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독일)동화

서로박: 에테아 호프만의 '모래 인간'

필자 (匹子) 2020. 12. 14. 19:15

친애하는 H, 오늘은 호프만의 소설 "모래 인간"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호프만은 낮에는 법정에서 일하고 밤에는 살롱에서 문학을 논하는 등의 이중생활을 영위하며 살았습니다. 그의 문학 역시 지킬박사와 하이드씨를 연상할 정도로 이중적 내용으로 얽혀 있습니다. 여기서 다루려는 작품은 1816년 연작 소설 “밤의 작품 Nachtstücke” 첫 번째 부분으로 발표되었습니다. 아주 예민한 대학생 나타나엘은 친구 로타르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씁니다. 즉 기압계 판매상, 코폴라는 우연히 길가에서 사악한 변호사, 코펠리우스를 다시 만났다는 것입니다. 나타나엘은 바로 코펠리우스가 자기 아버지의 목숨을 잃게 한 장본인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왕년에 연금술에 심취해 있었는데, 코펠리우스와 함께 화학 실험을 행하다가 가스 폭발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어릴 때 주인공은 코펠리우스를 직접 바라본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코펠리우스는 초록색의 고양이 눈을 지닌 거북스러운 남자였는데, 동화 속에 나타나는 모래 인간처럼 보입니다. 모래 인간은 유모들이 들려주는 동화 속에 등장하는 인간입니다. 아이들이 잠들지 않을 때 아이들의 눈에 모래를 뿌리는 그러한 짓을 일삼습니다. 만약 아이들이 잠들지 않으면, 모래 인간의 공격을 받아서 머리에서 피가 쏟아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나타나엘은 이러한 기억을 도저히 지우려 해도 도저히 지울 수 없습니다. 어쩌면 코펠리우스는 끔찍한 두려움을 가져다주는 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심지어 그는 사악한 영혼을 지닌 못된 인간으로서 주인공의 사랑마저 방해할 것 같습니다. 나타나엘은 아름다운 처녀 클라라와 약혼했는데, 그미와 행복한 삶에 대한 꿈에 부풀어 있었던 것입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영혼이 “암울한 힘”에 이끌린 것 같이 느끼고, 이를 몹시 고통스러워합니다. 이러한 힘은 영리하고 명상적인 클라라에게 약간의 영향을 끼칩니다. 그미는 흐릿한 예견에 혼란스러움을 느낄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클라라는 사악한 영혼이 단지 하나의 망령으로서 자신의 자아에 대한 다른 상에 불과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미는 주인공의 저항력을 일깨워 줍니다.

 

주인공은 “유령에 대한 유치한 두려움”으로부터 스스로 해방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코폴라에게서 작은 망원경 하나를 구입합니다. 나타나엘은 망원경을 통해서 물리학 교수의 집을 들여다봅니다. 그러자 거기서 자동 기계 인간인 올림피아라는 여자가 주인공의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미는 마치 활활 타오르는 불꽃과 같아 보입니다.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올림피아의 모습에 주인공은 그만 약혼녀, 클라라를 망각하고 맙니다. 자동 기계 인간 올림피아가 나타나엘의 마음을 사로잡고 만 것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주인공은 스팔란차니 교수와 코폴라가 서로 언쟁을 벌리는 것을 목격합니다. 이때 코폴라가 그토록 사악하게 괴롭혔던 코펠리우스와 동일한 인물이라는 사실이 백일하에 밝혀집니다. 스팔란차니 교수는 주인공에게 “피 묻은 두 개의 눈”을 던집니다. 이때 나타나엘은 그게 마치 자기 자신의 눈으로 착각하고 거의 기절할 정도로 고통을 느낍니다. 이때 그는 아름다운 여인, 올림피아 역시 “생명을 지니지 않은 인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바로 이 순간 주인공은 경련을 일으키며, 광기에 사로잡힙니다.

 

클라라는 주인공을 정성스럽게 간호하여, 그를 치유해줍니다. 이제는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가 있습니다. 나타나엘은 코펠리우스 그리고 올림피아 등을 모조리 잊어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느 날 주인공은 클라라와 함께 높은 탑을 올라갑니다. 높은 곳에서 자신의 망원경을 꺼내 무언가 바라보다가, 다시금 광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갑자기 나타나엘은 자신의 신부, 클라라를 탑의 난간 아래로 밀치려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난간 아래로 떨어진 자는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나타나엘은 아래로 떨어지면서 탑 위의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놀랍게도 난간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에는 코펠리우스가 서성거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기이하면서도 정교한 구도로 집필된 이 작품은 다음의 사실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즉 코펠리우스라는 사악한 영혼은 다음과 같은 끔찍한 내용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즉 주인공의 운명은 부분적으로 어떤 정신 질환자의 병력을 합리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입니다. 실제로 작가 호프만은 밤베르크의 신경과 의사인 마르쿠스 박사와 친하게 지내면서, 피해망상의 증상에 대해 지식을 쌓은 바 있습니다. 그러나 주관적 객관적 진리 사이에서 나타나는 모호함은 작품 속에서 주인공에게 끔찍하게 작용합니다. 그밖에 작품 속에서 다양한 관점에서 서술되는 것은 혼란스러움과 모호함입니다. 가령 주인공과 클라라 사이의 편지 교환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모든 것을 회상하는 서술 방식 등은 독자들을 혼란 속에 빠뜨립니다. 그것은 참된 인식과 오인 그리고 자기 상실과 자기 동일성 등의 테마와 직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테마는 감각적으로 표현하자면 , “눈의 강탈 Augenraub”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코펠리우스-코폴라 (coppo는 이탈리아어로 “눈의 동공”을 뜻합니다.)는 연금술의 실험을 위하여 어린 아이 나타나엘에게서 눈을 빼앗으면서, 폭력을 휘두릅니다. 마찬가지로 “낯선 눈”에 해당하는 망원경은 대학생 나타나엘에게서 인식의 자유를 빼앗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은 기계인형을 아름다운 여인으로 잘못 바라보고, 황홀경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올림피아는 나타나엘의 상상 속에 도사리고 있는 반사된 상에 불과합니다. 또한 주인공 자신을 사악한 영혼의 힘에 시달리게 만드는 것도 바로 자신의 상상입니다. 그리하여 주인공은 자신의 인식 능력 그리고 자기 동일성을 상실해버립니다. 그는 올림피아의 존재로 인하여 감정의 혼란 속에 휩싸입니다. 어쩌면 주인공은 자신의 의식 속에 도사린 연인의 상을 사랑하는지 모릅니다. 이에 비하면 클라라의 눈은 처음부터 편안함 그리고 자기 확신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파괴된 내면을 지닌 대학생, 나타나엘을 매료시킬 뿐 아니라, 아울러 처음부터 피해망상의 증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모래 인간"은 맨 처음에 월터 스코트에 의해서 부정적으로 평가되었습니다. 나중에 게오르크 엘링거 (G. Ellinger)는 ?모래 인간?을 혼란스러운 작품이라고 혹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이르러 호프만의 작품은 작품 구성, 다양한 관점 등에 있어서 호평을 받았습니다. 작품의 주제에 있어서도 ?모래 인간?은 인지 그리고 인식 사이의 문제, 자기 상실 그리고 자기 동일성의 핵심 사항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비밀스러운 무엇”이라는 논문 (1919)에서 이 작품을 정신분석학적으로 구명한 바 있숩니다. 여기서 프로이트는 “눈의 강탈”을 어린이들의 “거세에 대한 두려움”과 관련시켰습니다. 호프만의 이 작품은 오펜바흐 (Offenbach)의 오페라 “호프만의 동화 (Les Contes d'Hoffmann)”로 상연된 바 있습니다. 눈의 강탈에 관한 모티프는 나중에 조르주 바타이유 George Bataille의 「눈의 이야기 Histoire de l'œil 」에서 다시 반복되고 있습니다.