은 경멸의 대상이었지만 말입니다. 그는 신고전주의에 경도하..

30 bloch 대화 2021.07.18

마르크스, 뮌처, 혹은 악마의 궁둥이 서문

“사고는 한계를 뛰어넘는 일을 일컫는다.” (Ernst Bloch) “블로흐를 비판하지 않은 채, 그의 문장을 인용하는 것은 하나의 배반이다.” (편역자) "희망은 확신이 아니다. 희망은 위험에 둘러싸여 있다. 그것은 위험에 대한 의식이다.” (Ernst Bloch) 1. 친애하는 B, 블로흐 읽기를 연속으로 간행하겠다고 호언장담했으나, 이후의 진행은 그다지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유토피아의 역사를 역사적 비판적 관점에서 기술하려는 의도는 세부 사항에 있어서 여러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유토피아의 연구에서 동양의 영역을 제외했음에도, 논의에 대한 고증 작업은 여간 만만치 않았습니다. 자고로 학자는 -소설가와는 달리- 자발적 착상만으로 펜이 굴러 가는대로 글을 쓸 수 없으며, 사고가 하나의 결론에..

2 나의 잡글 2021.05.08

서로박: 바이스의 저항의 미학 (1)

저항의 미학 한국어 판은 2016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3권으로 간행되었습니다. 제 1권은 탁선미 교수에 의해, 제 2권은 남덕현 박사에 의해, 제 3권은 홍승용 교수에 의해 번역되었습니다. ............................. 친애하는 C, 유대인 출신의 작가 페터 바이스 (Peter Weiss, 1916 - 1982)는 동독의 하이너 뮐러와 함께 가장 위대한 20세기 극작가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서독 출신의 극작가 가운데 바이스만큼 완강하고도 격렬하게 구서독의 보수성을 비판하고, 무디어져 가는 다원주의 사회의 체제 옹호적 경향에 메스를 가한 작가도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페터 바이스의 작품이 잊혀진다는 것은 무척 안타깝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3권으로 이루어..

44 20후독문헌 2021.02.05

서로박: 프리츠 루돌프 프리스의 '오블라두로 향하는 길'

친애하는 F, 오늘은 프리츠 루돌프 프리스 (Fritz Rudolf Fries, 1936 - )의 문학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프리스는 1936년에 에스파냐의 빌바오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독일 군인으로 참전했다가, 에스파냐의 파르티잔에 체포되어 총살당했습니다. 1942년 가족들은 라이프치히로 이주하여 그곳에 정착하였습니다. 그의 이력은 “에스파냐라는 전체주의 국가에서 동독이라는 전체주의 국가로 이주한 삶”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프리스의 뇌리에는 유년의 참혹한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즉 40년대 초 연합군에 의해서 처참하게 폭격당한 라이프치히가 바로 그 상흔이었습니다. 프리스는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영문학 그리고 에스파냐 문학을 전공하였..

45 동독문학 2020.11.27

서로박: 입센의 페르귄트 (2)

7. 제 4막, 페르 귄트의 방랑, 사악한 장사꾼으로 살아가는 주인공: 오랜 세월이 지나갑니다. 제 4막의 장면은 모로코 해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온갖 나라의 노예들이 매매되고 있습니다. 코통 선장, 바용 씨, 그리고 에버코프 씨 등 유럽의 각국 출신의 사람들이 노예 시장에서 물건을 흥정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제각기 유럽의 나라를 대표하는 자들로서 제3세계의 사람들을 착취하고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에서 가장 악랄한 사업을 벌인 자가 바로 페르 귄트였습니다. 말하자면 페르 귄트는 인신매매를 통해서 거대한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세계 시민으로 살아가는 주인공은 돈의 힘을 빌어서, 동방의 모든 국가를 다스리는 황제가 되려 합니다. 페르 귄트의 자아는 환상이 요구하는 모든 갈망과 욕정 그리고 탐욕의..

39 북구문헌 2019.11.04

마르크스, 뮌처, 혹은 악마의 궁둥이 서문

“사고는 한계를 뛰어넘는 일을 일컫는다.” (Ernst Bloch) “블로흐를 비판하지 않은 채, 그의 문장을 인용하는 것은 하나의 배반이다.” (필자) “희망은 확신이 아니다. 희망은 위험에 둘러싸여 있다. 그것은 위험에 대한 의식이다.” (Ernst Bloch) 1. 친애하는 B, 블로흐 읽기를 연속으로 간행하겠다고 호언장담했으나, 이후의 진행은 그다지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유토피아의 역사를 역사적 비판적 관점에서 기술하려는 의도는 세부 사항에 있어서 여러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유토피아의 연구에서 동양의 영역을 제외했음에도, 논의에 대한 고증 작업은 여간 만만치 않았습니다. 자고로 학자는 -소설가와는 달리- 자발적 착상만으로 펜이 굴러 가는대로 글을 쓸 수 없으며, 사고가 하나의 결론에 ..

27 Bloch 저술 2019.09.08

서로박: 헤겔에 관한 루카치와 블로흐의 입장 차이

1. 소련의 안드레이 츠다노프는 1947년 “헤겔의 문제는 이미 오래 전에 해결되었다”고 천명한 바 있다. 왜냐하면 헤겔은 모든 통상적인 학문 내용들을 마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같은 자신의 카테고리 속으로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에 반해서 루카치와 블로흐는 헤겔의 사상을 추적하였다. 이들의 견해에 의하면 헤겔의 사상 속에는 긍정적인 경향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다른 관점에서 이를 피력했다. 2. 루카치는 그의 연구서 "젊은 헤겔 (Der junge Hegel)"에서 헤겔의 정확한 역사적 분석을 추적한다. 말하자면 그는 처음부터 마르크스의 관점에서 헤겔을 고찰하고 해석하려고 의도한다. 루카치는 다음의 사항을 무엇보다도 염두에 두고 있다. 즉 헤겔이 살았던 시기에는 ..

23 철학 이론 2019.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