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이탈스파냐

서로박: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권태'

필자 (匹子) 2023. 4. 27. 11:06

 

 

이탈리아의 작가, 알베르토 모라비아 (A. Moravia, 1907 - 1990)의 소설, 『권태 La Noia』는 1960년에 발표되었고, 전 세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알베르토 모라비아는 자신의 소설을 “예술적 통속소설”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모라비아에 의하면 훌륭한 소설이란 단순한 노동자에게 잘 읽히고, 지식인 계층에게 어떤 감추어진 의미를 전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모라비아는 노동자들에게 음탕하고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반면에, 식자층에게 바람직한 세계관 내지 전망을 상실한 현대인들의 무기력함을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주인공, “나”는 30세 중반의 “디노”라는 화가입니다. 그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확실하게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로 인하여 주인공의 마음속에서 어떤 불쾌한 감정이 솟아오르는데, 이는 가끔 권태로움으로 표출됩니다. 디노는 추상화를 그리지만, 권태로 인하여 자신의 예술적 창조력이 감퇴되고 있음을 절감합니다. 디노는 근본적으로 성격상의 하자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자는 원래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소설은 디노의 아버지에 관해서 아무 것도 말하지 않습니다.) 디노의 어머니는 강인하고 행동적인 여성으로서, 돈에 집착하고, 가정에서 모든 것을 지배하려는 경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미는 아들이 자신에게 종속된 “무능한 아들”이라고 여깁니다. 실제로 디노는 심정적으로는 어머니의 그늘을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어머니의 품을 떠날 수 없습니다.

 

 

 

어느 날 디노는 돈 때문에 다시 어머니를 찾아가려고 생각합니다. 이때 그는 “체칠리아”라는 처녀를 알게 되고, 사랑의 감정 속에 깊이 빠져듭니다. 디노는 나이든 동료 화가를 알고 있었는데, 동료 화가는 젊은 여자들에게 병적으로 집착하는 노인이었습니다. 디노는 동료 화가의 집에서 체칠리아를 만나고, 처음 보는 순간 매우 혼란스러워 합니다. 체칠리아는 불과 17세의 모델이었는데, 동료 화가의 애인이자 그의 모델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동료 화가는 체칠리아와 정을 통하다가, 심장마비로 복상사하고 맙니다. 디노는 체칠리아를 사랑하나, 뇌리에 자주 떠오르는 동료 화가의 그림자에 괴로워합니다. 그는 동료 화가가 남긴 체칠리아의 초상화를 바라봅니다. 초상화는 예술적으로 실패한 작품처럼 보입니다.

 

 

 

디노는 때때로 체칠리아와 이미 죽은 동료 사이의 관계에 대해 묘한 질투심을 느낍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의 비밀스러운 관계는 디노에게는 오리무중과 같습니다. 체칠리아는 가난한 가정의 출신으로서 거의 근접 불가능한 존재입니다. 그렇지만 그미는 디노와 육체적 사랑을 마다하는 것은 아닙니다. 체칠리아는 충동적이며, 거의 기계처럼 움직이고, 부끄러움 없이 감각적 욕정을 드러냅니다. 디노는 마치 자신의 선임자처럼 자신의 몸이 관능의 늪에 빠져 들어가는 것을 느낍니다. 체칠리아는 가끔 다른 남자들을 만나려고 외출하곤 합니다. 디노는 끓어오르는 질투심을 억누르고 애쓰지만, 다른 방도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그미를 자신의 영향 하에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다하지만, 디노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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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칠리아는 말이 없습니다. 일인칭 소설 속에서 디노의 자의식은 분명히 서술되지만, 체칠리아의 내면은 비밀처럼 은폐되어 있습니다. 그미는 디노에게서 약간의 돈을 건네받지만, 거의 입을 열지 않습니다. (여기서 디노와 체칠리아의 인간관계는 백일하에 드러납니다. 체칠리아로서는 디노는 한 명의 “단골 고객”에 불과할 뿐입니다.) 마침내 디노는 그미에게 “결혼해서 함께 살자.”고 제안합니다. 부자 출신의 화가와 결혼한다는 것은 체칠리아의 입장에서 고찰할 때 그 자체 신분의 상승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그미는 디노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주인공은 이에 대해 깊이 절망합니다. 예술 창조에 대한 끝없는 노력 역시 결실을 맺지 못합니다. 결국 디노는 자살을 시도하지만, 미수로 그치고 맙니다.

 

 

 

마지막 대목에서 주인공은 무언가를 깨닫습니다. 오로지 타인을 소유해야 한다는 의식 자체가 잘못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임에 대한 집착은 -그 대상이 어머니든, 체칠리아든 간에- 자신으로 하여금 올바르고 분명하게 행동하지 못하도록 가로막습니다. 인간은 누구든 간에 소유물이 아닙니다. 인간은 돈으로도 사랑으로도 타인에게 팔릴 수 없습니다. 시민 사회에서의 인간관계는 무엇보다도 돈에 의해 유지되는데,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디노의 이러한 깨달음이 자신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끼칠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소설은 독자에게 아무런 결론을 제시하지 못하고 개방된 여운을 남길 뿐입니다.

 

 

 

소설 『권태』의 주제는 -수없이 등장하는 노골적인 성 묘사에도 불구하고- 시민 사회의 시장 법칙과 예술적 작업의 위화감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화가 디노는 예술적 공간과 일상 삶 의 공간사이에서 커다란 갈등을 인지합니다. 현실 영역과 예술 영역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사람은 오로지 젊은 모델, 체칠리아입니다. 그미가 단순한 인민 가정의 출신이라는 사실 그리고 디노가 동료 화가의 신사실주의적 그림을 신랄하게 비판한다는 사실 등은 다음의 사항을 말해줍니다. 즉 현대의 지식인은 인습적으로 내려오는 시민적 보수주의에 더 이상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사항 말입니다.

 

 

 

다음을 클릭하면 영화의 한 장면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OJKIff9d0l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