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철학 이론

서로박: 마르크스의 독일 이데올로기

필자 (匹子) 2021. 10. 13. 11:17

카를 마르크스 (1818 - 1883)의 "독일 이데올로기 (Die deutsche Ideologie)"는 다음과 같은 부제를 달고 있다. “포이어바흐, 바우어 그리고 슈티르너 등으로 대변되는 최근 독일 철학 내지 여러 다른 예언자들의 사상에 담긴 독일 사회주의 등에 대한 비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철학적 논저, "독일 이데올로기"는 1845/ 46년에 탄생하였다. 그러나 이 작품은 1932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결된 책으로 간행되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공산주의자 동맹의 역사에 관하여 (Zur Geschichte des Bundes der Kommunisten)」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즉 그는 이미 1844년 여름에 마르크스와 만나, 모든 이론적 영역에서 의견 일치를 보았다는 것이다. 그들이 1845년 초 브뤼셀에서 다시 만났을 때, 마르크스는 이미 자신의 역사 이론에 대한 초안을 작성해 두었고, 두 사람은 이를 개별적 항목으로 발전시키려고 시도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르크스가 나중에 술회한 대로- 독일 철학에 나타난 이데올로기적인 내용을 함께 비판하고, 과거의 제반 철학을 청산하고자 했다. 이러한 시도는 헤겔 이후의 철학 비판이라는 형식으로써 개진되었다.

 

당시의 어지러운 정치적 상황으로 인하여 책은 즉시 출판될 수 없었다. "독일 이데올로기"는 수십 년 후, 1932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간행되었다. 20세기에 이르러서야 헤겔을 충실히 공부한 마르크스주의 연구가들 (예컨대 루카치)은 "독일 이데올로기"에 묘사된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새로운 해석이 정당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아가 "파리 수고 (Pariser Manuskripte)" 역시 같은 맥락에서 당시에 간행된 바 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시니컬하고 풍자적인 어조로 젊은 헤겔주의자들을 신랄하게 비난하였다. 즉 젊은 헤겔주의자들은 사고의 영역 속의 투쟁에 그냥 안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사고는 절대 정신에 관한 헤겔의 시스템 그리고 종교 비판에 국한되어 있을 뿐이라고 한다. 젊은 헤겔주의자들의 질문 뿐 아니라, 그들의 대답 속에는 어떤 불가해한 신비적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 논쟁 속에는 결코 철학의 토대가 되는 현실적인 토대 내지는 터전이 결코 생략될 수 없다는 게 마르크스의 지론이다.

 

 

대학생 시절의 마르크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데올로기를 “의식의 자기 독자성 (Selbstverständigung)”으로 이해한다. 인간의 사고 그리고 물질적 실제 상황, 즉 구체적인 사회적 실존 사이에는 어떤 관련성이 도사리고 있는데, 이러한 관련성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젊은 헤겔주의자들이 지니고 있는 “철학적 환상”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 이러한 환상은 독일에서 횡행하고 있는 제반 현실적 조건과 밀접하게 결부되는 것이다. 독일의 실제 상황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는데, 이를 간접적으로 뒷받침해주는 게 바로 상기한 철학적 환상이라고 한다.

 

대신에 두 사람은 그들 고유의 철학을 내세운다. 이는 지금까지 사람들이 오로지 상상 속에서 투영할 수 있는 현실적 전제 조건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증명해내려는 것은 다음의 사항이다. 즉 인간의 의식은 사회적 노동 그리고 개인적 행위 등과 같은 조직체에 의해서 변증법적으로 중개되어 있다. 어쩌면 이데올로기는 물질적 삶의 구체적 상황에 의해서 비롯되어 형성된다.

 

노동의 분화는 인간의 노동을 소외시킨다. 그것은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상품들을 물화시키고, 인간으로부터 일탈시키도록 작용한다. 그것들은 사물 (상품, 제도, 사고 등)로서 불변한 채로 인간 위에 군림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사유 재산과 함께 주어진 인간의 인간에 대한 지배, 즉 계급 사회가 군림하고 있다. 역사의 이러한 “실질적 핵심”이 파악되지 않는 한, 은폐된 사회적 실제 상황은 필연적으로 왜곡된 의식을 낳는다. 이러한 의식이 바로 이데올로기의 모태가 된다.

 

상기한 왜곡된 의식에서 파생되는 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하면 도덕이요, 종교이며 형이상학이라고 한다. 경제적 토대를 알려고 애쓰면,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노동의 분화 그리고 현대의 산업 사회에 도사리는 노동의 소외된 영향 등을 예리하게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사람들은 분화된 노동의 근본적인 뿌리를 제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는 공산주의 사회를 창출함으로써 가능하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행위의 어떤 독자적인 서클을 지니고, (...) 사회가 보편적인 생산을 규정하며, 오늘에는 이 일, 내일에는 저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은 그러한 사회에서는 아침에 사냥하고, 오후에 고기 잡으며, 저녁에 가축을 돌보고, 식사 후에는 (내가 바라는 대로) 자유롭게 토론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이상적 그림은 나중에 엥겔스에 의해서 많은 변조된 상으로 전파되었다. 이에 비하면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분화된 노동을 완전히 파기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암시한 바 있다. 여기서 이데올로기의 개념이 나중에 (마르크스에 의해 "정치 경제학 비판"에서 제기된 (정신적 상부 구조가 토대에 전적으로 종속되는) 공식과 일치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은 아직도 논란의 여지를 남긴다. 물론 마르크스는 스스로 토대와 상부 구조와의 관계를 변증법을 통해서 고찰하였다. 나아가 그는 엥겔스에게 편지를 보내어, 토대와 상부 구조를 단순한 구도로 파악하지 말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러한 이데올로기 개념은 레닌의 이론에 관한 견해에 이르기까지 불분명하게 발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