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인용인가? 표절인가? (1): 이 장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언급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몇 가지 중요한 사항만을 골라, 언급해보도록 합시다. 첫째, 이 책의 제목은 아벨라르 Abaelard의 “(이곳에는) 장미가 없다 Nulla rosa est”에서 따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우리는 “진리는 다만 기호로 남아있을 뿐, 그 본질은 찾을 수 없다”는 그의 입장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필자의 견해로는 소설의 제목을 “장미의 이름”보다는 “장미, 그 이름과 실체”라고 명명하는 게 주제 상으로 합당할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에코는 사물의 기표와 기의를 일차적으로 분리함으로써, 현상과 본질의 주종 관계를 부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서문의 내용은 기욤 드 로리 Guillaume de Lorris 그리고 쟝 드 묑 Jean de Meung의 "장미에 관한 소설 Le Roman de la rose", 크리스틴 드 피잔 Christine de Pisan의 "장미에 관해 말해진 것 Le dit de la Rose" 에서 차용한 것입니다. 전자는 기독교 수사들의 패륜과 고대 그리스에 대한 수업 및 스콜라 철학을 내용으로 한 책이며, 후자는 수녀에 의해 집필된 책으로서 장 드 묑의 여성에 대한 적개심을 역으로 비판한 책입니다.
장미는 피트로 다 모라 Pietro da Mora에 의하면 세 가지 상징성을 드러낸다고 합니다. 그것은 첫째로 “순교자의 합창 chorus martyrium”이라고 합니다. 비참하게 살해당하는 순교자의 목에서는 장미처럼 붉은 피가 솟아오릅니다. 둘째로 장미는 “순결한 여성의 성기 virgio virginum”라고 합니다. 장미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순결의 상징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셋째로 “신과 인간 사이의 중개물 mediator Dei et hominum”이라고 합니다. 단테는 천국의 상을 하나의 장미 모습으로 묘사하였습니다. (Bloch 963).
도서관의 모습. 미로처럼 이루어져 있다.
8. 인용인가, 표절인가? (2): 셋째, 주인공 윌리엄이 브루넬루스의 말을 예리하게 추리하는 내용은 볼테르의 "차디히 (Zadig)"에서 나옵니다. 볼테르는 브루넬루스의 이야기를 세르캄비 Sercambi가 쓴 페르시아의 이야기에서 인용하였는데, 에코가 이를 다시 인용한 셈입니다. 넷째, 소설 전반부에 나오는 윌리엄과 호세 사이에서 오고간 웃음에 관한 대화는 베르나르 클레보 Bernhard Clairvoux의 "길렐무스에 대한 경구 Apologia ad Gillelmum" 에서 인용된 것입니다. 윌리엄의 말은 베르나르의 주장과 일치하며, 호세의 말은 수가 상트 데니스 Sugar St. Denis의 주장과 거의 일치합니다. (Baumann: 46).
다섯째, 도서관의 미로는 로베르트 반 훌릭스 Robert van Guliks의 중국을 무대로 하고 있는 소설, "미로에서의 살인"에 나타나는 그것과 너무도 흡사합니다. 여섯째, 윌리엄의 제자 아드손의 사랑에 관한 독백은 힐데가르트 폰 빙엔, 쟝 드 프레캄 Jeans de Frecamp, 토마스 폰 켐펜 Thomas von Kempen의 고백록에서 나오는 대목에서 인용된 것입니다. 예컨대 “모든 동물은 교접 후에는 쓸쓸함을 느낀다. (Omne animal triste post coitum.)” 라는 인용 구절을 생각해 보세요.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사칭한 사람에 의해서 처음으로 사용된 문장입니다.
9. 인용인가, 표절인가? (3): 일곱째, 탐정 소설가, 코난 도일은 "바스켈빌의 개"라는 소설을 집필하였습니다. 바스켈빌이라는 이름이 에코 소설의 주인공의 그것과 같다는 점, 그리고 사건이 11월에 발생하고 있다는 점 등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여덟째, 토마스 만의 소설 "마의 산"은 -소설 구도 상으로 그리고 등장인물을 고려할 때- "장미의 이름"과 너무도 유사한 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토마스 만의 문학은 소설 구조면에서 그리고 주제의 측면에서 에코의 그것과 무척 유사한 면을 드러내곤 합니다. 유미주의, 동성애에 관한 사항, 치밀한 묘사, 전투적 개혁 및 혁명에 대한 보수주의적 시각 등이 그것들입니다.
이를테면 『마의 산』에서 주인공 한스는 7년간 산 속 병원에 머무는데, 이때 그가 겪는 신비로운 사건들은 에코의 소설 내용과 유사합니다. 주인공과 사템브리니 사이의 관계는 아드손과 윌리엄 사이의 그것을 연상시키고, 나프타의 교활한 간계는 호세의 그것을 연상시킵니다. 동성연애 문제 역시 공통적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마의 산"의 주인공, 한스의 산샤 부인과의 애정 관계는 아드손과 소녀 사이에서 발생한 일시적이지만 강렬한 섹스와 너무나 흡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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