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Bloch 번역

블로흐: 유산의 세 단계 (3)

필자 (匹子) 2022. 9. 22. 10:17

지금까지 우리는 혁명 발발의 유산에 관해서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문화적 유산의 두 번째 단계는 과연 어디에 위치하는 것일까? 두 번째 단계는 중세 시대에 대성당의 면모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이러한 정점의 단계는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첫 번째 원인의 단계와 그렇게 극명하게 구분되고 있을까? 프리지아의 모자는 최소한 원래의 집에서는 붉은 색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디서든 간에 고대 페르시아 왕의 모자를 황금으로 치장한 흰색이라고 받아들었다. 말하자면 프리지아의 모자는 단순히 조화로움을 예견하는 상징물일 뿐 아니라, 지배와 권력을 찬탈하는 객관적 상관물이었던 것이다.

 

중세의 대성당을 고찰해 보라. 여기에는 비록 모든 권력이 신앙에 빼앗겨 있지만, 우리에게 어떤 조화로움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조화로움 속에는 어떤 놀라운 형태의 의식이 도입되는 것이다. 건축물은 그 자체 정태적이고 명상적인 특징을 지닌 상징물과 같은데,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여기서 놀라운 형태의 의식이 당시 사회의 불안과 소요 그리고 전환이라는 분위기와는 걸맞지 않는, 다소 낯선 여운을 전해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전통적 현실에 입각하여 축조된 상징물 앞에서 어떠한 신중함도 감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눈에 띄는 것은 탁월한 예술품으로 변해 있는 거대한 권력의 힘일 것이다. 이러한 힘은 더 이상 과거로 향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전통적 문화의 넘쳐흐르는 개념을 통해서 감지될 수 있다. 가령 성가대의 합창 그리고 푸가 음악은 예술품의 명상적이고 정태적 특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데, 이것들이야 말로 중세 사람들이 최상이라고 여긴 정신을 그대로 반증하고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여유로운 자세이며, 휴식과 수정 (水晶)의 상과 직결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어떤 영원을 지향하는 건축 양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아무런 움직임 없이 비잔틴 제국의 모자이크의 상으로 결집된 채 천체로서의 둥근 지붕을 모조리 감싸고 있는 형태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대성당의 웅장한 위엄은 근본적으로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의 가장 엄숙한 틀과 같은데, 그 자체 기하학적으로 완벽한 존재를 여지없이 보여준다.

 

유럽의 수많은 건축물들은 조토, 단테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가 추구한 그리스도의 믿음이 충만한 세계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사람들은 기독교 신앙을 통해서 재앙의 경직된 상이라든가, 구원을 맞이하는 자의 편안한 상을 통해서 어떤 역동적인 움직임을 느끼면서 감동한다. 놀랍게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그러한 건축물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우리에게 분명히 알려준다. 즉 휴지 (休止)가 운동보다 월등하며, 모든 사물들이 가치에 합당하게 배치되어 있는 공간이 모든 사건을 뒤집는 시간보다 훨씬 낫다는 사실 말이다. 사람들은 당시의 계층 사회의 면모를 그대로 성찰하여 이를 수직 구도의 계층적 건물 속에 그대로 반영하였다. (바흐의 푸가 음악 속에는 바로 이러한 수직 구도의 계층적 특징이 음악적 형식 속에 그대로 용해되어 있다.) 결국 중세의 계층 사회는 이러한 수직 구도의 사다리와 함께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사물의 영원한 질서ordo sempiternus rerum”라는 주어진 규범에 대한 믿음은 그 자체 대단한 것으로서, 일견 모든 시간적 움직임을 모조리 가시적으로 유야무야하게 만들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게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어떤 반동주의의 의향을 공고히 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다. 정태적 완전성에 대한 믿음은 –스피노자가 자신의 시스템 속에 정렬시킨 바 있듯이- 이른바 비역사성이라는 유혹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스피노자는 자신의 시스템을 개방적이라고 역설적으로 표현했지만, 사물의 영원한 질서를 확신하는 태도는 역사와 무관하게 검증되고 정당화되는 시스템에 관한 포괄적 지식을 간직하고 있다.

 

만약 정태적이고 명상적인 중세의 예술품이 과정 내지는 개방성으로부터 아주 멀리 위치하고 있다면, 우리는 이것들을 어떠한 방식으로 구체적 유토피아와 접목시킬 수 있을까? 더욱이 그것들은 주어진 지배 계층의 이데올로기에 해당하며, 동시에 계층 질서에 근거하는 권력의 무게로 자리 잡은 예술품들이 아닌가? 문제는 예술 작품의 어떤 친화력에 있다. 가령 중세의 대성당 건물은 어떠한 움직임도 드러내지 않지만, 그럼에도 결코 반박할 수 없는 예술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키며, 결코 단순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어떤 미묘한 함의를 사시해주지 않는가? 사실 이 문제는 중세의 건축물 속에 자리하는 특수한 희망의 특징에 의해 쉽게 해명될 수 있을 것이다. 특수한 희망은 이데올로기 내지 주어진 시대에 대한 맹목적 예찬과는 정반대되는 저편에 도사리고 있는데, 문화적 넘쳐흐름은 놀랍게도 바로 저편의 영역에서 발생할 수 있다.

 

중세의 찬란한 예술품은 “사물의 영원한 질서”를 주장하고, 언제나 이러한 당위성을 마치 맹세하듯이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주어진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발견될 수 없는 범례이다. 그런데도 그것은 어떠한 예외도 용인하지 않은 채 어떤 실체화된 이상적 존재를 하나의 완성된 모습으로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대성당의 질서를 통해서 하나의 영원으로 이상화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어떤 일시적인, 일시적으로 안정을 찾은 축조된 사회이다. 그래, 대성당 건축물은 어떤 완전성으로 끝까지 남아 있는 영역이며, 오로지 가능성으로서 주어져 있는 마지막 도달 지점의 공간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