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요약해서 올려 놓습니다. 문헌의 내용과 의향을 정리한 것이니, "Exposé"의 성격이 강합니다. 예술론을 공부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
1.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완결된 작품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 (B.C. 384 - B.C. 322)의 시 예술에 관하여 Peri poietikes (일명 "시학")는 기원전 335년경에 집필되었다. 이 문헌이 완결된 것이 아니라는 말은 두 가지 사항으로 설명된다. 첫째로 『시학』에는 시학 제 2권이 빠져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문헌은 중세에 사라졌다가, 1481년 베니스에서 발췌본으로 처음 간행되었다. 누군가 아라비아어의 원전을 발췌하여 부분만 라틴어로 번역했다. 1498년 베니스에서 라틴어로 다시 출간되었으며, 1508년에 그리스 원어로 간행되었다. 독일어판은 1753년 하노버에서 간행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대중을 위해 집필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신비로운 철학 서적으로 이해된다.
제1권은 미완성으로 남아 있고, 희극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제2권은 안타깝게도 유실되었다. 논의에서 벗어난 이야기이지만, 움베르토 에코는 소설 『장미의 이름La nom de la rose』에서 『시학 제 2권』을 이야기 소재로 제시한 바 있다. 둘째로 현존하는 『시학』은 강의록 필사본으로 전해 내려온 것인데, 여기에는 나중에 소요학파 수장(首長)에 의해서 가필 정정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오늘날 유실된 문헌, 「작가에 관하여 Peri poiēton」이라는 대화 문집을 집필한 적이 있다. 시학은 바로 이 문헌을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으며, 내용상으로도 많은 부분 참고한 게 분명하다.
2. 『시학』의 구조: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완결본으로 전해 내려오지 않았다. 맨 처음에 저자는 비극, 서사시 그리고 희극으로 논의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며, 다른 문헌, 『수사학』에서 두 번씩이나 웃음에 관한 내용이 『시학』에 언급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로 미루어 희극과 관련되는, 제2권에 해당하는 내용은 유실된 게 분명하다.
미국의 문헌학자, 리처드 장코는 기원후 10세기에 발견된 문헌, 『트락타투스 코이실리아누스Tractatus Coislinianus』가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제 2권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아직 정설로 인정받지 못했다. 오늘날 전해 내려오는 『시학』은 26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제1장 – 제5장: 문학 작품에 관한 전체적 특징, 제6장 – 제22장: 비극에 관한 내용, 제23장 – 26장: 서서시에 관한 내용.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에 관한 내용을 상당히 세밀하고도 자세하게 거론하지만, 서사시에 관한 내용은 비교적 간략하게 서술하였다. 왜냐면 서사시에 관한 특징과 기능은 앞부분에서 간간이 언급했기 때문에 요약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저자가 판단한 것 같다.
3. 미메시스의 두 가지 기능: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문학 작품의 기능을 “미메시스”로 설명한다. 다시 말해서 모든 장르의 문학은 음악 예술과 마찬가지로 현실의 어떤 특정한 상을 답습하려고 애를 쓴다. 모방은 인간의 본원적인 성향으로서 다른 생명체에 비해 매우 발전되어 있는 충동인데, 특히 문학 작품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 된다. 문학 작품을 탄생시키는 또 다른 요인은 모방을 통해서 예술 작품을 창조하는 즐거움이다. 인간은 시신(屍身)이라든지 해로운 동물을 대할 때 역겨움을 느끼지만, 편안함과 아름다움을 부추기는 대상을 인지할 때 기쁨을 느낀다. 이러한 기쁨의 대상을 모방하려는 것은 인지상정이라고 한다.
이러한 입장에 근거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원조에 해당하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그리고 (유실되고 없는) 호메로스의 희극적 서사시, 『마르기테스Μαργίτης』 등을 거론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마르기테스”는 사람 이름으로서, 희극에 등장하는 어리석고, 다혈질의 음탕한 사내를 가리킨다. 이러한 작품의 분석을 통해서 비극작품이 어떻게 발전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고찰하고 있다.
4. 비극과 희극 그리고 서사시는 주어진 현실에 대한 문학적 모방이다. 미메시스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비극작품에서는 이상화되고, 희극 작품에서는 희화화되며, 서사시에서는 현실적 초상화로 묘사된다고 한다. 인간은 문학 작품을 대하면서 자신의 삶과 유사한 처지를 접하는데, 이는 예술적 모방의 기능에 의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연극작품에는 가수가 등장하는데, 이 인물은 -서사시 혹은 “주신 송가 (酒神 頌歌 Dithyrambos)”에서- 시적 내용을 수정하는 자로 이해된다. 다시 말해서 가수는 연극작품에서는 직접 연기하는 사람으로 무대에 등장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한 가수의 역할에 관해서는 오늘날 현대의 연구가에 의해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연극의 두 개의 주요 형태인 희극과 비극을 역사적 발생론적으로 문학의 이전 형태에서 과감하게 도출해내고 있다. 희극 작품은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활용되는데, “천박하고 우스꽝스러움에 대한 모방”으로 해석되고 있다. 희극의 요소 속에는 더럽고 추악한 사항도 부분적으로 내재해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희극에 관한 언급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해 내려오는 문헌에는 빠져 있다.
5. 비극이란 무엇인가? 제1권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유실되고 없는) 희극에 관한 내용을 미리 약술하면서, 주로 비극에 관해 논평하고 있다. 비극의 핵심적 정의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비극은 어느 특정한 위대성을 갖춘 고결하고도 폐쇄적인 인간의 행위를 잘 선택한 발언을 통해서 모방한 것이다. 이로써 이러한 발언의 모든 형태는 잘 정제된 개별적 단락에서 드러나게 되고, 보고가 아니라, 극적 행동으로 표현된다. 말하자면 행위에 관한 모방은 어떤 알림이나 보고에 의한 게 아니라, 어떤 ‘연민έλεος’과 ‘공포 φόβος’라는 극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며, 이러한 도움으로써 관객의 마음속에서는 하나의 순화 내지는 정화 직업이 작동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연민” 그리고 “공포”라는 두 개념이다. 오늘날에 이르러 사람들은 그리스 개념인 “έλεος’”와 “φόβος”를 “연민”과 “공포”가 아니라, “탄식Jammer”과 “경악Schauder”으로 번역하는 게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고대 비극에서는 인간은 자신의 작은 실수로 인하여, 거의 숙명적으로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곤 한다. 이를 대하는 관객은 마음속으로 비판을 터뜨리며, 경악에 사로잡힌다는 것이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고대 비극에서 나타나는 카타르시스의 영향은 의학적 관점에서 어떤 구체적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카타르시스는 극작품을 대하는 관객이 느끼는 정서적 순화의 기능을 지니고 있는데, 때로는 육체의 정화 작업으로 설명 가능하다는 것이다. 가령 복통을 앓는 사람이 배변을 통해 음식물을 깨끗하게 씻어내리는 경우를 생각해 보라. 비극의 순화 작업은 “응축된 격앙의 정서에서 벗어나게 하는, 쾌감과 결부된 씻어내림”과 관계될 수 있다.
(계속 이어집니다.)
'37 고대 문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로박: (2)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0) | 2024.12.27 |
---|---|
서로박: (2)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 (0) | 2024.11.30 |
서로박: (1)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 (0) | 2024.11.30 |
서로박: (5)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 론' (0) | 2024.09.24 |
서로박: (4)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 론' (0) | 2024.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