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고대 문헌

서로박: (4)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 론'

필자 (匹子) 2024. 9. 23. 14:31

(앞에서 계속됩니다.)

 

23.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 개념: 놀라운 것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관입니다. 그는 현세에 주어진 시간을 여섯 개의 시기로 나누고 있습니다. 마지막 여섯 번째의 시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시점으로부터 최후의 심판 일까지의 기간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의 출현이야말로 역사의 정점이며, 가장 중심이 되는 시점이라고 합니다. 오래 전부터 하나의 계시로 이해되어온 내용은 예수에 의해서 비로소 유효성을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계시로 이어져온 천년왕국의 이상은 그리스도의 탄생과 그의 행적으로 인하여 실제 현실에 출현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사항은 교회가 과연 어떻게 변해나가는가? 하는 물음과도 관련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구약성서인 「다니엘」을 하나의 예로 들고 있습니다. 로마제국의 몰락은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마지막 거대한 세계국가의 파멸에 대한 범례라고 합니다.

 

24. 로마 제국의 위상: 그런데 우리는 한 가지 사항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즉 아우구스티누스가 모든 것을 철저한 구분에 의해서 신의 국가와 지상의 국가를 이원론적으로 대립시켰지만, 로마 제국을 무조건 사악한 지상의 국가로 매도하지 않았다는 게 그 사항입니다. 가령 로마제국은 신의 국가와 지상의 국가 사이의 중간적 가치를 지닌 자연 국가의 체제라고 합니다. 그것은 원론적으로는 악마의 국가에 대한 대표적 표본이지만, 실제 현실에 있어서 세상에 어느 정도의 범위에서 평화를 마련해주었다고 합니다. 이 점은 차제에 나타날 신의 국가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고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을 고려할 때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 제국이 어느 정도의 범위에서 법을 통한 유익한 정책을 펴나갈 수 있으리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25. 중간 국가의 위상을 지닌 자연 국가로서의 로마 제국: 그는 세계 국가를 논하면서도 항상 “자연 국가”를 염두에 두었습니다. 자연 국가는 신의 국가와 지상의 국가 사이에 위치하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 국가 형태를 가리킵니다. 사악한 세계 국가는 선한 기독교인들의 공동체에 의해서 “자연 국가”로 변모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Jens A: 867). 바로 이러한 까닭에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 제국을 무조건 배격하지 않는, 다소 모호한 태도를 취했던 것입니다. 기독교 교회는 오로지 신의 국가의 경험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기독교 교회 역시 신에 대해 적대적 자세를 취하는 세계 국가의 경향을 표방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재하는 교회는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세계 국가보다는 더 나을 수 있으며, 신의 국가보다는 더 나쁠 수 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다스리는 로마제국은 -비록 몇 가지 전제 조건 하에 있어서는- “자연 국가”에 근접해 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가시적으로 드러난 로마의 교회는 신의 교회와는 구분됩니다. (성한용: 182). 이로써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의 국가가 로마 제국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명확하게 규정한 셈입니다.

 

26. 빛과 어둠의 투쟁: 『신국 론』은 역사 속의 어떤 역동적 의식이라는 의미에서의 역사의식을 최초로 담고 있습니다. 빛은 역사 속에서 어둠에 맞서서 완강하게 날뛰 며 투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투쟁 과정은 여러 다양한 행동을 통해서 앞으로 나아갑니다. 역사는 “지상의 국가civitas terrena”가 “신의 국가civitas Dei”로 교체되는 목표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그리스도는 “지상의 국가”와 “신의 국가” 사이에서 하나의 전환점을 마련해줄 분이라고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의 역사로서 준비된 이러한 전설적 이야기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성서에서 보고하고 있는 대로 역사가 아담, 노아, 모세 등으로 이어진다고 확신합니다. 그 다음에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 시대를 언급하고, 뒤이어 그리스도가 출현하여 “신의 국가”를 준비합니다.

 

27. 유토피아, 유예된 미래: 빛과 어둠 사이의 투쟁은 그 자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니교의 전투적 이원론을 하나의 방법론으로 도입하여, 선이 악에게, 기독교가 비기독교에게 승리를 구가하리라고 확신하였습니다. 그런데 역사에는 악한 자들이 성공하고, 선한 자들이 패배하는 경우가 자주 속출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논리에 의하면 기독교인들이 주어진 현실에서 축복받고 승리를 구가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발생하곤 합니다. 문제는 선택된 자들과 선택되지 않은 자들을 분명히 선별할 시간이 언제인지 불분명하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코젤렉: 265쪽).

 

그렇기에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론은 역사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구실을 내재하고 있습니다. 최후의 심판일이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는 말은 유토피아의 실현이 시간적으로 여전히 미래에 설정되어 있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역사철학적 관점이 부분적으로 무책임하지만, 역사 속에서 여전히 유효성을 지니는 까닭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인간은 구원 받을 미래에 관해 언제나 긴장하지만, 아직 그 날이 도래하지 않았다고 믿으면서, 현재의 패배를 도도하게 이러지는 사회적 변화의 흐름 속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중지 상태 가운데 하나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28. 그리스도의 빛: 그렇지만 그리스도는 지상에서 방랑하면서, 끝내는 그리스도의 빛으로 세계를 다스리게 됩니다. 마침내 역사의 종점이 도래합니다. 맨 처음에는 천국으로부터의 나락이 있고, 중간에는 그리스도의 출현이 형성되고 있으며, 역사의 마지막 날은 최후의 심판일이라고 합니다. 그곳에서는 양들 (기독교인들)이 비로소 염소들 (비기독교인들)로부터 선별되고, 빛은 어둠과 나누어지게 된다고 합니다. 그곳에서는 빛이 마침내 승리를 구가하게 되고, 어둠은 심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선악의 이원론 사상에 근거한 마니 종교의 흔적을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마니 종교는 아리만과 오르마츠드 사이의 피비린내 나는 이원론적 대결에 관한 조로아스터 종교의 가르침으로부터 유래한 것입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