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Bloch 번역

블로흐: 유산의 세 단계 (6)

필자 (匹子) 2022. 9. 25. 09:47

지금까지 언급한 바를 요약해보기로 하자. 문화적 유산을 마르크스주의로 수용하는 작업은 엥겔스의 다음과 같은 선구자적인 문장과 결부된다. “만약 인류가 이룩해놓은 모든 풍요로운 문화를 접함으로써 우리의 기억을 풍요롭게 활성화시킬 수 있다면, 우리는 오로지 이 경우에 한해서 진정한 공산주의자가 될 수 있다.” 물론 엥겔스는 여기서 독일 고전주의 철학을 인류의 문화적 유산으로 포함시키고 있다. 말하자면 엥겔스는 문화의 영역에서 오로지 철학만이 유용한 것으로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규정하였다. 인류가 남긴 문화적 보물 창고에는 녹슨 물건들 그리고 부패한 나방이 득실거리고 있는데, 우리는 이것들을 일차적으로 제거한 다음에 바로 그 비어 있는 자리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습득한 희망docta spes”을 가득 채워 넣어야 한다. 이 경우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해 과거 시대의 문화를 수동적 자체로 마냥 경탄하거나 부러워할 필요는 전혀 없을 것이다. 습득한 희망을 채워 넣는 과업이야 말로 과거의 전통적 가치에서 미래에 필요한 유토피아를 발굴하는 작얼일 것이다. 그것은 나아가 새로운 문화를 생산하고 구조함으로써 우리가 획득할 수 있는 힘 그리고 일원성이 아닐 수 없다.

 

헤르만 로체는 나름대로 세밀하게 아류의 철학을 개진한 바 있는데, 문화적 유산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문화적 유산이란 인간정서가 가장 놀라운 고유성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은 오히려 개별 사항에 있어서의 사리사욕 외에도 미래에 대한 현재의 (추호도 질투심을 드러내지 않는) 포만감이라고 한다. (역주) 블로흐가 인용한 로체의 문헌은 다음과 같다. Lotze, Hermann: Mikrokosmos. Ideen zur Naturgeschichte und Geschichte der Menschheit, Versuch einer Anthropologie, t. III, (hrsg.) S. Hinzel, Leipzig 1864, S. 49, 나중에 발터 벤야민은 여러 번에 걸쳐서 로체의 문장을 인용한 바 있다. 가령 벤야민의 파사주 텍스트 그리고 자신의 역사철학 테제인 「역사의 개념에 관하여Über den Begriff der Geschichte」에서는 로체의 문장이 인용되고 있다.) 우리는 무조건 로체의 이러한 발언이 설령 아류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마냥 무시할 수는 없다. 미래에 수용하게 될 유산에 대해서 어떠한 질투와 시샘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미래는 모든 인간이 차제에는 밝고 친밀하게 변하게 되는 하나의 거처가 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미래에 대해 우리는 시샘이 아니라, 기대감을 품어야 할 것이다. 사실 우리의 미래는 계급의 차이가 사라진 유산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계급 없는 유산이야 말로 수정된 무엇이며, 구체적인 무엇이 아닌가? 우리는 이것을 예측된 상 내지는 선현을 통해서 지금까지 결핍된 무엇으로 인지해 왔던 것이다. 그것은 역사의 고유한 자료이며, 문화적인 넘쳐흐름의 과정을 통해서 역사적 획득물 내지 그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획득물은 이제 더 이상 하나의 사유물을 사적으로 소유하고 싶은 욕망과 동일한 차원에서 이해될 수는 없을 것이다. 문화적 유산이란 문화가 추구하던 무엇이 역사 속에서 상실되고 말았다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 문화적으로 중요한 무엇이 상실된 까닭은 당 시대의 크고 작은 이데올로기의 농간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전해 내려오는 문화 유물에서 어떤 불필요하고 나쁜 성분들을 모조리 일탈해내고, 그 자리에 유토피아의 성분을 채워나가야 할 것이다.

 

자고로 문화는 인류가 살아가야 할 거처이며, 우리는 이러한 거처가 올바르게 축조되어야 한다는 약속을 지켜야 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공간 속에서 우리는 상부 구조를 통해서 동시대적인 하부 구조를 작동시켜야 할 뿐 아니라, 상부구조가 서서히 영글고 성숙되는 과정 속에서 어떤 바람직한 방향을 발견해야 한다. 이로써 길과 방향의 문제, 존재 그리고 의식 사이의 아포리아는 분명히 해결 가능하라고 확신한다. 이는 결국 문화적 출발점을 새롭게 정립시킴으로써 가능하게 될 것이다. 물론 문화유산을 새롭게 가꾸어나가는 작업은 일차적으로 하부구조의 자극이 없이는 어디서도 실행될 수 없는 법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과거의 유산의 옥석을 제대로 선별하게 된다면, 문화적 넘쳐흐름이라는 고유한 행위와 유형은 분명히 작동되리라고 확신한다. 그러한 한에 있어서 이러한 작업은 우리가 과이 과정에서 활용한 예측된 상 내지는 선현이라는 찬란한 광채에 의해서 훌륭하게 진척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