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사랑에 관한 담론: "장미의 이름"은 전체적으로 고찰할 때 주제상의 하자를 지니고 있으나, 세부적 사항에서 탁월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첫째로 장미, 즉 사랑에 관한 담론입니다. 아드손은 소설 중반부에서 어느 여자와 육체적 사랑을 나눕니다. 비록 그미는 창녀였으나, 주인공에게 평생 단 한 번의 사랑을 체험하게 해 줍니다. 에코는 아드손이 체험했던 사랑의 감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참새 한 마리가 놀란 나머지 푸드득 날아갈 때, 가볍게 떨리는 나무 가지에서, 마구간에서 생기 있게 뛰어나오는 망아지의 눈빛에서 나는 그미의 모습을 보았다. 잘못 들어선 길을 바로잡아 주던 양떼의 울음소리에서 나는 그미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로써 에코는 인간의 “충동적 본성 appetitus naturalis”을 종교적 황홀감과 성공적으로 결합시키고 있습니다.
그밖에 다음과 같은 놀라운 구절이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이룬 기쁨이 내 마음속에 영원한 기억으로 머문다면, 사랑은 진리처럼 언제나 내 가까이 머물고, 영원히 내 곁을 떠나 있으리라.” (Hidegard von Bingen) 아드손의 이러한 소름끼칠 정도로 아름다운 독백들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마디로 사랑의 달콤한 기쁨과 사랑으로 인한 가슴 죄이는 고뇌가 아닌가요? 이렇듯 에코는 지금까지 인류가 겪어온 온갖 유형의 사랑을 한마디로 요약한 것 같습니다.
15. 혁명에 관한 담론: 또한 돌치노 수사에 대한 에피소드는 혁명에 대한 범례입니다. 역사에 출현했던 혁명가들의 고뇌와 행적 그리고 거사와 실패 등을 생각해 보세요. 가령 창고방장, 레미기우스는 소수파에 가담하다가, 돌치노 수사와 함께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을 정화하려고 무장 봉기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교황청 사절단원으로 이곳에 참석한 베르나르 귀는 이 사실을 알아차리고, 레미기우스에 대한 종교 재판을 거행합니다.
레미기우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인간들이란 때로는 너무도 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너무나 완전한 것을 갈구하기 때문에 죄를 범하지요. 우리는 최후의 심판 일에 주께서 세상에 보낸 사절단이라고 스스로 여겼습니다.” 레미기우스는 고문의 위협을 받은 뒤, 안타깝게도 자신에 대한 변론을 거의 포기합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토로합니다.
“겁쟁이였으므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겁쟁이가 오히려 낫다고 생각했지요 (...), 베르나르! 자네는 내가 비겁한 자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 증명할 힘을 주었네! 자네가 수많은 이교도의 황제라면, 나는 순교자들 가운데 가장 겁 많은 자일세. 자네는 내 영혼이 무얼 믿고 있는지 알아낼 용기를 주었어. 비록 내 육신은 고문의 두려움에 떨고 있지만 말일세. 내게서 많은 것을 요구하지 말게! 죽음의 문턱에서 참아낼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용기를 강요하지 말란 말이야! 고문하지 말아 줘! 자네가 원하는 것을 모조리 말할게. 차라리 화형대로 스스로 올라가겠네! 그래서 살이 타 들어가기 전에 숨이 막혀 죽도록! 제발 돌치노가 겪은 고문은 말고, 그냥 곱게 죽여주게!”
레미기우스에 대한 재판 장면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모든 생각을 달리하는 자 (양심범)에 대한 심문 및 고문에 관한 보편적 범례나 다름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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