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동구러문헌

서로박: (1)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 강"

필자 (匹子) 2023. 4. 30. 10:32

망중한이면 나는 으레 비에니아프스키 Wieniawski의 「스케르초 타란텔라 Scherzo Tarantella」를 듣습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연주가 가장 멋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곡을 들으면, 어째서 광대무변한 우크라이나가 생각나는 것일까요? 물론 나는 그곳으로 가보지는 못했지만, 수많은 사진과 동영상들을 감상하곤 하였습니다. 돈 강은 우크라이나의 젖줄로서 풀과 밀이 자라는 곡창 지대 사이로 1870 킬로미터를 유유히 지나치면서, 여행객들에게 하나의 장관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돈 강은 우크라이나 북부에서 남쪽 지역을 지나치다가 흑해로 흘러갑니다. 카자흐 인민들은 돈 강의 강물을 “조상들의 눈물”이라고 믿었습니다. 기마 민족인 그들은 오랜 세월 동안 타 민족들과 전쟁을 치르느라 수많은 피를 흘려야 했지요. 지금도 흑해 근처에 살고 있는 아이들은 탁류에 몸을 담그며, 마치 자신이 희고 작은 물고기라도 되는 듯이 조상의 눈물바다에서 아무 것도 모르는 채 물장구치며 놀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A., 오늘은 소련 문학이 자랑하는 명작, 미하일 숄로호프 (Michail A. Solochov, 1905 - 1984)의 『고요한 돈 강 Tichij Don』을 언급할까 합니다. 이 작품은 1928년에서 1940년에 걸쳐 발표되었는데, 약 2400 페이지에 해당하는 방대한 작품인데, 1954년에 개작되었다고 합니다. 1965년에 숄로호프는 『고요한 돈 강』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소설은 처음으로 급변하는 소련 내의 쓰라린 계급투쟁의 역사를 서사의 형태로써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1914년에 발발한 제 1차 세계대전, 전쟁의 와중에서 이룩된 소련의 혁명, 그리고 백군과 적군 사이의 피비린내 나는 내전 그리고 볼셰비키의 권력 장악 등으로 이어지는 소련 혁명의 급변하던 역사를 생각해 보십시오. 작가는 카자흐 인민들 사이에서 나타난 계급적 문제를 통해서 전 러시아의 사회적 변화가 역사적으로 과연 정당한 것인가를 치밀하게 추적해 나갔습니다.

 

소설은 1912년에서 1922년 사이의 사건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소설의 배경은 1877년에서 이듬해에 이르기까지 전개된 러시아인들과 터키 사람들 사이의 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메레호프는 카자흐 인민들 가운데 중산층에 속하는 집안입니다. 전통을 준수하는 카자흐 인민들은 우크라이나 지방에서 농사를 지으며 집단적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왔습니다. 주인공 그레고리 메레호프는 아주 열정적이고,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다재다능한 남자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영특하고 고운 심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레고리는 이웃의 유부녀인 악시냐 아스타초바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에게는 조용하고 순결한 아내 나탈리아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악시냐에게 매혹당합니다. 그미는 마치 돈 강과 같이 태양처럼 강렬한 미인이었습니다. 악시냐의 남편은 멀리 떠나고 없었습니다. 악시냐 역시 그레고리를 무척 좋아합니다. 두 사람은 나탈리아 몰래 만나서 살을 섞습니다. 그레고리는 한편으로는 아내를 생각하면 죄의식을 느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사랑의 감정을 결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누가 말했던가요,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나탈리아는 남편의 외도로 인하여 고통을 느끼다가 음독자살을 기도합니다. 그러나 나탈리아는 죽지 않고 살아납니다. 악시냐는 몇 달 후에 딸아이를 출산합니다.

 

그레고리는 카자흐 사람들을 위하여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합니다. 전선에서 수많은 무고한 전사들이 죽어가는 것을 목격합니다. 1917년에 소련 혁명이 발발합니다. 혁명의 열기는 모스크바에서 멀리 떨어진 카자흐 사람들에게 전해집니다. 그레고리는 카자흐 인민들의 역사 그리고 주위의 정황을 고려할 때 백군에 가담하는 게 정의롭다고 판단합니다. 말하자면 혁명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볼셰비키 공산주의의 혁명은 정의롭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공산주의의 이상은 주인공에 의하면 하나의 협동심으로서 카자흐 인민들의 삶 속에 이미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볼셰비키에 대한 주인공의 어정쩡한 태도는 결국 비극적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레고리는 처음에는 차르 정규군에 대항해서 싸우는 카자흐 군대에 가담합니다. 카자흐 군대를 지휘하던 장군은 공산주의자 포델코프 그리고 크리보슬리코프였습니다. 주인공은 장교의 신분으로 끔찍한 전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악전고투하다가 부상 당하고 자신의 집으로 되돌아옵니다. 이때 그레고리는 “카자흐 지방이 소련 혁명국가로부터 분리하여 독립을 이루어야 한다.”는 분리주의자 이즈바린의 주장에 동조합니다. 이즈바린의 태도는 특히 백군들로부터 거대한 지지를 받게 됩니다. 게다가 그레고리의 장인이 적군에 대항하여 싸우다가 전사한 사실이 주인공으로 하여금 백군을 지지하게 만듭니다.

 

친애하는 A, 혹시 그레고리의 태도가 우유부단한 지바고 박사의 그것과 유사하다고 여기시는지요? 그레고리는 지바고 박사처럼 우유부단하고 정치에 무관심한 사내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레고리는 열정적이고 강인하게 행동하는 인간입니다. 문제는 주인공이 카자흐 지방의 전통적 삶의 방식을 고수하다가, 판단의 착오를 일으킨다는 사실입니다. 예컨대 그는 언제나 “소비에트 정권에는 찬성하지만, 공산주의에는 찬성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의 인민에 대해서는 커다란 애정을 지니고 있지만, 계급 문제에 대해서는 불분명한 태도를 취합니다. 어쩌면 그레고리가 겪어야 했던 비극은 카자흐 지방 사람들이 처한 처지와 일맥상통하고 있습니다. 카자흐 사람들은 스스로 러시아 인민들과는 다른 민족이라고 여겼습니다.

 

러시아 왕국은 지금까지 카자흐 자치 정부를 허락함으로써, 반정부 세력을 탄압해 왔습니다. 물론 카자흐 지방 내부에도 갈등이 존재한 것은 사실입니다. 가령 돈 강 상류에는 가난한 농부들이 살았고, 돈 강 하류에는 부유한 농부들이 거주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고찰할 때 카자흐 인민들은 외부로부터 위협을 받았을 때 적군이든 백군이든 구분하지 않고, 외부의 침입자들과 싸웠습니다. 그레고리의 말과 행동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가령 그는 처음에 적군에 대항하여 싸우다가 수많은 사람들을 살해합니다. 그는 백군의 대장의 위선적 태도와 거만함을 대했을 때 백군을 위해서 싸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고 회의하게 됩니다. 적 그리고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흑사병 등에 대항하며 싸우는 일이 모두 부질없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