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신학이론

서로박: (2) 타우베스의 혼종(混種)의 정치신학

필자 (匹子) 2024. 11. 21. 05:33

 

(앞에서 이어집니다.)

 

6. 기독교 교회는 타우베스에 의하면 진정한 이스라엘이 아니며, 유대교에 속하는 하나의 종파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는 바울의 기독교를 유대 사상에 접목하려려고 한다. 게르숌 숄렘은 물과 기름이 섞이면 기름이 되는가? 하고 반문한다. 여기서 우리는 타우베스의 입장이 대학살을 겪은 수많은 유대인에게 얼마나 참담한 느낌을 가져다줄지 얼마든지 추론할 수 있다. 1963년에 발표된 논문 「마르틴 부버와 역사철학」에서 타우베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즉 종말론의 공동체의 이상은 다양한 역사적 구조 속에서 끝없이 변화되고 왜곡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인류가 바라는 이상은 원래의 선함과 성스러움으로부터 벗어나 항상 나쁜 방향으로 변했다. 인간은 항상 신화적 우상을 숭배하지만, 역사적으로 단 한 번도 신화적 우상이 올바르게 실현된 적은 없다는 것이다. 만약 인간이 이러한 식으로 신화적 숭배를 처음부터 거부하게 되면, 유대교와 기독교의 사이의 차이점 그리고 신앙과 역사철학 사이의 이질성은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타우베스는 이러한 이질성과 차이점을 없애는 것이 자신의 철학 행위의 관건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7. 메시아를 갈구하는 사람들은 어떤 순간에 하나의 커다란 의미를 깨닫게 된다. 타우베스는 이러한 깨달음에 이의를 제기한다. 종말론에 대한 기대감을 연속적으로 견지하다가 마지막에 맞이하게 되는 끔찍한 파국보다는, 차라리 처음부터 체념의 내면화라는 자세를 취하는 게 차라리 더 현명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반유토피아주의의 입장에서 놀랍게도 “골수-루터주의”가 안고 있는 어떤 치명적 보수주의를 읽을 수 있다. 물론 타우베스는 정치적으로 보수 반동주의를 지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는 종말론뿐 아니라, 세계 변화를 추구하려는 모든 인간의 노력을 부질없는 것이라고 취급하고 있다. 메시아에 대한 기대감을 수미일관 고수하는 태도는 타우베스에 의하면 그 자체 어리석다고 한다. 『사도 바울의 정치신학』에서는 이에 관한 사례가 수없이 언급되고 있는데, 이는 메시아를 갈구하고 구원을 기다리는 태도가 실제 현실에서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가? 하는 점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이로써 『서양의 종말론』에 서술되고 있는 종말론의 긍정적 미래지향적 특성은 놀랍게도 차단되고 있다.

 

8. 타우베스가 자신의 논거를 위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무엇보다도 주어진 상황 그리고 적대자이다. 타우베스는 카를 슈미트가 애용하는 개념인 “구체적 상황” 외에도 주어진 현실적 상황에 아주 재빠르게 순응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상황에 따라서 마치 카멜레온처럼 이리 빠지고 저리 빠질 수 있으며, 마치 발터 벤야민처럼 “관여하는 방관자”로 처신할 수 있었다. 68 학생운동 당시에 취한 그의 소극적 행동은 이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타우베스의 『제식으로부터 문화로』라는 책에는 반동적인 유대주의 철학자 오스카 골트베르크Oskar Goldberg의 입장을 비판하는 글이 실려 있다. 여기서 타우베스는 “인간은 문명의 혼란스러운 뒤섞임으로부터 근원의 순수성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라는 주장에 대해 일침을 가하고 있다. 사실 유대인의 신, 야훼는 처음에는 살아있는 민중의 신이었다가, 나중에는 무력한 인간의 신으로 가치 하락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토마스 만이 『파우스트 박사』에서 체임 브라이스바흐 박사라는 기이한 인간으로 희화화한 의도와 관련되고 있다. 문제는 종말론을 맹신하면서, 처음이 아니라 마지막의 시간에 구원을 기다리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있다는 것이다.

 

9. 타우베스는 언젠가 오도 마카르트Odo Marquard와의 논쟁에서 그렇게 행동을 취했던 것처럼 신화의 다양성 그리고 신들의 갈등과 경쟁에 관한 멋진 묘사를 신랄하게 비난하고 있다. 흔히 사람들은 오로지 유일신만 생각하면서 다른 여타의 내용을 배척하는 것보다는, 역사철학에 나타난 세속화된 구원의 이야기에 흥미를 품게 되면, 더 멋지게 살아갈 수 있다고 지레짐작하는데, 이는 타우베스에 의하면 하나의 착각이라고 한다. 타우베스는 신화적 이야기와 신들의 경쟁에 관해 경박하게 언급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나아가 어떤 새로운 다신론이야말로 다원주의 사회에서 허용되는 마지막 자유의 외침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잘 숙지하고 있다. 문제는 오늘날 제기되는 새로운 다신주의가 시나이반도에 존속되는 유대인들의 동맹을 차단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타우베스는 그리스 신화에 대한 관심사가 결국에 이르면 이스라엘 국가에 하나의 위험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바로 이 점이야말로 타우베스가 변절한 유대인, 사도 바울처럼 1980년에 이르려 유일신의 사고에 집착하는 근본적 이유이기도 하다.

 

참고 문헌

- 서규환 (2018): 정치적 모랄리아 2: 슈미트와 아감벤 사이, 다인아트.

- 타우베스, 야콥 (2012): 바울의 정치 신학, 조효원 역, 그린비.

- Assmann J u.a. (hrsg.) (2017): Apokalypse und Politik, Aufsätze, Kritiken und kleinere Schriften, Paderborn.

- Dreßen, Wolfgang (2013): Wir leben noch im Advent - Jacob Taubes und der Preis des Messianismus, Online.

- Faber, Richard (2001): Abendländische Eschatologie, ad Jacob Taubes, Königstein.

- Taubes, Jacob (1991): Abendländische Eschatologie, 1947, München.

- Taubes, Jacob (2012): Briefwechsel Carl Schmitt, Münch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