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세 명의 등장인물 (1): 소설 속에 등장하는 세 명의 중요한 인물은 윌리엄 바스켈빌, 우베르틴 카잘레, 호세 부르고스입니다. 윌리엄은 프란체스코파에 속하는 영국인으로서 로저 베이컨 Roger Bacon의 과학적 사상을 답습한 관용적 자유주의자입니다. 작품 속에서 그는 자석 (磁石)의 기능을 인지하고 있으며, (당시에는 생소하기만 했던) 안경을 직접 사용함으로써, 감추어진 사물의 진리를 추적합니다. 이러한 윌리엄의 입장은 자신의 친구, 윌리엄 오컴 William Ockham의 사상, 유명론 (唯名論)과도 일맥상통하고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윌리엄은 프란체스코 수사들을 “친구들”로 명명하며, 신의 절대적 자유 의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우베르틴 카잘레는 실존 인물입니다. 그는 예수의 가르침을 극기로서 실천하고 서적보다는, 도를 중시하는 “소수파 fratres minores”의 마리아 숭배주의자이자, 혁명적 성향을 지닌 신비주의자입니다. 그는 도취의 사랑과 황홀감을 통해서 신에 직접적으로 다가가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인간의 열망이 향하는 곳이 과연 신성 (神性)일까요? 아니면 우베르틴은 자신의 고유한 감각적 충동에 의해 가득 찬 갈망의 성취를 찾으려고 할까요? 이에 대해 그는 스스로 답변하지 못합니다. 신으로 향한 욕망과 육체적 성욕 사이에서 우베르틴은 갈팡질팡하는 모습만을 보여줍니다. 결국 그는 뒤엉킨 미로에서 하나의 길을 발견하는 일에 조금도 도움을 주지 못할 뿐입니다. 우베르틴 카잘레의 유일한 능력은 사랑의 표시를 드러내기 위해서 이단자로서 화형대에 오르는 행위 밖에 없습니다. (Wieland: 113).
호세 부르고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 2권을 도서관에 은밀히 감추었습니다. 특히 그는 양피지가 아니라, 에스파냐에서 처음으로 생산된 종이로 이루어진 서적을 이탈리아로 유입했습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시학』 제 2권에다 독약을 묻혀놓고, 책을 뒤지는 승려들을 차례로 독살시킵니다. 살인 동기는 호세의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즉 행여나 민중들이 (책에 실린) 웃음의 정당성을 깨닫게 되면, 모든 종교적 체계가 무너지리라고 호세는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로저 베이컨
17. 보편적 진리에 대한 추적의 과정: 마지막 장면에서 에코는 웃음에 관한 대화를 미햐일 바흐친의 책에서 인용합니다. 호세는 예수의 가르침을 오직 참회와 기도로써 영위하고, 신의 절대적 진리를 밝히려는 인간의 제반 노력들을 한마디로 오만이라고 규정합니다. 윌리엄이 인간의 웃음 속에 담긴 해학적 계몽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반면, 호세는 신의 뜻에 복종하는 일이야말로 인간의 경건한 종교 정신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호세가 무엇보다도 침묵을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윌리엄과 호세는 전체적 주제를 고려할 때 가장 중요한 인물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연쇄 살인에 대한 윌리엄의 사건 수사는 엄밀히 말하자면 보편적 진리에 대한 추적 과정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윌리엄은 현실 속에 감추어진 진리의 흔적을 추적하며 제반 관련성을 탐지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우주가 수많은 부호 및 의미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유명론의 가설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우주 속에 늘려 있는 수많은 의미 내용들은 사물을 대리해서, 인간의 사고 영역 속에 간접적으로 존재합니다. 이에 의하면 세계 속에는 보편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보편성은 다만 세상에 관한 언급 속에, 세상에 관한 논리 속에 그리고 세상을 대하는 인간의 심리적 판단 속에만 도사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물에 대한 감각적 인지행위야 말로 모든 인식 과정의 출발점이 됩니다. 윌리엄 오컴의 견해에 의하면 신은 세계를 거대한 시계 바퀴처럼 만들고 난 뒤에, 이를 인간에게 내버려두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고는 오컴이 살던 시대에 아직 시계가 발명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과히 독창적입니다.
그러니까 신은 모든 사물을 제각기 따로 따로, 다시 말해 상호 무관하게 창조한 셈입니다. 윌리엄 오컴의 이러한 생각은 가령 플로티노스 Plotin의 유출 이론 내지는 스콜라 철학의 숭고한 가치 체계인 보편성 개념과는 위배됩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물에 대한 인식이 과연 다른 사물 (혹은 사실)에 대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을까요? 만약 “신이 사물들을 상호 무관한 것들로 창조하였다”는 가설을 인정하는 한, 결코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의혹은 -진위 여부를 떠나서- 인과 법칙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18. 우연성, 표피적 특성 그리고 허무주의: 합리적인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내려는 모든 이성적 노력은 -호세가 말한 대로- 그렇게 오만하고도 무가치한 작업일까요? (Kamper: 437). 아니면 이러한 노력이 궁극적으로 거의 대부분의 경우 성공을 기약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처음부터 포기해야 하는가요? 윌리엄의 입을 통해 나온, “지붕 위에 올라간 뒤에는 사다리를 저버려야 한다.”는 비트겐슈타인 Wittgenstein의 발언은 에코 소설의 중요한 주제들 가운데 하나를 이해하는 데에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이 문장은 비트겐슈타인의 "논문 Tractatus"에 나오는 유명한 발언인데, 비트겐슈타인은 이를 원래 중세의 에크하르트 선사 Meister Eckhart에게서 도용 (盗用)한 것입니다.
인용문에서 “사다리”란 진리의 파편 내지는 (보다 포괄적으로 말하자면) 제반 학문의 방법론을 지칭하는 비유적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진리란 -그것이 비록 파편적인 것이겠지만- 그것이 사용되는 순간에 파기될 수 있다고 합니다. 진리의 파편이란 에코의 말대로 거대한 진리와는 무관한, 하나의 불필요한 도구에 불과한 것일까요? 소설의 결말 부에서 윌리엄은 지혜를 원용하여 도서관 속으로 들어간 뒤에, 제반 살인 사건들의 비밀을 알아냅니다. 그러나 인류에게 지혜를 선사할 수 있는 도서관의 서적들은 결국 호세가 저지른 방화에 의해서 불타버리고 맙니다.
19. 우연에 의한 비밀의 해독: 윌리엄은 우연하게도 살바토레의 헛소리, “말 (馬)의 세 번째 음절 Tertius equi”을 듣고, 도서관 내부의 “아프리카 끝”으로 들어갈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은 윌리엄의 지적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단지 우연에 의해 도출된 진리일 뿐입니다. 다시 말해 윌리엄은 처음에 그 라틴어 단어를 단순히 “세 번째의 말 (馬)”로 잘못 이해했던 것입니다. 만약 기이한 괴물처럼 보이는 수사, 살바토레의 헛소리가 아니었더라면, 윌리엄은 결코 신비로운 암호를 해독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대한 진리란 -중세 때 사람들이 숙고하던- 신의 말씀처럼 “밝힐 수 없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을까요? 에코가 암시하려고 한 것은 인간의 이성은 다만 파편적인 진리들만을 어렵사리 찾아낼 수 있을 뿐이라는 그러한 가설일까요? 작가는 이에 대해서 에코는 명확한 대답을 회피하며, 그저 여러 가지 개연성들만을 열거하고 있을 뿐입니다. 바로 이 점이야말로 에코 소설의 아포리아요, 독자에게 반계몽적 비의성 (秘意性)을 느끼게 하는 핵심 사항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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