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야콥 타우베스는 기이하게도 수미일관 파시즘에 동조한 독일의 법철학자 카를 슈미트에 관심을 기울였다. 의식 있는 유대인 출신의 학자였지만, 카를 슈미트의 사상을 수미일관 추적하려는 자세에서 우리는 어떤 기이한 사항을 발견할 수 있다. 극단은 서로 통하는 법일까? 우리는 타우베스의 입장에서 어떤 학문적 매혹 그리고 유대인 정체성 사이의 모순점을 접하게 된다. 야콥 타우베스의 태도에는 기이하게도 자신의 정체성을 거부하려는 어떤 이율배반적인 특성이 도사리고 있다. 그에게서 유대인이면서도 유대주의를 부정하는 기이한 변절자의 면모가 엿보이는 것이다. 마치 사도 바울이 이전의 율법학자, 사울이라는 이름을 저버리고, 기독교에 개종했듯이, 야콥 타우베스 역시 유대주의 그리고 가톨릭 사상으로부터 서서히 거리감을 취했다. 유대교의 신비주의를 연구하는 종교사학자인 그의 은사, 게르숌 숄렘Gershom Scholem은 지난 몇 년 동안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저버린 이유로 인하여 제자, 야콥 타우베스에 대한 비난 그리고 결별의 편지를 남겼다.
2. 1947년에 발표한 그의 학위 논문 『서양의 종말론Abendländische Eschatologie』은 생전에 출간한 자신의 유일한 저서이다.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타우베스가 시간 개념을 “지속성durée”으로 이해하지 않고, “마지막 시간을 전제로 한 하나의 정해진 기간Frist”으로 파악한다는 사실이다. 이로써 그의 시간 개념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탐색으로 이해된다. 2003년에 책 한 권이 간행되었다. 『사도 바울의 정치 철학』이 바로 그 책이다. 그는 1987년 죽기 전에 매우 아팠는데, 당시에 하이델베르크에서 4일에 걸쳐 강의한 바 있다. 책은 일견 이해하기 쉬울지 모르지만, 강의의 맥락 속에는 여러 가지 암시와 수수께끼가 가득 차 있다. 이를테면 어떤 비의의 내용과 비밀을 암시하는 식의 표현이 많은데, 이로써 타우베스는 신학이 오로지 정치적으로 착색된 매우 위험한 영역임을 은근히 제시한다. 도래하는 죽음이 비판적 지성의 촉수를 마비한다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3. 사도 바울의 정치 신학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법Nomos”이라는 개념의 폭발력이다. 타우베스는 사도 바울의 「로마서」에 나타난 법에 대한 비판에 주목한다. 그리하여 여기서 도출해내는 것은 로마 제국이라는 세계 질서 그리고 인간의 자세와 관련되는 논쟁이다. 법보다 중요한 것은 바울에 의하면 빛과 생명에 대한 인식이라고 한다. 이로써 바울은 율법 그리고 로마 제국에 대해 비판적 자세를 취해나간다. 마찬가지로 타우베스는 유대주의와 가톨릭 사상이 고수하는 “행위를 옹호하는 태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것을 법적 정당성 문제와 관련시킨다. 예컨대 법의 정당성은 인간 행위의 가치를 따지려는 개념이다. 바로 그것이야말로 “행위를 옹호하는 태도”로 귀결되고 있다. 가령 인간이 올바른 일을 행한다면, 신 앞에서 정당하고 자신을 떳떳한 존재로 내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 행위를 구명하는 척도는 바로 이것이라고 한다. 인간 행위의 정당성은 유대교 그리고 가톨릭 사상에서 발견되는 성스러운 인간이 행해야 하는 자세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타우베스는 행위를 옹호하는 태도 내지는 율법의 정당성을 비판함으로써 유대주의 내지는 가톨릭 사상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한다. 그 이유는 그가 마치 프로테스탄트 처험 은총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기 때문이다.
4. 마르틴 루터는 수미일관 오로지 신의 은총만을 강조하였다. 인간은 루터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신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루터는 그리스도의 종말론에 대해 전혀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요한의 묵시록은 모든 도둑 대장들이 속임수를 부리는 포대기.”라고 말하기도 했다. 인간은 루터에 의하면 자신의 선한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신의 구원을 통해서 정당성을 획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원은 신약 신학에 의하면 오로지 “신의 은총에 의해서 sola gratia” 그리고 “오로지 믿음과 신앙에 의해서sola fides” 가능하다고 한다. 사도 바울 역시 선과 악을 따지는 율법에 중점을 두지 않고, 오로지 신의 은총과 인간의 신앙을 강조했다. 한마디로 타우베스는 유대주의로부터 등을 돌리고 기독교인이 된 바울을 옹호하고 두둔함으로써, 유대 사상에 은근히 도전장을 던진 셈이다. 그는 자신이 바울의 사상을 추종한다고 서슴없이 말하고 있다. 한마디로 타우베스는 처음에는 발터 벤야민처럼 정치 질서의 신학적 정당화를 거부해 왔다. 그러나 『바울과 정치 철학』에 서술되고 있는 그의 논리는 이전의 입장과는 너무나 다르다.
5. 야콥 타우베스는 자신의 책에서 사도 바울의 사상을 재정립하고, 초기 기독교 사상을 유대인 내부에서 출현한 사상적 발전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평가는 그의 은사, 게르숌 숄렘의 학문적 입장과 전적으로 반대되는 것이다. 사실 게르숌 숄렘은 사도 바울을 저주하고, 역사적으로 발현된 유대주의의 구원 사상은 기독교의 내면적 사고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확실히 선을 그은 바 있다. 1982년에 발표한 논문 「메시아사상과 그 대가」에서 타우베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즉 모든 메시아 운동은 실패를 거듭하다가 필연적으로 내면화의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기독교 사상 역시 이러한 변화 과정을 거듭하였다고 한다. 가령 원시 기독교 사상은 17세기에 사바타이 체비Schabbtai Zvi라는 거짓된 예언자를 추종하는 유대인들에 의해서 원래의 특성이 변질했다고 한다. 사바타이 체비는 당국의 압박에 시달리다가 결국에 이르러 이슬람으로 개종한 “자칭 메시아”였다는 것이다. 타우베스는 말년에 이르러, 한편으로는 은총에 관한 프로테스탄트의 시각에 동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독교 종말론이 추구하는 전복되는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거의 포기한 것처럼 비친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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