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알림 (명저)

(명저 소개) 김종갑 교수의 성인책

필자 (匹子) 2023. 4. 28. 21:37

김종갑 교수의 성과 인간에 관한 책은 2014년에 간행되었는데, 필자의 과문함 때문에 이제야 이 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부제는 "문학과 예술로 읽는 섹슈얼리티의 역사"입니다. 책은 총 8장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첫 번째 장과 마지막 장은 서문과 결어와 같습니다. 책은 저자의 열린 사고를 명징하게 드러내기보다는 예문과 사실에 근거하여 은근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독자에게 무언가를 강권하는 특성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행과 행 사이를 예리하게 읽어나가야 저자의 놀라운 시각을 하나씩 찾아낼 수 있습니다.

 

필자는 언젠가 문학사를 강의하면서, 서양의 문학사는 관습 도덕 그리고 법의 약화 과정이라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대를 논외로 한다면, 기독교가 도래한 다음의 역사는 근엄한 일부일처제의 약화과정의 역사로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김종갑 교수는 기독교 이데올로기와 사회적 관련성을 그다지 강하게 부각시키지 않고,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성과 사랑에 대한 인간과 사회의 관점을 연대기 순서대로 해명하고 있습니다. 1. 그리스 로마 시대, 2. 초기 기독교와 중세, 3. 르네상스시대, 14 - 16세기, 4. 계몽주의 시대 17 - 18세기, 5. 빅토리아 시대, 19세기 6. 성 해방 시대, 20세기 등의 순서대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수많은 여성 운동가들의 피맺힌 노력과 투쟁의 과정이 세부적으로 언급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성의 해방은 무작정 성행위를 즐길 수 있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성을 자기 의지에 의해서 조절하고 행할 수 있음을 뜻합니다. 물론 우리가 오늘날 포르노, 홍등가, 성폭력 그리고 성희롱 등의 이슈와 직면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성욕이 대부분 사람들에게 완전한 만족을 가져다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222쪽) 성에 있어서 완전한 충족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인간 동물은 그렇게 열광하고, 좌절하며 방황하고 무언가를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관해서 수많은 성 과학자들이 의견 일치를 보고 있습니다.

 

성은 김 교수의 견해에 의하면 옳고 그름이나, 선과 악의 차원이 아니라, 취향과 정체성의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224쪽) 사실 성이 취향의 문제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성을 오로지 취향과 정체성의 문제만으로 설정하게 되면, 이는 관용이 아니라, 때로는 냉담함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생활은 그야말로 사적인 삶으로 국한되고, 급기야 "장미"라는 성의 문제에 결착되어 있는 수많은 정치적 "가시"들이 저절로 떨어져나오게 됩니다.

 

사실 70억의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저자가 말한대로 작위적인 구분입니다. 또한 70억의 인간의 사랑의 패턴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로 만나서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사는 1부1처제만이 정상이고, 싱글, 동성애자 그리고 트랜스젠더 등의 삶이 비정상이라고 매도하는 것 자체가 전근대적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김 교수의 대부분의 주장은 그 자체 설득력을 지닙니다.

 

저자는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라", "제 3의 성을 인정하라", "여자들이여 즐겨라."하고 주장하는데 이 역시 부분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어떤 전제조건이 따라야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이러한 강령들을 실천할 수 있는 사회적 토대라는 전제조건을 가리킵니다. 가령 남한 사회의 관습, 도덕 그리고 법에는 특히 여성들에게 부여된 수많은 억압 기제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여성 차별과 여성에게 부자유를 강요한 사회적 제도들이 즐비합니다. 이러한 형국에서 사람들이 스스로 원할 경우 과연 어떠한 방법으로 사랑과 성을 마음껏 누릴 수 있을까요?

 

나아가 저자는 다음과 같은 물음에 관해서 자세한 언급을 생략하고 있습니다. 1. 어째서 오늘날 남한 사회에서 1부일처제를 당연시 여기는 강제적 성윤리가 정치적 문제와 결착되어 여성 차별을 양산시키는가? 2. 성 소수자는 어째서 여전히 비난과 경멸의 대상으로 취급당하며 살아가는가? 3. 홍등가를 들락거리면서 자신이 성인군자라고 여기며, 성 노동자를 천대하는 진상들의 시각의 근원은 무엇이며, 여성 혐오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인가?

 

예컨대 오늘날에도 남녀 차별 현상이 온존하는데, 이는 오늘날에서 여전히 가부장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성애를 비난하는 것은 오로지 일부일처제만을 정상으로 생각하고 그 외의 다른 사랑의 패턴을 용인하지 않으려는 이조시대의 통념과 관련됩니다. 매매춘에 종사하는 여자를 추하고 경멸스럽게 여기는 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조신한 처녀, 현모양처의 상을 미덕으로 여기는 유교주의가 수많은 남정네들의 의식 속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이러한 문제의 근원을 파헤치는 일 그리고 성소수자들 그리고 성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서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공동으로 싸워나가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