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6. 비극의 내적 개연성과 일치성: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을 위해서 내적 개연성과 일치성을 요구한다. 비극은 전통적 사항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신화적 내용과 절묘하게 일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요구는 호라티우스의 중개로 근대 시학의 전통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바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연극작품 내 행위의 특징으로서 세부적 사항을 기술하고 있다. 가령 엉클림의 “복잡화 Desis”, “해결 Lyris”, “작품 속의 돌발적 전환 Peripetie”, “정체성 확인 내지는 재인식 Anagnorisis” 그리고 “파국” 등을 들 수 있다. 아울러 드라마의 이질적인 부분이 다음과 같이 기술되고 있다. 프롤로그, 시작되는 “합창 Parodos” 에피소드, “(서서 노래하는) 합창 Stasimon”, 그리고 끝나는 “합창 Exodos” 등.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내용을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이를테면 고대 비극은 “신화, 성격, 발언, 의도, 배경 장면 그리고 음악”이라는 여섯 단락으로 나누어진다.
7. 비극에 반영되는 다섯 가지 특징 (1):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 행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무엇보다도 신화에서 발견하려고 한다. 그리고 “성격” 그리고 등장인물의 “발언”이 중요한데, 이것들은 비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판단 근거로 작용한다고 한다. 행위의 영역에 속하는 것은 “돌발적 전환péripétie” 그리고 “정체성 확인 내지는 재인식anagnorisis” 등과 같은 구성 성분이라고 한다. 비극작품은 무엇보다도 어떤 완전하고도 전체적인 행위를 모방해야 하는데, 이러한 행위는 하나의 특정한 길이를 갖추어야 한다. 비극작품은 신화적 일원성을 갖추어야 하는데, 이는 한 명의 유일한 영웅을 등장함으로써 가능한 것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러 명의 영웅이 등장하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예로 들고 있다. 모든 문학 작품 그리고 역사적 서술과의 근본적 차이는 형식의 차이, 이를테면 문학 작품에 연결된 발언에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역사가는 존재했던 사실을 그냥 객관적으로 보고한다면, 시인은 사실에 대한 보고가 아니라, “필연성과 개연성을 동원할 때 어떠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하는 사항을 서술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발언을 통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문학 작품이 역사서보다도 더 철학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역사 서적은 개별적 사건에 집착하기 때문에, 문학 작품은 더욱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사항을 다룬다는 것이다.
8. 비극에 반영되는 다섯 가지 특징 (2): 신화의 내용을 극작품에 도입할 때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다. 즉 비극적 인물은 자신의 본성이 사악해서 불행에 처하는 게 아니라, 어떤 자그마한 실수로 인해서 처절한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다시 말해 등장인물의 비극적인 몰락 자체가 바로 즉시 탄식과 경악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니라, 하찮은 실수 하나가 끔찍한 형벌을 당하게 한다는 사실이 관객의 마음속에 탄식과 경악을 안겨준다는 것이다. 성격을 형상화하는 작업과 관련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가령 등장인물은 가능하면 전설 내지는 신화의 내용과 유사한 처지에 설정되어야 하고, 고결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 이를테면 이피게니에는 트로이 전쟁의 와중에서 신 앞에서 애타게 자신의 생명을 간청하는 여성이다. 그런데 나중에 집필된 에우리피데스의 「타울리스 섬의 이피게니에」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은 강인한 희생정신으로 무장해 있다. 이는 비극의 작동 원리에 어긋나는 사항이라고 한다.
제19장은 비극에 나타나는 발언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등장인물의 발언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단어에서 문장에 이르기까지 무척 다양하게 나타나야 한다. 특히 중요한 부분에 있어서 등장인물은 진부하고, 낯설며, 방언이 뒤섞인, 우스꽝스러운 문장을 자제해야 한다. 특히 은유 그리고 명징한 의미 발언은 적재적소에 활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권고하고 있다. 만약 등장인물이 사용하는 단어 유형이 특정한 문학적 장르에서 벗어나거나, 너무 과도하게 사용되면, 작품 자체는 천박해지거나 불명료한 의미를 전하게 되리라고 한다.
9. 문학과 역사, 그 공통점과 차이점: 『시학』의 마지막 네 단락 (제23장 - 제26장)은 서사시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시금 문학 작품과 역사 서적 사이의 차이점을 지적한다, 시인은 행위의 일원성을 중시하는 반면에, 역사가는 어느 특정한 시대의 제반 사항을 추적한다.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은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즉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에서 트로이 전쟁의 핵심적 사항을 아주 간결하게 지적하면서, 서사적 순환의 구조를 예리하게 도출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키프리아Kypria』는 6각운으로 이루어진 고대의 서사시인데, 호머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서 다루지 않는 트로이 전쟁 이전의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서사시는 짤막한 분량만으로 역사 서적이 요약할 수 없는 트로이 전쟁의 원인과 결과를 지적하는데, 이로 인하여 서사적 내용을 뛰어넘는 극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키프리아』는 운율에 있어서도 다양성을 견지하고 있으며, 배경 장면 그리고 음악의 기능을 첨가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서사시는 분명한 내용을 상실하지 않은 채, 독자를 즐겁게 해준다는 것이다.
10.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사이의 입장 차이: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의 세 가지 핵심적인 측면은 -플라톤의 (국가 (Politeia)와 향연 (Symposion)에 나오는) 문학에 관한 구상과 비교해보면-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첫째로 문학 작품은 플라톤에 의하면 현실에 대한 모방이긴 하나, 이념의 세계를 모사한 상에 불과하다고 한다. 문학 작품은 진리에 관한 두 단계로부터 멀어져 있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념의 영역 그리고 인지 가능한 현실의 영역 사이의) 플라톤적 구분을 관여의 이념으로 전복시킨다. 그러니까 모방해 있는 현실은 이념에 관여하고 있으며, 나아가 문학 영역의 현실 속에 (내적 형식 원칙으로서의) 어떤 “배아 Entelechie”로서 내재하고 있다. 이러한 사고는 문학 작품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도록 작용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록 “미메시스”라는 유일한 원칙을 신봉했지만- 문학 작품이 더 이상 어떤 단순한 모사로서의 모사로 국한될 수 없다고 확신했다.
둘째로 플라톤은 문학 작품을 자신의 이상 국가에서 철저히 배제했다. 왜냐면 문학 작품은 인간의 저열한 힘을 부추기게 하고, 그의 열정을 선동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플라톤이 이러한 방식으로 예술에 적대적 자세를 취한 데 반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카타르시스의 영향 미학적 모델을 발전시켰다. 인간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흥분과 열정의 배출을 통해서, 또한 비극을 통해서 과도한 정열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로 플라톤은 문학 작품, 특히 신화적 전통을 거짓된 무엇으로 배척하였다. 이에 반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여러 신화를 인간의 보편적 태도의 표현으로, 상징으로 해석하였다. 그러니까 신화들을 자구적으로 수용하지 않음으로써 그는 플라톤의 비판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었다.
11. 『시학의 영향』: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호라티우스의 문학예술에 관하여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다시금 적극적으로 수용되었다. 인문주의자들은 이를 문헌학적으로 연구하고, 주석을 달며, 여러 언어로 번역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전성기는 아무래도 프랑스 의-고전주의의 시기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가령 피에르 코르네유Pierre Corneille의 「연극작품에 관한 세편의 논문 Trois Discours sur le Poème Dramatique」을 예로 들 수 있다.
독일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마르틴 오피츠 그리고 토마스 고트셰트에게 영향을 끼쳤다. 이들은 비극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서술을 너무나 확고한 규범적 철칙으로 고착시켰다. 가령 이들이 주장한 연극의 삼 일치 이론 (행위, 시간, 장소 등의 일치)에 관한 도식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 이론은 레싱에 의해서 놀랍게 변형되었다. 가령 레싱은 "함부르크 연극론"에서 “연민ελεος”과 “공포ϕόβος”를 제각기 “동정심 Mitleid” 그리고 “두려움 Furcht”으로 대치시킨 바 있다. 계몽주의 시대의 사람들은 신의 숙명적 권력에 뱅신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중에 독일에서 질풍과 노도 운동이 도래하여, 모든 규칙이나 규범들이 거부되자, 고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전통 역시 본연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현대에 이르러 브레히트가 “반 아리스토텔레스 연극론”을 기술함으로써 그의 시학은 다시금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한국어 문헌.
시학은 한국어로 상당히 많이 번역되었다. 이 가운데 여섯 권을 골라 소개한다.
1.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김재홍 역, 고려대 출판부, 1998.
2.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천병희 역, 문예출판사 2002.
3.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이상섭 역, 문학과 지성 2005.
4.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손명현 역, 고려대 출판부 2009.
5.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김한식 역, 그린비, 2022.
6.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이상인 역, 길,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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