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의 미학 한국어 판은 2016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3권으로 간행되었습니다. 제 1권은 탁선미 교수에 의해, 제 2권은 남덕현 박사에 의해, 제 3권은 홍승용 교수에 의해 번역되었습니다.
.............................
친애하는 C, 유대인 출신의 작가 페터 바이스 (Peter Weiss, 1916 - 1982)는 동독의 하이너 뮐러와 함께 가장 위대한 20세기 극작가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서독 출신의 극작가 가운데 바이스만큼 완강하고도 격렬하게 구서독의 보수성을 비판하고, 무디어져 가는 다원주의 사회의 체제 옹호적 경향에 메스를 가한 작가도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페터 바이스의 작품이 잊혀진다는 것은 무척 안타깝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3권으로 이루어져 있는 대표적 소설, “저항의 미학 (Die Ästhetik des Widerstands)”을 살펴봄으로써, 바이스 문학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가치를 되짚어보려는 것도 의미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친애하는 C, 한 작가가 10년의 세월을 집필에 몰두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짐작할 수 있겠는지요? 10년 동안 한 가지 일에 몰두한다는 것 - 그것은 웬만한 끈기가 없으면 해내지 못합니다. 게다가 인간 삶은 한 가지 일에 매진할 수 없도록 우리를 방해하곤 하지요. 가령 밥벌이 작업이 그것입니다. 가령 10년 동안 칩거하며 소설을 쓰고 있으면, 누가 우리에게 삼시 세끼를 대접할까요? 소설가든 학자든 간에 우리는 직업상의 이유로 한 가지 일에 매진하기 몹시 힘듭니다.
페터 바이스의 소설 “저항의 미학”은 17972년에 씌어져서 그로부터 10년 후인 1981년에 탈고 되었습니다. 그 후 바이스는 이 작품을 자신의 대표작이라고 선언하면서, 오랫동안 작품을 더 이상 펜을 집어 들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성취의 순간에서 비롯하는 아쉬움 내지 허망함 때문이었는지 모릅니다. 언젠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말테 R. 브리게의 수기”를 완성한 다음에 “이제 죽어도 좋다”고 말한 것도 이러한 아쉬움 그리고 허망함과 관련되는지 모르지요.
작품 “저항의 미학”은 전통적인 소설 장르의 형식을 추종하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작품을 소설이라고 명명하는 대신에 모든 장르를 총괄할 수 있는 개념, “텍스트”라고 일컫는 게 타당할 것 같습니다. 텍스트는 1918년부터 1945년까지 이어온 독일 노동 운동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일직선상으로 알기 쉽게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연대기적 서술을 접할 수 없으며, 한 가지 내용이 에세이, 기록문서 그리고 가상적인 텍스트 등으로 중첩되어 있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등장인물은 실제로 살았던 사람들이며, 묘사되는 사건 역시 역사적으로 사실로 확증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만약 “고통과 궁핍함을 생생하게 느끼는 노동자의 시각”을 배제했더라면, 모든 사건들은 참된 역사로 남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바이스는 여러 가지 중요한 역사적 사건 등을 어떤 놀라움을 불러일으키는 단편적인 여러 장면으로 짜 맞추고 있습니다. 이 장면들은 주인공 “나”와 타자 사이의 대화 그리고 주인공의 성찰 등에 의해서 서술되고 있지요. 화자인 “나”의 이야기는 작가의 과거 삶과 거의 유사합니다. 가령 대부호의 아들로 태어나, 무산계급으로 전락하는 과정은 페터 바이스의 이력과 거의 같습니다. 페터 바이스는 “양친과의 작별 (Abschied von den Eltern)” (1961), “도피점 (Fluchtpunkt)” (1962) 등의 소설을 발표한 뒤 주로 극작품을 발표했지만, “저항의 미학”으로 다시 산문 작가로 복귀한 셈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발전 과정은 개인 심리학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해명될 수 있습니다. 바이스는 자신이 어떻게 맑시즘에 경도하게 되었는가? 하는 사항을 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C, 작가는 주인공이 어떻게 정치적 참여 작가로 성장하였는가를 보여줍니다. 이는 일견 교양 소설의 특징을 지닙니다만, 서술의 줄거리는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의 기간 동안의 독일 좌파 지식인들의 투쟁 과정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서 주인공은 마르크스주의 예술 이론의 전통 속에서 정치적으로 창조해낸 미학을 체계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로써 미학은 문화의 발전 과정에 대한 인식의 도구로부터 현실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도구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이제 체계적으로 소설의 줄거리를 살펴보기로 합시다.
가령 주인공 “나”는 1917년 소련의 10월 혁명의 날에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사회민주당의 당원으로서 1919년 브레멘 노동자 폭동에 직접 참가하였습니다. 아버지가 개혁주의만을 표방하는 사민당에 집착하는 동안에, 아들은 독일 공산당에 아직 가입하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동정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독일 그리고 그 밖의 유럽 나라에서는 좌파 지식인들이 서로 두 파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바이스는 좌파의 균열이 결국 독일 혁명의 실패를 야기했다고 은근히 지적합니다.)
친애하는 C, 언젠가 홍세화씨는 다음과 같이 인용한 바 있지요? 우파는 부패로 망하고, 좌파는 견해 차이로 망한다고 말입니다. 바이스 역시 1937년의 베를린, 에스파냐 내전의 장면, 파리의 망명 시절 그리고 스웨덴의 스톡홀름 등의 삶을 차례로 서술하면서, 좌파 지식인들의 의견 대립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사회민주주의자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은 함께 일하면서도 경쟁의식을 느꼈고, 정책 결정에 있어서 언제나 제각기 다른 견해를 표방했던 것입니다.
“저항의 미학” 제 1권은 1937년 9월 22일의 시점부터 시작됩니다. 화자는 에스파냐 내전에 참전하기 위해서 떠나려고 합니다. “나”는 거기서 국제 적군단과 합류하여 프랑코 독재에 대항하여 싸우려고 결심한 터였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친구 하일만, 코피 등과 같은 친구들은 지하에서 나치에 대항해서 싸우려고 독일에 남습니다. “나”는 에스파냐에 도착하여 막스 호단 (Max Hodann)이 이끄는 야전 병원에서 일합니다. 그곳 사민당 사람들은 자생적으로 활동하는 공산당 사람들과 갈등을 일으킵니다. 또한 화자는 소련에서의 스탈린 숙청 사건을 접합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44 20후독문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로박: 그라스의 '넙치' (0) | 2021.02.06 |
---|---|
서로박: 바이스의 저항의 미학 (2) (0) | 2021.02.05 |
서로박: 그라스의 "양철북" (2) (0) | 2021.01.25 |
서로박: 그라스의 "양철북" (1) (0) | 2021.01.25 |
서로박: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 (0) | 2020.1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