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고대 문헌

서로박: (2)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

필자 (匹子) 2024. 11. 30. 11:35

구름은 (모든 것을 은폐하고, 뒤집으며, 참을 거짓으로 바꾸려는 이기주의자들의) 술수에 대한 객관적 상징물이다.,

 

(앞에서 계속됩니다.)

 

7. 참과 진리는 때로는 거짓과 궤변에 의해 거부당하기도 한다. 세 번째 막에서는 두 교사 사이의 엄청나게 폭력적이고 거친 논쟁이 벌어집니다. 두 명의 후보자는 파이디피데스의 능력과 관점을 설득하려고 노력합니다. "올바름을 옹호하는 자“는 자기 훈련을 위한 교육이라는 전통적인 이상을 강조합니다. 반면에 "거짓을 옹호하는 자”는 이른바 현대적 의미에서 궤변의 중요성 그리고 견강부회(牽強附会)의 사고방식을 내세웁니다. 거짓과 속임수를 통해서 즐거운 생활방식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종국에는 “올바름을 옹호하는 자”는 는 패배를 선언합니다. 말하자면 거짓을 옹호하는 자의 놀랍고도 교활한 말재간 덕분에 거짓과 속임수가 승리를 구가하게 된 것입니다. 이때 구름의 합창단은 스트렙시아데스가 이 결정을 후회할 것이라고 노래하면서, 그에게 다가오는 재난을 예고합니다.

 

제4막에서 그의 아들이 습득한 수사적, 변증법적 기술은 처음에는 아버지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는 파이디피데스가 모든 재판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설령 상대방이 "천 명의 증인"을 소집하더라도, 파이디피데스의 변론은 이를 무찌르리라는 것입니다. 변론에 동원되는 것은 솔론 이후에 제기된 법 개정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파이디피데스는 사실을 왜곡하기 위한 모든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거짓을 참으로, 참을 거짓으로 둔갑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마침내 그는 두 명의 채권자 파시아스 그리고 아미니아스에게 빌린 돈 그리고 여기서 발생한 이자를 돌려주지 않게 됩니다.

 

8. 아들에게 얻어맞은 아버지, 학교에 불을 지르다. 그러나 마지막 막에서 페이디피데스가 받은 가르침은 스트렙시아데스 자신에게 끔찍한 화로 되돌아옵니다. 파이디피데스가 아버지에게 몰매를 가한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는 아들을 사랑으로 보살폈습니다. 그러나 파이디피데스는 선과 악을 구분하고 정의롭게 살기는커녕, 자신의 아버지에게 주먹을 휘두른 것이었습니다. 스트렙시아데스로서는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제 그는 새로운 유행으로 드러난 교육이 자신의 아들을 어떠한 끔찍한 방향으로 이끌었는지를 깨닫습니다. 스트렙시아데스는 드디어 “구름”을 저주하게 됩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구름은 인간의 의식을 무지몽매하게 만들고 선과 악을 왜곡하는 변론술에 대한 객관적 사물입니다. 그것은 견강부회의 술수를 상징하지요. 마지막에 이르러 스트렙시아데스는 자신을 이 재난에 몰아넣은 곳이 바로 강습소라고 굳게 믿으면서. 그의 하인, 크산티아스와 함께 소크라테스의 “프론티스테리온”에 불을 지릅니다. 강습소는 순식간에 화염에 타오릅니다.

 

9. 세 가지 희극적 요소: 마지막으로 몇 가지 희극적인 요소를 언급하기로 하겠습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은 그 자체 관객을 미소짓게 만듭니다. 첫째로 스트렙시아데스는 "뒤틀린" 또는 "왜곡됨"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는 농부 출신이었지만, 높은 가문의 여식과 결혼함으로써, 경제적으로 힘든 처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들에게 얻어맞은 다음에 강습소에 불을 지르고 맙니다. 이러한 행동 자체가 “뒤틀린” 앙갚음으로 이해됩니다. 뒤틀린 앙갚음은 진리를 깨닫지 못한 채 드러내는 소시민적 보복입니다.

 

파이디피데스는 어원상 "검소한 말(馬)"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름은 아버지 선조들의 검소함 그리고 기사 작위에서 비롯된 어머니 선조들의 사치스러운 삶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로고이”라는 이름 자체가 우스꽝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로고라는 단어는 단어에서 연설, 아이디어와 마음, 심지어 행동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광범위한 의미를 포괄합니다. 이 장면에서 아리스토파네스는 당시 아테네 시민들의 두 가지 사고를 의인화하려고 했습니다. 그 하나는 고전 교육에 의존하는 올바름을 옹호하는 사고이며, 다른 하나는 궤변과 같은 현대적 사상에 의존하고 낡은 규범, 특히 순전히 신화적인 원칙을 강하게 의심하고 거부하는 시민들의 사고입니다.

 

10.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이 소크라테스 독배의 빌미로 작용하다: 기원전 399년에 소크라테스는 실제로 신을 모독하고, 젊은이들의 의식을 더럽혔다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후에 그는 독배를 들어야 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사망한 몇 년 후에 그의 제자,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습니다. 아리스토파네스가 극 작품에서 희화화한 소크라테스의 상이 그의 재판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작품의 내용이 결국 소크라테스에 대한 직접적인 탄핵으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물론 기원전 399년의 상황을 고려할 때 이러한 비난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담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이전의 시점, 즉 기원전 423년에는 아리스토파네스가 소크라테스를 노골적으로 비난하려고 의도한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정치적으로 보수주의를 표방하였는데, 특히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에게서 어떤 새로운 학문을 배우려는 알키비아데스를 몹시 싫어하였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서 인민 출신의 유일한 철학자였습니다. 당시 대부분 소피스트와 사상가들이 귀족 출신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소크라테스는 상류층에 의해서 공격당할 수 있는 핵심적 표적이었습니다. 아무런 배경이 없는, 평민 출신의 학자가 동료 엘리트에게 곡학아세(曲学阿世)하지 않고, “너의 무지를 알라!”고 외쳤는데, 이는 계층 차이가 엄격한 고대 사회에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무례한 행동으로 비쳤습니다.

 

11. 등장인물 소크라테스는 실제 소크라테스가 아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우리는 아리스토파네스의 소크라테스를 실제 소크라테스와 구분해야 합니다. 오히려 작품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는 엄밀히 말하자면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소크라테스 개인이 아니라, 아낙사고라스, 프로타고라스, 프로디코스 그리고 아폴로니아 출신의 디오게네스 등과 같은 철학자들의 사고를 대변하는 자라고 이해되어야 합니다. 어쩌면 작품에 등장하는 강습소를 이끄는 자는 소크라테스가 아니라, 피타고라스 학파를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강습소는 하나의 배타적 공동체이며, 폐쇄적인 구도, 학문적 비밀 추구 그리고 지도자 숭배 등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김민주: 268). 플라톤 역시 나중에 이러한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중에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제기한 아리스토파네스에 대한 비난을 거두었습니다. 대신에 플라톤은 자신의 작품 「향연」에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파네스를 동시에 등장시켜서, 같은 식탁에 앉아서 우정을 나누는 모습을 서술하였습니다.

 

12. 후세에 끼친 「구름」의 영향: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작품 「구름」은 고대에는 별반 반응이 없었지만, 후세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알렉산드리아 시대 그리고 고대 그리스 후기에 이 작품은 가장 활발히 공연되는 작품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고대 후기에서 중세까지 이르는 비잔틴 시대에는) 「구름」은 중등학교 교재로 활용되기도 하였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 작품의 가치를 재발견한 사람은 바로 루터 교회의 고대 연구가인 필립 멜란히톤 (Phillip Melachton, 1497 – 1560)이었습니다. 이 작품을 소크라테스 희극으로 이해하고 심도 있게 연구하거나 문학 작품으로 발표한 사람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프랑스와 라블레, 볼테르, 모제스 멘델스존, 빌란트, 레싱, 하만, 괴테, 렌츠, 빌헬름 슐레겔, 헤겔, 티크 그리고 플라텐 등이 있습니다.

 

 

참고 문헌

 

- 김민주: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에 등장하는 피타고라스적인 소크라테스, in: 인문논총, 81권 1호, 2024, 245 – 272.

- 김해룡: 「구름」에 드러난 아리스토파네스의 反지성, 反소피즘, 고전 르네상스 영문학, 14권 1호, 2005, 211 – 235.

- 이정린: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의 릐극적 구조 연구, in: 브레히트와 현대연극, 35권, 2016, 77 – 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