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Bloch 번역

블로흐: 유산의 세 단계 (4)

필자 (匹子) 2022. 9. 25. 09:46

언젠가 마르크스는 착취당하는 계급 뿐 아니라, 지배계급 또한 근본적으로 소외 상태에 처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이러한 계급이 편안하게 살고 자신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지만 말이다. 마르크스의 이러한 문장을 심층적으로 고찰해보면 -낱말의 위트를 사용해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중세의 대성당의 면모 속에는 비록 계층 차이의 문제를 완전히 떨치지는 못했지만, 어떤 열광적인 휴식에 관한 놀라운 상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결코 사회적으로 소진될 수 없는, 외자존재로서의 인간 소외의 제반 모습들을 예술적으로 극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중세의 건축 장인들은 지배 이데올로기가 미처 예리하게 간파하지 못한 내용을 마지막까지 추동하여 이를 하나의 결과물 속에 반영하였던 것이다.

 

대성당 건축물은 그 자체 하나의 가상적인 갈망의 상에 해당한다. 그렇기에 대성당은 우리로 하여금 완전히 질서 잡혀 있는 존재의 유토피아가 그야말로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게 해준다. 이와 관련되는 수많은 범례들은 이미 『유토피아의 정신Geist der Utopie』 그리고 『희망의 원리Das Prinzip Hoffnung』에서 서술된 바 있다. 인간의 갈망의 상들은 정태적인 예술 작품 내지는 장엄한 건축물 속에서 생동하고 있다. 지나간 예술 작품들은 이런 식으로 휴식과 편안함을 찾으려는 친화성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그렇기에 중세의 대성당 건물 속에는 비록 주어진 구체적 사회 현실과 직결되지는 않지만, 하나의 정태적 휴식이라는 어떤 완전한 갈망의 의미가 감추어져 있다.

 

이번에는 문화적 유산을 사회주의로 수용하는 문제와 관련되는 사항을 거론하기로 하자. 그것은 몰락하는 시민 사회의 문화 내지는 예술품들을 가리킨다. (필자는 이 문제에 관해 저서, 『이 시대의 유산Erbschaft dieser Zeit』에서 자세히 거론한 바 있는데, 보충해서 천착하기로 한다.) 이에 우리는 유산의 세 번째 단계로 들어서게 된다. 세 번째 단계는 다소 정태적인 특성을 드러내는 시민 사회의 정점의 기기 이후에 나타나는 시기를 가리킨다. 말하자면 시민 사회의 마지막 시기는 혁명이 발발한 이후의 시대를 지칭하는데, 미리 말하지만 이 시기의 예술 작품은 단순히 혐오스러운 특징 외에도, 많은 교훈을 은밀하게 담고 있다. 어쩌면 독자들은 혐오스럽지만 교훈적이라는 표현을 통상적인 게 아니라고 여길지 모른다. 그렇지만 1934년에 발표된 『이 시대의 유산』은 20세기의 문화적 특성을 언급하는데, 상기한 문제점을 과감하게 도입하고 있다. “20세기 초반에는 어떤 파괴되는 문화의 풍요로움이 거대하게 담겨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1920년대의 예술 속에는 놀랍게도 어떤 황혼과 어떤 여명이 동시에 혼재되어 있다.”

 

지금까지 표면적으로 가해진 색채는 제임스 조이스, 마르셀 프루스트, 무질 그리고 카프카 등에 의해서 과감하게 벗겨지고 만다. 시민주의의 합리성과는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는 내용들이 비스듬하게, 혹은 얼기설기 포함되고 있는데, 이는 한마디로 비동시적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들 작가들의 문학작품에서는 급작스러운 무엇, 차단되는 무엇, 단편적 특성 등이 주관적 차원에서 몽타주 처리되고 있다. 말하자면 객관적인 서술 외에도 주인공의 내면의 의식이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서술되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들은 지금까지 문학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라든가 전통적인 문학적 서술과는 그야말로 동떨어져 있는 것들이다. 『이 시대의 유산』은 20세기 초의 이러한 예술적 특징을 주의 깊게 고찰하여, 문화적 유산의 근본적인 의미를 촉구하라고 권하는 책이다. 우리가 중시해야 하는 것은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왜곡된 의식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피상적으로 드러난 특징 내지는 표출된 현상의 배후에 숨어 있는 어떤 시대적 경향성일 것이다.

 

(역주) 이러한 사항은 1920년대에 루카치와 불로흐 사이의 표현주의 논쟁을 촉발시키게 한 논거이다. 물론 우리는 다음과 같이 도식화할 수는 없다. 즉 블로흐가 아방가르드의 실험 정신, 단편적 미완성의 특징 그리고 특수성을 강조하는 반면, 루카치가 조화로움, 온화함 보편성을 중시한다는 식의 구별로써 말이다. 블로흐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즉 모든 문화 속에는 이데올로기의 속성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이것이 제거되어야만, 유산으로 수용할 수 있는 문화적 넘쳐흐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고려할 때 그는 루카치처럼 고대 그리스의 자유 그리고 독일 고전주의의 이상 등에 대해서 쌍수를 들고 환영할 수는 없었다. 모더니즘 내지 아방가르드의 실험의 시도 속에는 부르주아의 퇴폐성과 예술적 현혹이 부분적으로 내재해 있다. 그렇지만 이것이 제거되면 후기 시만 사회의 예술 작품 속에는 사회주의 문화 속으로 편입될 수 있는 놀라운 유산의 흔적이 자리하리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유산의 문제를 논할 때 후기 시민 사회의 예술적 유산을 무작정, 선험적으로 거부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런데도 일부 사람들은 괴테, 헤겔, 포이어바흐 이래로 부르주아 문화는 더 이상 바람직한 유산으로 채택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한 논거는 다음과 같다. 물론 시민 사회의 문명이라는 하나의 마지막 기차는 부분적으로 가장 훌륭한 무엇으로 수용될 수는 있으며, 몰락하는 자본주의의 제반 문화가 인광 (燐光)의 상, 상대주의의 역설 등을 통해서 모든 비밀을 백일하에 밝혀준다고 해서 더 이상 사회주의 문화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심을 촉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런 식으로 문화적 유산을 제한하게 되면, 남는 것은 기껏해야 아포리즘 내지는 도식적인 틀밖에 없을 것이다. 놀라운 것은 마르크스주의자들 가운데에서도 이러한 오류를 범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아포리즘과 도식적인 틀은 마르크스주의의 예술적 입장으로는 결코 적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몰락의 과정 속에서도 최소한의 무엇을 변증법적으로 구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민 사회의 몰락하는 문화에 대한 비판은 이를테면 슈펭글러의 도덕적 훈계에 해당할 뿐이다. 슈펭글러는 오로지 현재 현실만을 고찰하면서 과거와 미래와 무관한 도식적인 틀을 정립하려고 하였다. 그렇기에 그에게 남는 것은 현대 예술에 대한 악랄한 평가밖에 남지 않는다. “그것은 참으로 위험한 예술이다. 참담하고, 냉혹하며, 신경을 마구 헤집을 정도로 병적이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렘브란트의 위대한 작품과는 정반대되는 방종하기 이를 데 없는 반인반수, 사티로스의 유희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