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이탈스파냐

서로박: 에코의 장미의 이름 (2)

필자 (匹子) 2020. 9. 4. 15:09

4. 요한 계시록과 살인 사건 (1): 소설은 일주일 사이에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총 50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에코는 (계절은 다르지만) 아마도 부활절에서 강림절 사이의 기간인 50일을 염두에 둔 것 같다. (Kamper: 434). 사건은 1327년 11월 마지막 주에 북부 이탈리아의 아페닌 언덕에 있는 부유한 클루니아첸저의 수도원에서 발생합니다.

 

프란체스코 교단의 승려이자 영국 출신의 학자인 윌리엄 바스켈뷜은 제자, 아드손 드 멜크와 함께 이곳으로 당도합니다. 이야기는 늙은 아드손이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는 식으로 기술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윌리엄은 황제의 특별 사절로서 비밀스러운 임무를 띄고 이곳 수도원에 도착한 것입니다. 윌리엄은 이단의 혐의를 받고 있는 소수파 사람들과 아비뇽에 머물고 있는 교황의 사절 사이에 어떤 정치적 회담을 결성하려고 의도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곳에 도착한 후 마치 묵시록의 이야기 같은 끔찍한 살인 사건이 차례로 발생한 것입니다. 일주일동안에 윌리엄과 아드손은 -특히 밤 시간에- 기이하고도 낯선 사건을 직접적으로 그리고 간접적으로 체험합니다. 어느 수사는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어 돼지 피를 담은 통속에 처박혀 있는가 하면, 다른 수사는 어떤 동료에 대한 동성애의 감정을 견디지 못해 추락 자살합니다. 세 번째 수사는 목욕실에서 독살된 채 알몸으로 발견됩니다. 사원에서는 온갖 소문이 나돕니다.

 

장미의 이름, 영화의 한 장면

 

5. 요한 계시록과 살인 사건 (2): 모든 사건은 어떤 비밀스러운 책을 둘러싼 비밀로 이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수도원장 역시 이를 숨기지 않습니다. 에코는 수도원장을 마치 토마스 아퀴나스와 흡사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어디서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흔적을 지우려고 애를 씁니다. 그 이후에도 살인 사건은 연쇄적으로 이어집니다.

 

윌리엄은 왕년에 종교 재판관으로 일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통과 이단을 분명히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죄악을 저지르는 자의 무력함이 바로 신의 무력함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그는 재판관 직책을 그만 두었던 것입니다. 윌리엄은 스스로 연쇄 살인 사건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사건의 추적 작업은 윌리엄에게 황제와 교황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일보다 더 큰 관심을 북돋웁니다. 더욱이 황제와 교황 사이의 회담이 이단자 문제로 인해 결렬된 다음부터, 그는 집중적으로 사건 수사에 전념합니다.

 

윌리엄은 여러 가지 단서를 모으고, 은폐된 원고를 해독하거나, 암호들을 해명합니다. 이곳 사원의 도서관은 비밀스러운 미로로 이루어져 있는데, 윌리엄은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는 출입이 금지된 도서관을 잠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는 유감스럽게도 너무 늦게 살인자를 발견합니다. 눈먼 수사인 호세는 바로 주범으로서, 사건이 해결될 무렵에 도서관 파괴를 위한 도르레의 장치를 이미 작동시켜 놓았던 것입니다. 바로 일곱 번째 날에 -묵시록에 기술된 반 기독교도에 대한 언급처럼- 사원은 온통 화염과 연기로 뒤덮여 버립니다. 그곳은 마치 지옥의 승리를 방불케 하듯이 깡그리 잿더미로 화합니다.

 

6.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에코의 소설은 책의 책이다.: 에코는 호세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 "바벨의 도서관"을 읽고, 미로로 이루어진 도서관을 착안하였습니다. (Borges: 55). 도서관은 미로로 이루어진 수직의 정원입니다. 이 정원은 지상의 진리가 아니라, 형이상학적 천상의 진리를 담은 책 한 권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 책을 읽은 자는 인간이 아니라, 바로 신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책에 실린 세상의 혼돈 및 그 합목적성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연이 지배하는 혼돈의 세상에서 인간은 지금까지 자신의 상상대로 하나의 질서를 창안하려고 발버둥 쳤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보르헤스에 의하면 이러한 허무주의적 시도나 다름이 없다고 합니다.

 

"장미의 이름"은 수없이 많은 인용문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인용문들은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600페이지의 흙 속에 박힌 수백 개의 보물 조각 (혹은 가짜 보석?)처럼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성서는 물론이요, 세르반테스, 테오도르 폰타네, E. Th. A. 호프만, 라베 Raabe, 라블레 Rabelais, 빌란트 Wieland, 토마스 만, 엘리아스 카네티, 미햐일 바흐친 등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책에 관한 책”입니다. 그렇다면 "장미의 이름"은 진리의 파편들을 새겨 넣은 복합적 조각품인가요, 아니면 서로 맞지 않는 요소를 마구 작위적으로 끼워 맞춘 인용 모조품일까요?

 

여기서 인용과 표절에 관한 기준이나 차이에 관해 더 이상 말하지 말기로 합시다. 문학 작품은 해석학을 논외로 하더라도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다만 다음과 같은 입장은 거짓이요, 자기기만일 수밖에 없습니다. 즉 동일한 현실적 맥락에서 “A는 B이다”와 “A는 B가 아니다”라는 두 가지 명제를 참이라고 용인하는 입장 말입니다. 에코는 시기적으로 중세를 문헌학적으로, 잃어버린 서적을 사건의 출발로 설정함으로써 논거 및 증명 사항을 교묘히 삭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