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이탈스파냐

서로박: 돈키호테 다시 읽기 (1)

필자 (匹子) 2023. 4. 29. 10:04

1. 돈키호테 그리고 둘시네아: 세르반테스의 작품 『돈키호테』는 오늘날 세계 문학 가운데 가장 커다란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손꼽힙니다. 이는 오슬로에 있는 노벨 연구소가 현존하는 100명의 작가에게 보낸 앙케트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중심으로 주인공과 둘시네아 사이의 영혼의 관계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합니다. 둘시네아는 세르반테스의 작품에서 그렇게 많이 언급되지 않는 주변인물입니다.

 

그렇지만 둘시네아가 돈키호테의 삶과 사랑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생략될 수 없습니다. 나아가 그미는 주인공의 시대착오성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작품의 현실적 배경은 15세기 말로 추론되지만, 정작 주인공은 자신의 중세의 기사라고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일단 주인공과 그의 시대에 관해 언급한 다음에 우리가 다루려고 하는 핵심 테마를 천착하기로 하겠습니다.

 

2. 기사 소설 속에 빠져든 어느 귀족: 돈키호테는 남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던집니다. 그러나 언제나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하고, 일을 망치곤 합니다. 제 하나 몸 간수도 못하는데도, 그는 불쌍한 처녀들을 보호해 주겠다고 공언합니다. 언제나 타인의 마음속에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이 기사는 고독한 바보입니다. 그의 체격은 장대하나, 몹시 말랐습니다. 누렇게 찌든 얼굴, 광대뼈 등은 광기로 인하여 수척한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돈키호테를 착각에 사로잡히게 한 것은 여러 가지 기사소설이었습니다. 기사에 관한 책들은 대부분의 경우 아주 천박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에게 어떤 결코 천박하지 않은 고결한 임무를 부여했던 것입니다. 돈키호테의 뇌리 속에서 어떤 바보 같은 생각이 끓어올랐을 때, 책의 사소한 내용들은 어느새 연상 작용을 불러 일으켜, 스스로 점화되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책의 내용이 상상이 끝난 다음에도 돈키호테에게 계속 작용한다는 점입니다. 그의 내적 정서 속에는 지금까지 읽었던 모든 자질구레한 사건들이 영속적으로 이어지면서, 그의 현실 감각을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3. 편력기사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 싸우지는 않는다.: 가령 그는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서 스스로 금욕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돈키호테는 여러 기사들 가운데 아마디스의 슬픈 고독을 따르기로 작심합니다. 이런 식으로 귀족 출신인 주인공은 계속 과거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마침내 그는 기사들의 태도, 투쟁의 상, 사랑의 상, 충직한 상 그리고 사회 형태 등 모든 것은 자신이 현재 속하고 있는 시대에도 유효하다고 굳게 믿게 됩니다.

 

자칭 고결한 기사는 돈 한 푼 지니지 않은 채 어디론가 떠납니다. 그렇다고 돈키호테에게 돈이 없지는 않습니다. 산초 판사의 말에 의하면, 편력 기사가 어디서 돈을 지불하는 경우를 어느 책에서도 읽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현금 지불의 원칙”은 기사에게 전혀 해당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사들은 타인을 위해 봉사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불행하게도 돈키호테는 엄청난 착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즉 편력 기사의 생활 그리고 그의 이상은 사회의 모든 경제적 형태 속에서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4. 시대착오성에서 비롯하는 정신 착란: 어쩌면 이렇게 어리석을 수가 있을까요? 돈키호테는 한 번도 현실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합니다. 거세된 양떼는 군인들로 보이고, 구름은 적들이 도사리고 있는 성 (城)으로 비칩니다. 풍차의 날개는 험상궂은 거대한 인간으로 보이며, 반쯤 깨어진 이발사의 세숫대야가 햇빛에 비칠 때, 그것은 영웅의 투구로 보입니다. 기사가 갈망하는 꿈은 날개 달린 말, 날개 달린 사자로 가득 차 있습니다.

 

햇빛에 비쳐 불타는 듯이 보이는 바다, 그리고 누군가 헤엄치는 듯이 떠있는 섬들은 마치 수정으로 만들어진 왕궁과 같이 보입니다. 주인공의 이러한 착각은 단순히 사회적 시대착오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름대로의 고대적 갈망의 특성을 지닌 것으로서, 어떤 미래의 세계와 지속적으로 결부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돈키호테의 미래는 무엇보다도 고결하고, 아주 휘황찬란한 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마력적이고 유토피아적인 상상의 현실만이 중요하며, 주인공의 의식 속에서 유일하게 진리로 작용할 뿐입니다.

 

5. 돈키호테, 하녀를 동방의 공주로 착각하다.:우리의 일그러진 영웅”은 어느 날 아주 몹쓸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온 몸이 멍들고,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삭신이 너무나 쑤시기 때문에 꼼짝도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는 목로주점의 다락방으로 간신히 기어 올라갑니다. 이때 가축을 돌보는 하녀가 돈키호테가 누워 있는 방에 살며시 기어 들어옵니다. 그러나 그미는 돈키호테의 눈에는 하녀로 비치지 않습니다. 그미는 고결한 전투에 가담하여 싸운 위대한 기사를 위로하러 나타난 아름다운 공주였던 것입니다.

 

돈키호테는 손을 뻗어, 그미를 맞이합니다. 그미의 셔츠는 거친 포장용 천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으나, 가장 섬세하고 가장 부드러운 고급 아마 (亞麻)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미가 들고 있었던 유리 등불은 그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동방의 진주와 같은 찬란한 광채를 발하고 있습니다. 그미의 머리카락은 마치 말갈기처럼 뻣뻣했는데도, 그에게는 가장 세련된 아라비아 황금빛 머리카락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잠자지 못한 그미의 입에는 샐러드 냄새가 가득했는데도, 돈키호테는 이를 이국적인 향긋한 조미료 냄새로 받아들일 뿐이었지요.

 

6. 완전무결한 처녀 둘시네아: 인간 삶에서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자는 “사랑하는 임”일 것입니다. 가령 완전무결한 처녀로서 돈키호테의 뇌리에 존재하는 둘시네아는 주인공에게 엄청나게 강력한 영향력을 끼칩니다. 돈키호테는 그미를 직접 만나기를 갈망하지는 않습니다. 둘시네아와 조우하는 일은 한편으로는 진실로 바라는 꿈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엄청난 두려움과 환멸을 가져다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사들은 사랑하는 임에 대한 연애봉사를 실천하면서도, 사랑과 성에 대해서는 소극적 태도를 취합니다.

 

그러니까 기사들은 어떤 정복될 수 없는 처녀 외에는 어떠한 다른 여자를 완전한 여성이라고 칭송하지 않습니다. 문 앞에서의 이러한 기다림, 상상 속에서 완전무결한 미녀를 갈망하는 행위는 돈키호테에게 엄청난 위안으로 작용합니다. 왜냐하면 꿈속에서 그의 상상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돈키호테는 사랑하는 여성에 대한 편력기사들의 우상 숭배를 찬양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그러한 자세에 대해서 자부심을 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미인은 이러한 우상 숭배를 통하여 “거의 도달될 수 없는 고결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